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 베끼기로는 안된다.
2010. 11. 19. 21:42ㆍ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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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 지금 우리무예계는 이것을 마치 경전처럼 인식하고 있다. 과연...
요즘 다시 무예계가 술렁인다. 잠잠하더니 다시 여기저기 무예에 대해 정치권에 부탁을 하는 모양이다. 이 정도면 정치인이나 정부의 입장은 귀찮은 단계를 넘어 짜증나는 단계에 이를 수 밖에 없다.
자기 단체는 잘났다고 하고, 다른 단체는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정치인이나 정부는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 지 모른다. 이 정도가 되면, 무예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살을 깎아 먹는 것으로 비추어지기 쉽다.
자기 단체는 잘났다고 하고, 다른 단체는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정치인이나 정부는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 지 모른다. 이 정도가 되면, 무예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살을 깎아 먹는 것으로 비추어지기 쉽다.
국내 무예단체들은 종류도 많고 단체도 많다. 자세히 보면, 거의 유사하다. 동작이 유사하거나 심지어 명칭도 비슷하다. 저마다 온갖 노력에 의해 정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알고 보면 베끼기 무예들이 많다.
흥행이 있을것 같으면 저마다 비슷 비슷한 것을 모아 수백년의 역사를 주장하며 보급한다. 무엇보다 남이 오랜 수련을 통해 정립된 것을 베끼기 무예를 만들어 마케팅을 내세워 우위에 서 있는 것도 있다.
한마디로 깊이는 커녕 무예계의 사기무예다. 많은 수련생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말 잘하는 지도자의 입김에 그런가 보다는 식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최근 전통무예니, 정통무예니 하며 저마다 자신들의 무예에 대한 우월성을 제시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모른채 하더라도, 그 무예가 지닌, 아니 베끼기 무예는 바로 알아 볼 수 있다. 그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수련을 했는지, 어떤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지 등의 보편적인 방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무예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무예가 지닌 본질이 무엇이며, 이를 형성하고 있는 틀과 외적인 지금의 모습을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껍데기에 치중된 경우가 많다. 마치 속빈 강정같은 무예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 강정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는 무예가 많다. 도복만 입으면 모두 무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복을 입고 축구를 하면 축구도 무예가 된다는 이야기와 다를바 없다.
무예는 그 무예가 지닌 원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강유론'과 '음양론' 두가지를 동양무예의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 짧은 수련기간에 수많은 동작의 원리를 강유론과 음양론으로 이해시킬 만큼 무예의 기술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리에 미달되는 무예들은 역사성만 강조하고 있다. 역사도 짜맞추기식 그럴 싸한 역사를 소설같이 써 내려 간다. 생전 보지도 못했던 삼국시대 인물들을 엮어 연결시키는 웃지 못할 일들도 일어난다. 이것 마저 연결을 못하면 알게 뭐냐는 식으로 '家傳'이라는 말을 내세운다. 생전에 무예의 '武'자에 접근도 안했던 조상을 연결한다. 돌아 가셨으니 누가 알거냐는 식으로 거짓으로 조상을 포장한다. 심지어 자신의 조상묘나 생가에 무가(武家)'라는 것을 강조하는 비석이나 상징물을 세우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이 세상에 없는 조상들이 그것을 보고 뭐라 할지 궁금하다.
왜 이리 말도 안되는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정책을 다루는 관계자들이 무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안다고 해도 인맥이나 어설픈 수련으로 자신과 연결한 무예가 최고인냥 세뇌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엉성한 무예판에 무예를 평가하라고 맡기기도 불안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역사가 조작의 연속이었고, 현실에 급급해 온 것이라는 점은 무예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듯 하다. 모든 정책이나 일들이 줄대기로 가능하고, 명예보다는 물질을 더 중요시 하는 풍토에서 무예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 진실이 왜곡된 것이 사실인냥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무예는 몸을 이해하지 못하면 접근하기 어려운 학문이다. 또, 실천이라는, 또, 무예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풀어가기 힘든 것이 무예이다.
2000년대 접어 들어 그래도 과거보다 많은 연구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신선한 연구분야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한 곳에 집착돼 미시적인 사고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무예의 연구는 미시적인 것 보다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며 풀어가야 한다.
한가지라도 오랜 수련을 통해 그 원리를 알아 가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 이것 저것 돈된다고 사업으로 인식하거나, 자신의 명함을 위해 무예를 관계한다면 무예발전에 역행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를 불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방법. 그것은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것은 국내에 있는 모든 무예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무예의 본질을 망각한채 여기저기 빌어 붙는 일도 큰 문제다. 어디에 붙어야 큰 대접을 받을 수 있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은 무예를 정부는 지원할 수 있겠는가.
