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0. 17:36ㆍReport/Martial Arts
1854년 2월 매튜페리의 두 번째 일본 내항을 기록한 1856년의 「페리 일본 원정기」(Narrative of the expedition of an American Squadron to the China Seas and Japan)에는, 2월 26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페리 함대의 선원인 미국인 복서 1명, 레슬러 2 명과 스모의 오제키 등 3대 1의 타류(他流)경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이 일본에서 보이는 이종격투기의 원류가 아닐까?
1854년 일본인과 미국 수병이 겨룬 기록도 있다. 이러한 타류경기로 불리는 이종격투기는 메이지 후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후에 걸쳐 유행했고, 유술인(유도인)들에 의해 "유권(柔拳)경기‘를 하였다. 유권경기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은 가노지고로 의 조카 가노 켄지로 알려져 있고, 1909년에 국제유권구락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을 찾은 외국 선원들에게 복싱기술을 배웠고 후에 일본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해 미국에 가서 복싱을 배운 이들도 있었고, "서양 대각력(大角力)"이라는 이름으로 유권경기같은 이종격투기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1909년 일본에서 유권회가 설립되고, 1911년 중국은 곽원갑에 의해 상하이에 정무체육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12년10월7일 종로의 단성사(團成社) 주인 박승필이 「유각권(柔角拳)구락부」를 만들고 단성사에서 유도 씨름과 함께 권투경기를 열었다. 구락부는 클럽의 음역어로서 일본식으로 ‘구라이다’라 불린다. 유권, 정무체육, 유각권 등에서 공통적으로 한 것은 대회다. 영화 정무체육회에서 보듯이 중국쿵푸와 일본 혹은 외국 레슬러와 겨루고, 일본의 경우도 선원들과 겨룬 기록들, 그리고 우리나라 단성사 주인이 뭔가를 준비했던 사실을 보더라도 당시 한중일은 격투경기교류가 활발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수년전 카자흐스탄 조사차 방문했을 때 그곳의 레슬링영웅인 카지무칸이 한국에 방문한 사실을 찾은 적이 있다. 우리가 아는 레슬링은 김일을 생각할 수 있지만, 각 나라의 전통씨름으로 생각하는 것이 낫다. 1900년대초 한중일의 격투 흥행과 교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교류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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