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운동회는?

2021. 4. 30. 00:23Report/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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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춘천 중앙국민학교 운동회 장면이라고 한다.
건물에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반공구호가 있지만, 초등학교 운동회는 온동네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잔치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아직도 지방의 경우 응집력이 좋은 지역은 함께 잔치를 한다는 소리는 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회는 1896년 5월 2일 서울 동소문 앞 삼선평(지금의 성북구 삼선교 부근)에서
영국인 교사 허치슨(W. du. F. Hutchison, 轄治臣)과 핼리팩스(T. E. Hallfax, 奚來百土)의 인솔로 관립외국어학교 분교인 영어학교 학생들이 소풍과 운동을 겸한 야외놀이 행사였던 화류회(花柳會)다.

화류회. 낯선 이름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옛부터 '화류'라는 놀이가 있었다. 봄과 가을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주변 마을 서당의 학동들끼리 벌이는 놀이였다. 이때 화류에서는 장치기, 줄다리기, 릴레이식 바가지 밟기 등을 했다. 이 놀이에서 이긴 서당은 농악을 치며 마을을 돌았는데 집집마다 떡상을 차려 이들을 대접했다고 한다. 서당에 앉아 공부만 하는 학동들이 이날 만큼은 공부에서 벗어나 주변마을 학동들과 우의도 다지면서 신체단련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으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응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화류라는 말은 중국과 일본인들에 의해 왜곡되었다. 중국에서는 유곽 또는 창기(娼妓)의 집을 화가(花街)·화류원(花柳苑) 등으로 불렀던 것에서 들어온 말이다. 일본은 임진왜란직전 유곽을 만들어 사용하며 화류계라 불렀고, 우리나라는 1904년 서울 쌍림동에 일본인들이 유곽을 차리면서 '화류계(花柳界)'라는 말을 퍼트렸다.

사진(http://www.designerspar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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