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武學)하면 무예를 수련하는 사람들도 크게 동감하는 단어는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무(武)를 악용해 왔고, 무(武)에 대해 철저하게 고립시켜 온데 있다. 필요할때만 찾고 필요없으면 관심밖인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무(武)에 대한 이해역시 몸을 학대하거나 하급 중국무술영화의 배우가 하는 것으로 이해 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요즘 무예를 수련하는 사람들중에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매우 만족해 하고 몰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자신의 몸을 알아가기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맞아본 놈이 맞아본 놈의 심정을 알듯, 안 맞아본놈들은 상대가 맞으면 얼마나 아픈줄 모른다 는 말이 있다. 무예수련중에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처지를 알아가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을 이해하기도 한다. 그 속에서 겸손도 배우고 인간사를 배우기도 한다.
간혹, 무예를 모르고 공부만 하던 모범생출신 정치인들이 무술단체장을 맡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처음 접해 보는 그 세계의 사람들을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로 매력에 빠진다. 하지만 가끔은 어설픈 시건방진 행동으로 무술인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무(武)를 하는 사람들을 조선시대 문인들 마냥 하찮게 보거나 악용하려는 경우다.
무예는 무엇일까? 우리 역사속에서 무예를 하는 사람들을 경계한 이유는 무엇일까?그런데 왜 유럽에서는 펜싱선생을 존경하는 인물로 대접할까?
우리 사회도 무예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지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아마 골프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하면서 골프선생을 존경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자신과의 싸움을 맛 본 골프마니아들이 느끼는 수련(practice)의 맛을 조금 본 것 같다. 그러면서 골프는 멘탈스포츠라 하며 대단한 운동으로 평가하고 골프코치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그것도 공과 골프채와 자신의 관계를 놓고... 하지만 무예는 골프이상의 상황인 상대성이 사람일때도 있고, 목표물일때도 있다. 더욱 깊은 내면에는 자연과 내 몸이 하나되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 제대로 된 선생한테 배우면 골프에서 느끼지 못하는 그 이상의 삶을 배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정진이 필요하다.
서론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요즘 우리사회에서 무학(武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아마 무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서 몇자 적어 보았다.
무학은 무예학
최근 무예와 관련된 학술세미나가 부쩍 늘어 났다.
우리사회를 바로 보자는 취지인 것도 있고, 지금 우리 사회처럼 무예계가 서로의 이익관계 때문에 개최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이 후자에 속해 아쉬움이 많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국내에서도 학계나 소수 연구회, 그리고 해외보급을 이루고 있는 일부 무예종목들이 세미나 붐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연구를 꾸준히 해 온 일부 무예단체들은 이미 그 연구의 성과가 상당수준에 올라와 있어 무예계 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무예계에서는 무예를 학문적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로, 무도학, 무예학, 전통무예학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나름대로 대학에 학과가 개설되어 있고 연구자들도 증가하면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고문헌에는 무학(武學)이라는 용어가 이미 사용되어 왔다.
무학(武學)은 무예학(武藝學)을 말하는 것으로 이미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문(文)과 무(武)를 아우르는 학문이었다.고려시대에 국립대학 성격으로 설립된 국자감(國子監)은 1109년 교과과정을 체계화해 7재(七齋)를 두어 전문과정을 두었다. 이 중에 무학(武學)을 공부하는 강예재(講藝齋)는 무학(武學)을 배우던 ‘무학재(武學齋)’로도 불리었다. 이 강예재 출신들이 무학으로 과거를 보면 급제률이 높아 많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무학이 인기가 있으면서 유생(儒生)과의 대립과 불화, 그리고 상문경무(尙文輕武)의 풍습이 지배하면서 문신들의 반대로 1133년 폐지됐다. 강예재가 문(文)과 무(武)를 겸비한 학문체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문(文)만을 숭상해 온 문신들에게는 열등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무(武)의 천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기득권들이 등한시 하는 이유중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역사는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이후에도 무학에 대한 필요성이 계속 이어져 왔다. 대부분이 국가적인 위기상황으로 요즘의 한반도 위기상황과 같은 시기에 무예를 국방의 일환으로 애용(?)해 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