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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술에 대응한 특공무술은 국술합기도 형을 응용한 것
앞서 1970년대 말 북한군의 격술에 대해 서술했다. 그 북한군은 1977년 8월 19일 임진강을 통해 귀순한 이영선씨(인민국 9사단 직할 경보병 대대 자동소총수)로 태권도중심으로 단련된 국내 특수요원들과 자유대련을 벌인바 있는데, 이영선씨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다.
이영선씨가 보인 격술이 북한의 격술연구소에서 나온 기술들이라는 것을 안 우리 정부에서는 발차기 중심의 태권도수련이 전부였던 군대무술에 대해 수정을 요구했고, 전국의 무술고수를 불러 심사를 한 결과 A모씨가 606부대 전임 사범선임돼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게 됐다.
당시 A모씨는 전북김제 출신으로 대한기도회 소속의 합기유술을 배워 전북 이리(현재는 익산)에서 합기도 체육관을 운영한 바 있다. 그는 합기도를 응용한 기술을 정리해 1978년 11월 박정희 정권 당시 대통령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 앞에서 시범을 보였고, 당시 몇몇 요원들과 606부대원이 기합짜기, 각목격파, 형, 격파술, 공방대련, 두정격파, 고축차기격파, 두발모아 옆차기 등을 중심으로 시범을 하였는데, 이 기술들은 당시 국술유단자형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79년 6월 청와대 연무관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606부대가 시범을 보였는데 이 기술역시 합기도 술기를 정리한 것으로 당시 국술합기도 초단형인 검무형과 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기술들이 특공무술이라는 북한의 격술에 대응하는 무술로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최근 국내 무술연구자들에 의해 심도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합기도를 중심으로 대학의 연구자들은 "당시 특공무술은 합기도 기술의 일부를 적용한 것으로 특공무술이라는 기술체계의 정통성에 대해 논란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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