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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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무비지(武備志)>
중국의 모원의(茅元儀)가 쓴 는 중국 역대의 모든 병법서(兵法書)를 참고하여 명(明)나라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분량이 240권이나 되는 방대한 책이다. 여기에는 조선세법이라고 들어 있는데, 모원의가 말하기를 '근자에 호사자(好事者)가 조선에서 검법을 얻었는데 그 법이 구비되어 있다. 중국에서 잃은 것을 사예(四藝)에서 찾은 것이다'라고 했다. 중국의 역대 병법서 2천여 권을 뒤져보아도 제대로 갖추어진 검법이 없었는데 잃었던 중국의 검법을 찾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원의 스스로 검법의 이름을 이라 한 점에서 만약 조선의 검법이 활실하다면 우리 검술사에 좋은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0.07.20 -
<무비지>에는 운동화 끈매는 방법이 있다.
중국의 병서인 에는 끈 하나로 나선형모양으로 신발에 매는 그림이 있다. 지금과 같이 운동화가 아닌 상태에서 끈을 이용해 나선형으로 매고 발목까지 고정한 것으로 보인다. 무술사에서 무기를 연구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이러한 무술장비를 연구한 연구자는 없다. 전통무예를 고집하는 사람은 신발도 이런거 발굴해서 신어야 하는거 아닌가?
2010.07.20 -
최초의 가라테유입은 1937년 야마구치
국내에 공식적으로 일본의 가라테가 선보인 사료다. 동아일보 1937년 8월 13일자 1면에는 종로에 있던 YMCA(중앙기독청년회) 유도부 도장에서 13일 오후 8시반 일본 동경에 소재한 임명관대학(리츠메이칸대학)의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1909-1989)을 초청해 가라테의 대의급(大意及) 실제시범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당시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가 시범보인 가라테 유형은 고주류(剛柔流) 가라테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주류는 1860 년대 후반 히가온나 칸조(東恩納寛量)가 오키나와에서 중국 복건성으로 가 남파 소림권에서 14년동안 중국무술을 수행한 후 그것을 오키나와로 전했다고 한다. 히가온나는 오키나와로 전했다 무술은 후에 "那覇手"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수제자였던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에게 ..
201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