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마상무예 시연장면

2010. 12. 4. 22:22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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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격구를 복원한 사진이다. 이 보행격구의 기량은 마상격구에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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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제에서 기창을 시연하는 장면이다. 경마제를 통해 마상무예복원이 세간에 알려진 계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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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에서 무과시험과정이 재현되었다. 당시 국무총리서 부터 관계부처장관들이 다 모였다고 당시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마상무예가 복원됐다. 말을 타고 무예를 펼칠 수 있느냐는 세간의 이야기를 뒤로 한채 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 사범들에 의해 완전히 복원됐다. 그들의 노력은 지금 세계기사연맹을 통해 각국으로 보급되고 있다. 당시 복원과정을 그대로 담은 여러편의 다큐프로그램은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노력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마상무예복원의 가장 큰 의미는 기마민족으로서 벽화나 문헌에만 나와 있던 것을 실제 현장에서 볼 수 있고, 수련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복원이 가능했던 것은 말을 타고 수련하는 내용이 잘 기록되어 있었다는 점과 그림으로 유추할 수 있는 여건이 맞아 떨어졌다. 무엇보다 당시 민속학자들의 끈질긴 문헌연구와 마상무예 사범들의 피나는 노력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실력이 따라가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소재를 복원해도 그 원형을 찾아내기는 힘들다.

마상무예를 복원하기 위해서 당시에 가장 중요했던것은 이미 지상무예수준이 뛰어났어야 했고, 말을 다룰줄 아는 능력또한 주요했다. 특히 말위에서 무기를 다루어야 하는 여건은 말을 잘 이해하고, 말위에서 무예를 펼칠 수 있는 기능이 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2000년대 들어와 일부 무예인들이 마상무예를 접하면서, 일련의 안전사고가 발생한 이유도 이러한 말위의 상황과 무기의 쓰임새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말과 사람과 무기를 호흡하는 삼위일체의 가능성은 결국 수많은 수련과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에서 나온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조선중기이후 마상무예를 통해 무과시험에 응시한 사람이 보기 힘들었는지 모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예의 기량과 내적 가치, 그리고 말과의 호흡 등을 조화롭게 갖추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무예중 상급 무예가 마상무예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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