추락한 태권도단증, 날개를 잃었다

2015. 12. 30. 18:51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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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1학년이던 1987년, 한 사람이 강의실에 들어 왔다. 12만원을 내면 4단 단증을 3개나 준다고 이야기했다. 무슨 소리인가. 무예를 전공하는 학생들이니 12만원에 4단을 3개 무예종목에 준다는 이야기다. 당시 사립대학 등록금이 약 48만원정도였으니 적은 돈은 아니었다. 종목도 비슷비슷 했다. 일명 단증장사가 온 것이다. 일부는 앞으로 도장을 할 거라는 이유로 그 단을 사들였다. 자신의 전공이 대부분 2단이던 시절이니, 4단씩 3개종목에 12단을 합치면 도합 14단이 되는 순간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 단증만 보면 대단한 무력의 소유자로 인식한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얼마 전 대학동기 술자리에서 그 시절을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몇일 뒤 대학 동기회 밴드에 정말 열심히 수련하고 노력한 동기들이 7단에 승단하는 것을 축하 댓글도 이어졌다. 정말 축하할 일이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꾸준히 도복을 입고 지도하면서 직접 수련하는 이들이야말로 누가 뭐래도 7단의 값어치는 인정 받을만 하다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12만원을 주고 12단을 산 것과는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

 

무예의 수련정도를 수량화한 것이 단(段)인 만큼 그 단은 그 사람의 무력(武歷)이자 얼굴이다. 또한 그 단을 수여한 단체나 기관은 단의 가치에 따라 신뢰를 평가 받는다. 단이라고 모두 단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예단체들이 발급받는 단증은 자격증인가? 원래는 자격기본법상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민간자격정보서비스(KRIVET)에 등록을 해야 자격증, 즉 민간자격증으로서 공인과 비공인을 인준 받을 수 있다. 현재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등록된 단증은 한국바둑협회에서 등록한 바둑을 포함해 4개 종목에 불과하다. 여기에 등록된 단증들의 개념은 대부분 비슷하다. 무예의 숙지 능력과 이해정도를 확인하고, 기술의 숙련도를 파악하며, 무예의 능력을 평가 검증한 것이다. 이러한 민간자격으로서의 단증은 자격기본법에 의거한 민간자격제도의 관리와 운영을 위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민간자격관리운영센터에서 관리되고 있다. 특히 민간자격 국가공인인증제를 2000년부터 시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무예계는 정보에 어두웠던 것은 사실이다.

 

태권도단증은 국기원에서 발행하는 것을 공인단증으로 불린다. 사실  태권도단증은 자격기본법에 적용하면 공인단증이라 부를 수 없다. 하지만 태권도의 단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나 부정할 수 없다. 이미 208개국에 태권도가 보급되었고 대한민국의 문화상품이자 세계인의 무예스포츠로 알려져 있으니, 태권도의 단은 대한민국 문화상품 태권도의 평가와 검증의 결과다. 이러한 이유로 단을 심사하는 국기원은 태권도의 신뢰를 부여하는 중요한 기구다. 하지만 최근 국기원이 내놓은 특별심사는 태권도계뿐만 아니라 무예계 전체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기원은 특별심사를 시·도협회가 요구했고, 이를 이사회에서 결정한 일이라는 이유로 심사를 강행하고 있다. 특별심사를 반대하는 입장은 이번 특별심사가 시·도 협회의 관계자와 대학교수 등 소수를 위한 심사로 태권도 단에 대한 가치를 하락시키니 중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단의 가치를 가장 잘 지켜주어야 할 국기원이 수많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특별심사를 강행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기원의 위상은 추락하고 있다. 과거 ‘단증공장’이니, ‘철밥통’으로 불리는 국기원의 모습이 회자되고 있다.

 

특별심사를 신청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시간이 없어서 승단심사를 보지 못했다” 라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승단심사를 보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없었다면 제대로 수련은 했겠는가? 수련도 제대로 하지 않고 특별심사로 승단한다? 월단을 해 어디에 사용하려는 것일까? 누가 들어도 납득이 가질 않는 일이다. 태권도 단의 가치를 하락시킨 것은 비단 이번 특별심사뿐이 아니다. 국가수반급들만 오면 명예 9단증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다. 2009년 미국 오바마대통령은 국기원이 아닌 세계태권도연맹으로부터 명예9단을 받았다. 몇 일전에는 스리랑카대통령에게 국기원에서 명예9단을 수여했다. 온 나라 대통령이 한국에만 방문하면 태권도 명예 9단이 되고 있다. 명예단증도 태권도단증이다. 분명 이것도 ‘단증남발’이다. 태권도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저버린 행동이다.

 

90년대 일본 자민당 총수였던 하시모토 전총리는 검도6단이었다. 그는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의 대회장도 하였지만 대회장을 찾아 항상 검도 고단자에 대한 예우를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국가 수장이라 하여도 사범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모습을 전세계 검도인들에게 보여 주었다. 말로만 ‘국기 태권도’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태권도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무예계의 원칙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단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한다. 태권도인들 스스로가 태권도 단을 하락시켜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번 특별심사에 대학교수들이 포함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태권도 단에 대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그 가치를 가르쳐야 할 대학교육계에 있는 사람들이 특심을 신청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학생들은 특심반대를 외치고 교수들은 특심에 응시하는 아이러니 한 이런 현상을 보면 태권도도 갈 때까지 간 것 아니냐는 무예계의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만하면 국기원도 더 이상 특심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 태권도인들이 외면하는 순간 국기원은 빈껍데기만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미 많은 태권도인들이 국기원 단보다는 과거 관(館)의 단이 더 가치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많은 외국인 수련생들이 그 단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특별심사는 태권도위상을 날개짓 해 줘야 할 국기원이 스스로 태권도 단의 가치를 추락시켰다. 이러한 심각성을 국기원관계자들은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허건식 heoks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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