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3. 17:09ㆍReport/Martial Arts
차력의 뜻을 직역하자면, “빌린 힘”정도가 될 것이다. 한국에는 도교를 비롯해 철학과 고행을 통해서 우주의 섭리를 체득하려는 시도의 ‘전통’이 있다. 흔히들 속세를 벗어나 “입산”한다고 한다.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우주의 이치를 몸소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20세기중후반에는 이렇게 산에서 도를 닦다 진리를 얻어서 하산해 대중들에게 자신들이 터득한 진리를 일깨우겠다는 이들이 많았고, 차력은 그들의 포교법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차력사들이 빌린 힘은 대자연, 우주, 혹은 진리를 체득한 조상들에게 빌린 힘일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차력이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졌던 시기가 군부독재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차력시범의 흔한 예는 차력사가 트럭 따위를 밧줄로 연결하여 입에 물고 끄는 것이다. 폭압적이며 남근주의로 상징되던 독재하에서 차력은 정신적인 계발보다는 비정상적으로 육체의 힘을 중시했다. 차력시범은 근거를 알 수 는 없지만 정력보강의 비결로 훌륭하다는 약을 파는 약상수들을 항상 동원했다. 어쩌면 약장수들이 차력사들을 동원했을 것이다. 차력시범에서 참여자들, 즉 시범자, 약장수와 관객들은 노동자 계층이 주류를 이루었고, 구경꾼들의 순진함은 성공적인 차력공연의 필수조건이었다. 결국 차력은 동양의 정신적 수련의 전통이 기괴하게 변이된 형태이다.
차력은 효율적으로 문화적 활동을 생산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던 독재시절의 유산이다. 1970-1980년대에 차력은 또한 극장과 디스코텍에서도 시범의 차원이 아닌 구경거리로 공연되기도 했다. 그것은 극장에서는 영화 그 자체만이 관람객을 모으는데 부족하다고 추기전에 짜릿한 육체적 힘의 극치적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고객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려 함이었을 수 도 있겠다. 아무튼 차력이 정신적 수련에서 시작되어 남근주의의 상징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은 의심하기 어렵다.
문영민, 강수미. <모더니티와 기억의 정치>, 현실문화연구, 2006. pp.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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