전통무예진흥법으로 정부는 이제 전통무예활동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지, 엄청난 예산을 지원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마도 무예계는 스스로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얼마나 떳떳한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봤으면 한다.
가장 올바른 소리를 하고, 귀를 기울야할 분야가 무예다. 협객이 살아있는 사회가 아니다. 자신들의 단체를 돌이켜 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가 될 것이다.
흥행이 있을것 같으면 저마다 비슷 비슷한 것을 모아 수백년의 역사를 주장하며 보급한다. 무엇보다 남이 오랜 수련을 통해 정립된 것을 베끼기 무예를 만들어 마케팅을 내세워 우위에 서 있는 것도 있다.
한마디로 깊이는 커녕 무예계의 사기무예다. 많은 수련생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말 잘하는 지도자의 입김에 그런가 보다는 식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최근 전통무예니, 정통무예니 하며 저마다 자신들의 무예에 대한 우월성을 제시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모른채 하더라도, 그 무예가 지닌, 아니 베끼기 무예는 바로 알아 볼 수 있다. 그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수련을 했는지, 어떤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지 등의 보편적인 방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무예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무예가 지닌 본질이 무엇이며, 이를 형성하고 있는 틀과 외적인 지금의 모습을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껍데기에 치중된 경우가 많다. 마치 속빈 강정같은 무예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 강정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는 무예가 많다. 도복만 입으면 모두 무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복을 입고 축구를 하면 축구도 무예가 된다는 이야기와 다를바 없다.
무예는 그 무예가 지닌 원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강유론'과 '음양론' 두가지를 동양무예의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 짧은 수련기간에 수많은 동작의 원리를 강유론과 음양론으로 이해시킬 만큼 무예의 기술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리에 미달되는 무예들은 역사성만 강조하고 있다. 역사도 짜맞추기식 그럴 싸한 역사를 소설같이 써 내려 간다. 생전 보지도 못했던 삼국시대 인물들을 엮어 연결시키는 웃지 못할 일들도 일어난다. 이것 마저 연결을 못하면 알게 뭐냐는 식으로 '家傳'이라는 말을 내세운다. 생전에 무예의 '武'자에 접근도 안했던 조상을 연결한다. 돌아 가셨으니 누가 알거냐는 식으로 거짓으로 조상을 포장한다. 심지어 자신의 조상묘나 생가에 무가(武家)'라는 것을 강조하는 비석이나 상징물을 세우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이 세상에 없는 조상들이 그것을 보고 뭐라 할지 궁금하다.
왜 이리 말도 안되는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정책을 다루는 관계자들이 무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안다고 해도 인맥이나 어설픈 수련으로 자신과 연결한 무예가 최고인냥 세뇌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엉성한 무예판에 무예를 평가하라고 맡기기도 불안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역사가 조작의 연속이었고, 현실에 급급해 온 것이라는 점은 무예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듯 하다. 모든 정책이나 일들이 줄대기로 가능하고, 명예보다는 물질을 더 중요시 하는 풍토에서 무예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 진실이 왜곡된 것이 사실인냥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무예는 몸을 이해하지 못하면 접근하기 어려운 학문이다. 또, 실천이라는, 또, 무예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풀어가기 힘든 것이 무예이다.
2000년대 접어 들어 그래도 과거보다 많은 연구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신선한 연구분야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한 곳에 집착돼 미시적인 사고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무예의 연구는 미시적인 것 보다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며 풀어가야 한다.
한가지라도 오랜 수련을 통해 그 원리를 알아 가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 이것 저것 돈된다고 사업으로 인식하거나, 자신의 명함을 위해 무예를 관계한다면 무예발전에 역행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를 불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방법. 그것은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것은 국내에 있는 모든 무예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무예의 본질을 망각한채 여기저기 빌어 붙는 일도 큰 문제다. 어디에 붙어야 큰 대접을 받을 수 있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은 무예를 정부는 지원할 수 있겠는가.
전통무예진흥법으로 정부는 이제 전통무예활동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지, 엄청난 예산을 지원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마도 무예계는 스스로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얼마나 떳떳한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봤으면 한다.
가장 올바른 소리를 하고, 귀를 기울야할 분야가 무예다. 협객이 살아있는 사회가 아니다. 자신들의 단체를 돌이켜 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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