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는 태권도를 수련했다
2010. 7. 19. 15:03ㆍ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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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프레슬리의 태권도 스승, 강덕원의 맥을 잇는 파사류 계승
30년을 함께 해 온 여비서 리사가 ‘로큰롤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스승이자 그의 마지막을 아는 유일한 한국인이라며 이강희 사범을 소개했다. 도장에 들어서자,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한 지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곳곳에 남아 있었다. “엘비스는 팬이었고, 스승이었습니다.” - 월드스타와 마샬아츠 사범과의 만남이 궁금합니다. “동양무술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60년대 후반, 미국 순회 시범을 하는 도중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엘비스가 본인에게 무술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죠. 처음엔 많은 사범 중에 왜 나를 선택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주 여러 지역에서 시범을 하는 저의 기술을 지켜보던 엘비스의 가까운 지인이 저를 추천했더군요. 그때부터 그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죠.” - ‘이강희 = 엘비스 프레슬리 스승’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닙니다. “죽기 전까지 지울 수 없는 제자입니다. 저에게 5년간 무술을 배웠죠. 7단까지 수련했습니다. 그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은 소중한 제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그를 가르친 저도 그리고 엘비스 역시도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인터뷰 도중 한 멕시칸계 미국인이 도장을 찾았다. 엘비스의 머리스타일을 똑같이 따라한 그는 파비오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엘비스가 너무 좋아. 이곳까지 왔다며.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곳 이강희 사범의 도장을 필수 방문코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엘비스 프레슬리를 가르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습니까 “옆차기를 잘했죠.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운동을 했습니다. 단의 높아짐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는데요, 나중에는 9단으로까지의 승단에도 도전하고 싶어했습니다. 자기만의 협회를 만들어 볼까 고민했을 정도로 태권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실제 만들기는 했습니다. 또 그는 한번 운동을 시작하면 멈출 줄 몰랐습니다. 열정이 대단했고 예의가 엄청 바른 사나이였습니다. 그가 도장에 한번 운동하는 날에는 팬들의 굉장한 관심이 뒤따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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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엘비스는 42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 1년 전부터 더 이상 도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상당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을 가지고 있던 그는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세계의 섹시 심볼이었던 그의 몸은 점점 비대해졌고, 지인들과의 연락도 사망 1년을 전후해서 완전히 끊어졌다고 한다. 제자의 아픔을 지금에 와서 다시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듯 이강희 사범은 당시 엘비스의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말을 아꼈다. - 이제 무술인 이강희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연세대학교 무술클럽을 창설한 주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대 상대에 진학한 이후, 박철희 원로를 지도 사범으로 모셨습니다. 이후 태권도부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제가 졸업한 이후에는 태권도부의 활동이 많이 움츠러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맴피스 최초의 첫 한인 사범이라고 들었습니다. “전쟁 이후 폭격의 상처를 지닌 한국에서는 당시의 미국이란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1964년 방문 비자를 받고 미국 땅을 처음 밟았죠. 우여곡절 맴피스에 도착했습니다. 당시에 가라테 도장이 하나 있었죠. 제가 오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습니다. 처음 맴피스에 왔을 때도 그랬지만 이곳 맴피스는 한인들이 많이 살지 않습니다. 그만큼 동양인이 살기에는 힘든 환경이라는 것이죠. 태권도는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컸죠. 이를 계기로 이곳 맴피스에서도 마샬아츠에 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 도장 벽면에 천여 명이 넘는 숫자의 명패가 보입니다. “도장에서 배출해낸 2천여 명이 넘는 블랙벨트의 명단입니다. 맨 아래 8단까지 수련한 제자들의 노력을 기리기 위해 이곳 총 본관에 이렇게 붙여 놓은 것입니다.” 그 명패들의 하단에는 소(Ox), 호랑이(Tiger), 피닉스(Phonix) 등 동물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단이나 급에 따른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성격에 맞는 동물을 선정하여 그것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도장 전면에 큼지막한 한문이 눈에 띠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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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장 전면에 ‘파사류(破邪流)’라는 글씨는 무엇을 의미하나
“우직하게 무술의 정도를 걷는 것입니다. 잡념이 있으면 스승도 제자도 흐트러지는 법이죠. 가르침에 있어 중도 포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수련에 따른 회비에 있어서도 3년의 기한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수련의 깊이를 깨닫기 때문에 평생 저희 도장에서 수련을 하게 합니다. 바로 이것이 평생 수련, 평생 지도의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건 '진심'이 선행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맴피스에서의 1박 2일 취재 동안, 이강희 사범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취재진이 도착하기 수일 전에 대수술(전립선)을 받았다고 한다. 완쾌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한국의 취재진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장소로 가는 길에 이강희 사범은 취재진에게 또 하나의 작은 감동을 선사했다. 마지막 촬영을 모두 마친 16일 오후. 세번째 장소인 잭슨, 미시시피로 향하는 취재진의 차량이 혹여나 길을 헤맬까, 40여분 여를 몰래 에스코트해준 것이다. 처음엔 알지 못했다. 취재 차량이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리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자 뒤따라 차량에 이강희 사범이 다가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걱정이 되어서 도저히 도장으로 갈 수가 없었네. 방해가 안 되려고 했는데, 나도 많이 늙었나 보네.” 취재진은 이강희 사범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다음 장소인 잭슨 미시시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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