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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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수련에서 禪을 모르면 잡검(雜劍)이 된다?
왜 검도(Kendo)가 높이 평가 받을까? 여기에는 수련자가 경험하는 매력이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빠져 드는 그 무엇, 나와 상대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공부하게 하고 이를 일반 생활에 까지 연계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禪(zen)이 검술에 적용된 모양새다. 劍과 禪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나라나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를 종합적으로 접목해 낸 현대 스포츠가 일본의 검도다. 그래서 검도를 '움직이는 禪(動禪)'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시절 우리를 지도했던 김춘경 교수님은 "검도와 선(禪)이 한 길이라는 말(劍禪一如)이 있듯이 검도는 수련 자체가 움직이는 선(動禪)이다. 몸의 단련으로 '깨달음'의 길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시합을..
2024.09.07 -
1966년 검도대회는 모래밭에서 했다.
온양 현충사가는 길에 있는 강변 둑아래 모래밭(곡교천). '이충무공 탄신기념 전국시도대항 검도대회(1966~)' 윤병일 선생님 옆에 계신분은 경기도 선생님. 야외시합장 개회식 장면. 대회사 하시는 서정학선생님, 선수단 왼쪽에서 3번째 대구(당시 경상북도)의 윤병일선생님 사진 서민석 , 사진설명 서민석 김주한
2017.02.05 -
충무공 장도와 서정학 선생님
이충무공 장도(長刀) 수리 전에 현충사에 선양(宣揚) 기념 촬영.(뒤쪽 서정학선생님 국회특별경비대장 시절) 이 사진 뒤에 글을 보면 4285(1952년) 4월 현충사 선양(宣揚). 태귀련(太貴連), 이무생(李茂生) 제작(製作)으로 적혀져 있다. 경찰복장을 보면 1952년 국회특경대장 시절 때 총경 계급과 복장이다. 서민석선생님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도가 많이 상해 있었기에, 후에 치안국 예산으로 수리하여 대한검도회에서 현충사에 봉안하였다고 서정학선생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대한검도회 연혁에 보면 「1956년 4월 18일 이충무공 보검 현충사에 봉안(奉安)」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자료제공 서민석선생님
2017.01.27 -
60년대 대통령경호실의 무술은?
사진은 1963년 대통령경호실 전용 '연무관' 낙성식 사진이다. 영상은 연무관이 문을 열고 대한뉴스가 1963년 11월 30일에 대통령경호실 무술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당시 경호실에 검도, 유도, 태수도, 합기도 등 4개의 부 경호원은 이 중 2가지 무술을 보유하게 했다고 한다. 이 시범자료에는 당시 합기도3단이었던 박종규 경호실장이 직접 시범을 보였고, 치안국장이었던 서정학 검도8단의 시범도 영상에서 볼 수 있다. 특히 태수도의 경우에는 다양한 호신술이 존재했던 태권도초기의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이 자료는 당시의 4개종목 무술들의 주요기술들을 볼 수 있는 자료로 19분 22초 분량이다. 출처: K-TV 국가기록영상
2011.11.01 -
검도, 최초의 국가대표는?
네이버 '검도세계카페'에 닉네임 셋쇼마루님이 올려주신 사진과 글입니다. 사진과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바로 이사진은 1967년도 최초의 국가 대표 선수들입니다. 18명의 정예선수들이 3조로 갈려 풀리그전 끝에 A조 우승 강용덕 B조 우승 김춘경(위 사진에는 훈련불참으로 없음) C조 우승 김재일, 자동케이스 김영달, 정태민, 5명이 선발되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제 3회 국제 사회인 대회 출전자 들입니다. 5인조 첫 시합에 일본에 유일하게 이긴 강용덕 선생은 상대 오가켄지로(전 무도대학장)을 2:0으로 격파한 귀재입니다. 좌로 부터 서정학, 정태민, 김영달, 서동준, 강용덕, 이홍국, 김석춘, 전동욱, 윤병일, 그 옆은 당시 서울대학생으로 김영배 선생 조카가 그냥 참여 한 것 입니다. 마지막 김영배 선생 ..
2010.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