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4. 16:16ㆍReport/Martial Arts
MOOKAS 미디어 2005년 9월 2일자 ‘북한격술연구소 연구원은 격술달인’이라는 보도가 나간 적이 있다. 최근 북한 군무술로 알려진 ‘격술’에 대해 무술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연 격술은 어떤 무술인가. 귀순 장교출신인 김정교씨가 쓴 <북한군에은 건빵이 없다>(플래닛미디어)와 북한장교출신인 호혜일씨가 쓴 <북한요지경>(맑은 소리)에는 격술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다. 지금부터 이들이 저술한 내용과 그동안 북한귀순자들이 진술한 보도자료를 중심으로 격술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
격술은? 또다른 의견은 송도관가라테, 복싱, 레슬링을 조합해 만든 북한군 무술로 1960년대말 김일성이 군부대를 현지 지도하던 중 “일당백” 정신을 내놓으면서 두각을 나타낸 무술이라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북한에 태권도가 보급된 것이 1980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격술의 근거는 후자의 것이 먼저고, 그 뒤에 전자의 주장대로 지속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격술이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정권 말 국방부에서 전시에 대한 맨손격투실험에서 한국특전사(태권도 수련)들이 월남에서 귀훈한 북한군(격술)과 대결에서 일격에 모두 참패와 실신했다는 이야기에서 전해진다. 또, 귀순한 북한군출신들의 증언 중 북한에는 4군단 북한 특수부대 경보병여단 요원들이 개성시내에서 1979년엔가 1976년 올림픽 복싱메달리스트와 싸움이 붙어서 죽였다고 하는 증언도 있다. 당시 경보요원 3명과 복싱선수 2명이 붙었는데 강철같이 단련된 주먹 앞에 복싱 메달리스트 출신 한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1968년 자수한 북한군 124군부대 소속의 조응택은 하루에 3천번의 격파훈련으로 격술을 수련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힌 적도 있다. 또, 김신조 역시 격술과 유술을 훈련받았다고 했다. 1977년 귀순한 이영선은 하루에 2천번이상 시멘트바닥이나 돌을 치는 수도(手刀)훈련과 대련, 10m 떨어진 표적에 단도를 던져 명중시키는 단도전법훈련 등의 격술을 말한적도 있다. 뿐만아니라, KAL기 폭파사건의 주범인 김현희도 격술훈련을 받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
어떻게 만들어지고 보급되는가? |
대회방식은? |
격술전문가 진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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