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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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땅에서 일본스모판이 열렸다.
경성에서 일제강점기 스모를 가르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최대규모의 씨름대회를 했다는 기록은 기존 체육사연구자들이 다루지 못했다. 최근 일제강점기 무예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던 가운데, 발견한 일부 자료다. 1931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을 예상했다. 1941년 진주만 등의 폭격을 앞두고 그들은 왜 경성에서 스모판을 열었을까? 황국신민화정책을 펼치던 일본이 조선을 거점으로 움직인 그들의 용감한(?) 이벤트. 자료들이 하나둘 발견되면서 일본의 속내와 해방이후 우리 체육이 얽매일수밖에 없었던 사실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1941년 6월 19일부터 6일간 서울 을지로6가(당시 황금정6정목 부민회장, 현 국립의료원과 쇼핑몰자리)에서 7백여명의 일본 스모선수들이 참여해 스모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
2020.03.06 -
스모계 진출한 한국인
일본의 전통씨름인 스모에 진출한 한국인은 누가 있을까? 해방이후 기록상 가장 먼저 진출한 사람은 서길량이다. 그는 '고려산'이라는 이름으로 태권도2단, 유도3단을 겸비했었다. 부산출신으로 1969년 1월 도일, 후다고야마 도장문화생으로 입적해 신인선발검정에서 발탁된다. 그 후 '조노구찌(序口)'의 자격을 얻었다. 김해농고출신으로 177cm, 체중 115kg이었다고 한다. 그다음은 강성영이다. 그는 일본에서 '남해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가 진출한 것은 1969년 6월 일본스모협회 초청으로 도일, 스모선수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고, 1971년 7월 '마꾸시다'급으로 중간자리까지 올랐다. 입문후 수백명의 일본 장사를 누르고 '세끼와제'와 '요코즈나(橫綱)'의 자리를 목표로 했었다. 그러나 그는 1971..
2010.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