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무도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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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낙원, 철혈남아를 양성하자
1924년 2월 2일 휘문고등보통학교 뒤에 있었던 조선무도관에서 오후 5시반에 모한연습이 있었다. 검도와 유도를 수련하는 자리. 여기서 조선무도관이었던 강낙원 사범이 '철혈남아를 양성하자'는 강연이 있었다.
2011.11.09 -
일제시대에도 이도류검도가 있었다.
1932년 10월 6일. 동아일보기사다. 조선무도관에서 관원을 모집하는 내용을 다룬 기사인데, 흥미로운 것은 펜싱이 최초로 유입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이도류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고의 내용으로 보면, 일본의 검도, 이도류, 펜싱이 같은 활동을 했음을 말해 준다. 같은 시간대에 수련하는 시간을 안내하고 있다. 오후반의 경우 검도, 이도류, 서양검도(페싱)이 4시반에서 6시, 권투가 6시부터 7시반, 유도와 씨름이 8시에서 10시까지로 되어 있다. 이도류(二刀流)라는 말을 들어 보통 미야모토 무사시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이도류의 창시자로 미야모토 무사시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廣辭苑》에서는 "이도류와 이천일류는 동일하며, 이천일류는 미야모토무사시가 창시한 검도의 일파(一派)"(新..
2011.10.03 -
한국인 최초의 유도저서
1926년(大正16年) 조선무도관편집으로 동양서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무도관유도대의(朝鮮武道館柔道大義)》는 국내에서 한글로 된 최초로 발간된 유도 서적이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유도 저서이기도 하다. 주 집필자는 유창호(柳昌浩)이다. 이 책이 나오고, 1927년 유창호 사범은 한국인 사범으로는 최초로 인천에 인천무도관을 창설해 유도를 지도했다. 당시 유도사범들의 대부분은 1901년 이미 일본육사에 유학하던 국내인들이 강도관에 입문하고, 육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한국군관학교 교관을 역임하면서 군인을 대상으로 유도를 지도하다가, 1907년 옛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유도를 지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점에서 유창호 사범이 옛 한말 군관학교출신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군관학교..
201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