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WT, 그리고 IOC

2019. 9. 30. 19:19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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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태권도의 초창기 개척자인 최홍희와 올림픽태권도의 개척자인 김운용은 고인이 됐다. 남북한의 갈등이 있었던 시대에 마치 태권도가 남북간의 갈등으로 비추어진 시대가 지났다. 최근 WT(세계태권도연맹이 WTF에서 WT로 변경함)와 ITF태권도 공동시범이 스위스 로잔의 IOC 올림픽박물관과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이뤄졌다.


WT시범단은 남측 태권도시범단으로 구성돼 있고, ITF시범단은 북측 태권도시번단으로 구성됐다. WT 시범단과 ITF 시범단이 함께 이 곳에서 합동시범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제네바에서 개최된 세계정보사회정상회의 포럼 초청으로 'Taekwondo for Peace(평화를 위한 태권도)'라는 주제 하에 국제통신연맹(ITU)에서 시연을 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도 태권도는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

남북관계가 화해분위기를 예고할 때마다 이 두 시범단은 함께 했다. 특히 화해분위기에서는 국내에서도 시범이 이뤄졌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이 두 시범단은 전세계인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시범을 보였고, 세계인들에게 남북의 화해 분위기를 알린바 있다.

ITF리용선 총재와 WT조정원 총재 / WT세계태권도연맹 제공


이러한 남북 태권도교류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가장 먼저 1985년 6월에 ITF는 WTF측에 오스트리아 빈에 기구 통합을 위한 실무접촉 제의한바 있다. 1986년 6월 서울에서는 WTF와 ITF 대표자 남·북 접촉도 있었다. 그리고 1990년에는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위한 두 단체간의 통합과 관련된 논의가 이뤄졌다. 1994년 올림픽종목을 추진하던 WTF와는 달리 ITF총재를 맡고 있던 최홍희는 '선 통합 후 올림픽 종목 추진'을 주장하며 IOC에 WTF와 기구통합을 제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2000년대 이전 시기에는 주로 최홍희가 주도하는 국제태권도연맹(ITF)과 김운용이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F)이라는 국제기구 차원의 논의가 중심이었다면, 2000년 부터는 북한 태권도와 남한 태권도의 교류라는 국가적인 차원으로 격상됐다.

2013년 9월 16일 WTF의 새로운 수장을 맡은 조정원 총재는 "두 경기단체가 상호 존중의 원칙에 따라 서로의 경기 방식과 룰만 따른다면 '교차 출전'을 허용하는 것에 뜻을 같이했다"고 밝히며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4년 8월 21일 중국 남경에서 WTF 조정원 총재와 ITF의 새로운 수장이었던 장웅 총재(IOC 위원)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입회한 가운데 '태권도 발전을 위한 의정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총 4개 항으로 이뤄진 의정서에는 상호 인정과 존중, 상대방 대회 교차출전, ITF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추진, 다국적 시범단 구성 등의 합의 사안이 담겼다. 특히 WTF와 ITF에 소속된 선수들은 서로의 경기 규칙을 준수하면 두 단체가 주최하는 대회와 행사에 교차 출전할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이다. 이것은 ITF에 소속된 북한선수들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 당시 IOC 바흐 위원장은 "태권도로서는 아주 역사적인 일"이라면서 "같은 뿌리와 역사를 가진 두 태권도 기구는 한 가족이며 이러한 의향서가 체결된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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