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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흐름에 따라 비판될 수 도, 장려할 수 있다
한량의 의미 변질과 유사하게 불교에서는 '건달(乾達)'이라는 말이 있다. 건달은 불교에서 말하는 신 중 '간다르바(乾達婆, Gandharva)'라는 말이 음역된 것이다. 간다르바는 수미산(須彌山) 남쪽의 금강굴(金剛窟)에 살면서 술과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고 향(香)만 먹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음악담당 신(神)이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도 인도에서는 음악이나 예능계에 종사하는 예인(藝人)을 간다바르라고 부른다.
이후 간다르바인 ‘건달바라’를 ‘건달’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의미는 아무 가진 것도 없으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난봉을 부리거나 허풍을 치며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무래도 농경중심 사회였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풍류나 건달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한량이 과연 단순히 놀고먹는 사람들이었을까. 필자는 생각은 다르다. 원래 한량은 시(詩), 서(書), 음악 등에 능하고 풍류(風流)를 아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족이었다는 점, 그리고 무인으로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말해 주고 있다.
하지만 조선후기로 접어들어 한량을 무능력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조선후기에 문관의 10배에 이르는 무관을 선발하기는 했지만 출세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1784년 세자책봉을 축하하는 경과(慶科)에서는 2,500명이상을 선발했고, 이 중에서 선전관이라는 왕의 호위무관의 요직에는 7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무엇을 했을까?
문관중심의 사회에서 무관들이 매일 활을 쏘고 무예를 연마하는 모습이 문관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당시 문인들에게는 무인들이 놀고먹는 사람으로 보여졌고, 실제 많은 무인들이 한양의 유흥계를 누빈 사실도 있다는 학계의 주장을 보더라도 한량이라는 신분은 비판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과거제도의 문제점이 밝혀지고 있는 지금 무과에서도 화살 한두 발이면 합격하는 등 엉터리 운영 속에 한량의 의미는 변질 된 것은 아닐까.
미래사회는 지식산업사회라고 한다. 이러한 지식산업을 위해서는 창의력이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된다. 창의력은 올바른 여가활동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러한 논리로 지식산업사회의 평가수단을 여가활용의 양적 질적 근거로 삼고 있다. 고려 말과 조선의 한량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계층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여가는 다양했을 것이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비난의 대상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사회에서 한량은 또 다른 관심소재가 될 수 있다. 한량은 무인이었고,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제대로 된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사람, 세상의 멋을 알고 무예를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허건식의 무예보고서는 격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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