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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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씨름 슈빙겐
MC 이슈 가 스위스를 다녀 오며 보내준 전통씨름 슈빙겐(#Schwingen) 자료다. 전통스포츠가 어린이 스포츠로도 홍보되고 있다. 아래는 스위스레슬링협회(www.ESV.ch)의 홍보자료다. 슈빙겐의 역사는 13세기 스위스 로잔의 대성당에서 슈빙겐과 같은 힘겨루기 묘사를 찾아볼 수 있다. 슈빙겐은 잡는 부분이 고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레슬링 경기와는 다르고 우리 씨름과는 유사하다. 선수들은 저지나 셔츠에 황마로 만들어진 짧은 바지를 입고 그 위에 긴 바지(쉬빙겐 호젠, Schwingen hosen)를 덧입는다. 바지의 다리부분은 잡을 수 있도록 접혀 있다. 우리 씨름의 샅바역할을 한다. 슈빙겐은 6명이 돌려붙기(리그전)를 한다. 점수제이다. 경기 내용에 따라 8~10점 사이, 이를테면 10점부터 9점, ..
2023.08.19 -
씨름토크, 씨름 세계화에 대한 고민
얼마전 씨름세계화를 위한 토크가 있었다. 대한씨름협회에서 발간하는 '씨름터'에 내용을 담았다. 2023년에는 씨름계 다양한 연구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남대학교 허용박사와 용인대 이태현교수와 함께한 토크에서 씨름의 세계화에 대한 생각은 큰 차이가 없었다. 관광공사 사장인 김장실 전 국회의원의 적극적인 관심이 아니었다면 씨름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추진은 어려웠을 것이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추진이 안되었다면 지금도 국가무형문화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에서 누구나 씨름은 잘 알려진 전통스포츠이지만, 씨름을 문화재로 고민하는 이들은 없었다. 무형유산 예비 목록에 억지로 포함시켜 놓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UC버클리 민교수님이 GAISF 가입을 추진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다. 씨름의 세계화는 ..
2022.12.22 -
씨름경기 성문화노력, 1920년대부터
1927년 전조선씨름협회가 결성된다. 그리고 씨름과 스포츠전문가들이 씨름경기를 위한 매뉴얼을 만들어 경성내에서 경기를 해 본다. 2년뒤 1929년 전조선씨름대회를 개최하고, 1931년 전국체전에 제3회대회를 공식화한다. 씨름이 스포츠로 발돋움한 계기다. 샅바의 규정도 이 시기 정례화된다. 샅바씨름과 통씨름을 병행했다.
2019.04.27 -
시장패 건달들이 복싱대회에서 사라진 이유
우리나라에 복싱이 유입된 것은 1912년 10월 7일 단성사 주인이었던 박승필에 의해 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다. 유술, 씨름, 권투가 모인 이 단체는 최초의 무술단체가 된다. 이 시기는 서양에서도 복싱에 대한 경기규칙이 확정되기 이전이다. 원래 복싱은 1920년 안트워프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종주국인 영국은 1908년 런던올림픽에 밴텀, 페더, 라이트, 헤비급으로 4체급경기를 시범종목으로 채택해 전종목을 우승한바 있다. 4각의 링을 만들고 글러브를 착용한 국내 최초의 복싱은 1925년 1월 30일 YMCA의 실내운동회(일명 서커스대회)에서 첫선을 보인 것이다. 초창기에 이혜택(1906-1965)과 선교사의 아들이었던 슈버가반하트가 심판을 보며 경기를 치렀다고 한다. YMCA는 1927년 3..
2010.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