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전 돈의문(서대문) 일대를 경험해 보자

2024. 8. 25. 17:21카테고리 없음

728x90
반응형

1890에서 1905년까지 서울은 변화의 시기다.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일본인에 신식군대가 훈련되었다.

어쩌면 이 때부터 우린 말이 개화이지 서구와 일본에 의해 서서히 잠식되어 간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개화기 미국을 오간 이들이 어느 순간에 친일이 되고 나라를 일본에 넘겨 주었다.

서대문(돈의문)을 둘러싼 지역은 정동에 대사관과 근대학교들이 들어섰다.

어쩌면 서대문을 기점으로 다양한 문화가 만났을 것이고, 이 속에서 기득권들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를 보면 이 지역이 지식층과 문화계 인사들이 모여 살았다.

그 속에서 나라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도 있었고, 나라를 팔아 먹은 이들도 있었다.

정동길을 걸으면,

광화문에서 충정로를 걸으면 조용하고 한적한 곳인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함을 느낀다.

그 기운은 경희궁이 빈터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경희궁의 건물들을 경복궁 재건에 쓰느라 옮겨 허허벌판의 뽕밭이 되어 있었다.

이 곳에 일제는 경성중학교(현 서울고)를 지었었다.

이 곳은 가을이 아름답다.

경희궁도 정동도, 성곽길을 걸으며 옛 기운을 바라 볼 수 있다.

 

1894년 서울의 중심거리, 한옥이 가득 들어 서 있다.
1894년 남대문통
1890년 정동언덕에 들어선 러시아공사관이다. 공사관뒤 인왕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주변으로 영국, 미국, 프랑스 공사관이 들어섰다.
1910년 이화학당
정동언덕 러시아공사관에서 내려다 본 서대문안쪽 모습이다.
성곽위에서 내려다본 서대문, 강북삼성병원 (경교장)부근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왼쪽 중앙이 한성부청사와 군영자리다. 원래는 문과 뒷 부분은 경기감영자리였다. 지금 적십자병원이 있고, 서대문역 지하철에서 나오는 부근이 문이 있던 자리다. 오른쪽 상단에 러시아공관탑이 보인다. 저 탑은 지금도 남아 있다.
1902-1908 한성부청사 모습이다.
개통초기 전차모습 서울 동대문에서 서대문을 이었다.
1895년 구한말, 궁궐수비대인 ‘구(舊)시위대’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신식무기를 들여와 조선황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일분군 교관을 투입하여 훈련시킨 신식 별기군 ‘시위대(侍衛隊)’가 궁 앞에서 집총열병을 하고 있다.
명성황후 장례식장에서의 무관 모습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