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 야구부가 해체된 이유
1955년 경기고와 선린상고의 대결에서 선린상고 투수 최운식의 사망사건이 있었다. 최군은 3회말 공격에서 빈볼로 후두부를 맞아 기절하였으며, 6회까지 경기를 하다가 계속 쓰러져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시간만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실제 야구장에서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숨진 사례가 있다. (동아일보 1955년 7월 7일자). 당시 부상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생각을 한 지도자들과 협회가 한심했던 시절이다. 이 사고이후 경기고 야구부는 해체되었다. 1976년 다시 창단되었다. 황성 YMCA 야구단은 미국인 선교사 아래에 미국의 야구를 도입했다면, 경기고는 일본인 교사로 부터 일본식 야구를 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야구공의 위험성은 항상 노출되어 있다. 최근 일반 공원에서 야구공을 주고 받는 ..
202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