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이익은 왜 무인양성론을 제안했을까?
2019. 5. 17. 09:59ㆍIn Life/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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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은 양질의 고급무관을 양성하여 이들을 문관직에 보임하고자 했다. 무관의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강력한 무비의 기반을 마련하려 했다. 성균관에 문묘의 역할을 하는 무성왕묘 설치를 통해 무관들도 배향의식을 통해 천무의 사조를 극복하려고도 했다.
그가 이런 고민을 한 이유는 무 엇때문일까?
그가 무비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팽배했던 숭문천무의 사조를 극복하기 위해 무인양성론에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무과시험의 개선과 무학의 설치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로 다가가지 못했다. 이익의 무인양성론과 무비론은 정책의 미반영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은 당시 현실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근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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