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하장사대회 ‘크르크프나르 축제’

2016. 10. 31. 13:06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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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5회 대회 팜플렛 표지, 크르크프나르씨름대회는 세계 최장수 스포츠경기로 알려져 있다



14세기 옛 영웅 추모경기를 시작으로 655여 년의 명맥을 잇다 

에디르네(Edirne). 터키 북서쪽의 도시로 그리스, 불가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예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다가 근대에 이르러 파란만장한 격정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러시아였다가, 불가리아였다가, 티키였다가, 또 다시 그리스였다가 지금은 터키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인 만큼 거리에 동양인들을 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곳이다. 

여기에서 매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씨름경기가 열린다. 1360년부터 650여 년 동안 꾸준히 해 온 이 경기는 ‘크르크프나르 오일 레슬링 축제’로 진화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이 대회는 매년 6월이나 7월 마지막주에 3일간 열린다. 

이 씨름은 온몸에 올리브기름을 바르고 물소나 소가죽으로 만든 ‘크스페트(kıspet)’라는 긴 반바지를 입고 겨룬다. 터키어로 정식명식은 '크르크프나르 야-러 규레쉬'라고 부른다. 크르크(Kirk)는 40, 프나르(Pinar)는 분수, 야-러(Yagli)는 기름칠한, 그리고 규레쉬(Gres)는 씨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경기는 마치 국제레슬링연맹의 자유형 경기와 같으며 승부역시 상대가 양어깨가 땅에 닿으면 한판으로 승리하게 된다. 원래는 한판승만 있던 경기로 승부가 날 때까지 계속 경기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최근에는 30여 분의 시간제한을 주고 있다. 

1360년 쉴레이만 파샤가 알라와 술탄을 위해 40명의 씨름꾼을 초청해 씨름경기를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승부가 나지 않자 다음날 새벽까지 경기가 지속되었고, 최후의 두 사람이 모두 사망하여 쓰러진 곳에 샘물이 솟았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매년 1,000여 명의 씨름꾼들이 경기에 참여하여 천하장사를 선발한다.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씨름(레슬링)의 명칭은 터키의 규레쉬와 같이 코라스(Kora?), 큐라쉬(Khuresh), 구라쉬(Kurash) 등 발음만 다르지 같은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터키인들에게 싸름은 오랜 역사와 함께 남아 있다. 터키인들은 어떤 지역에 정착하면 당시 승리했던 전사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기리기 위해 이런 씨름대회를 연 것이다. 또 그들의 바람대로 수천년 동안 대회가 계속됐다. 

터키군대의 훈련 역시 씨름을 통해서였고, 이 씨름은 훈 제국이 설립되었을 때부터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씨름은 ‘카라국칵 (Karakucak)’이라고 불렀다. 오스만 제국 이후에는 그 자신과 영혼을 잃지 않기 위해 기름을 바르고 씨름을 하게 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원래 터키씨름의 근원지는 그리스 사몬나(Samona) 마을의 초원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원래 명칭은 ‘그리스 레슬링’ 이라고 불렸다고도 한다.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 말에 이 씨름은 에디르네와 무스타파파사 도로의 사이에 있는 ‘비란텍케(Virantekke)’에서 조직됐고, 공화국 이후 1924년 에디르네에서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1946년부터 에디르네 지방자치단체가 대회를 개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터키씨름에서 올리브유를 몸에 바르는 장면. [사진=크르크프나르 축제 조직위]


경기 전 음악과 선수들의 퍼포먼스 - 긴장감 부여 

이 곳에서 씨름꾼을 ‘페리반(Pehlivan)’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페르시아어로 ‘용감한, 대담한’이라는 의미가 있다. 현대 경기에서는 전체 7개 종별로 치러지는데, 8-10세와 10세-12세로 구분된 어린이부와 12-14세, 14-16세, 16-18세이면서 최대 2년이상 경력으로 70kg이하, 18-19세이면서 최대 80kg이하, 19-21세이면서 90kg이하, 그리고 21세이하면서 65kg이하로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로 말하면 천하장사(Head Wrestler)에 해당되는 경기가 가장 큰 이벤트다. 연령 및 체중에 따른 종별을 제외하고 천하장사급에 참가할 수 있는 선수의 규정을 보면, 96-120kg의 레슬링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자,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의 메달리스트, 120kg 세계선수권이나 유럽선수권대회 등의 승자 등이 참여할 수 있다.

심판은 매년 에디르네정부가 정기적으로 선임한다. 종류는 두 가지인데 본부석에 있는 심판(tower referee)과 경기장에 있는 심판(field referee)있다. 타워심판은 선수들과 필드심판, 그리고 아나운서 등을 배정하며, 필드심판은 경기운영을 담당하고 경기결과에 대해 타워심판에게 보고하는 일을 담당한다.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록된 크르크프나르 축제는 경기, 씨름바지, 전희(foreplay, 前戱), 빨간색 촛불, 황금 벨트 등이 상징이다. 먼저 온몸에 올리브유를 바르는 기름칠은 의식과도 같다. 아나운서의 기도가 완료되면 선수는 기름칠을 해야 하는데, 그 순서는 오른손으로 왼쪽어깨, 가슴, 팔과 바지에 칠하며, 이를 왼쪽으로 또 반복하는 것이 원칙이다. 전희는 워밍업 운동으로 생각하면 쉽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관객들이 응원하고 선수들이 기분을 상승시키며, 선수가 경기에 임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동시에 경기를 알리는 의식이다. 이 전희가 끝나면 심판위원회 앞에서 아나운서의 소개와 함께 왼 무릎을 꿇고 상대의 목을 잡은 후 경기를 시작한다. 

재미있는 의식 중 하나는 씨름바지(kispet)를 착용한다는 점이다. 이 씨름에서는 기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의 손이나 손가락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여기에 금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를 착용하기 전에 선수는 나마즈(namaz)라는 기도를 한다. 

기름칠을 하는 동안 드럼과 혼이라는 악기의 음악이 선수의 기도와 함께 이루어진다. 박자와 리듬은 심장이 뛰는 느낌을 전한다. 처음 생명이 탄생하고, 사람의 수명 기간 동안 다양한 모양과 색조 느낌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쩔 때는 느리게, 흥분할 때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 음악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를 안정시키고, 기름칠을 하는 동안 경기에 임하는 마음을 가다듬게 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 풍물패가 장단을 맞추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우승자에 부여하는 가장 큰 상은 1kg의 금을 장식한 황금벨트다. 하지만 이 벨트는 3회 우승자에게 수여된다. 또 이 씨름대회에서는 붉은 촛불(Red Candle)이 상징이다. 이 촛불은 과거 전령이 통신수단으로 사용하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씨름경기 이전에 각 선수들에게 초를 전달해 선수를 초대하는 의식이 됐다. 



터키씨름의 경기장면(우측이 필드심판), [사진=크르크프나르 축제 조직위]


한국씨름 세계화 정책, 터키씨름과도 추진하면 어떨까? 

터키의 오일씨름이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필자가 터키의 에디르네를 방문해 경기장과 에디르네 정부, 그리고 에디르네 유네스코 담당자와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수많은 전쟁과 정착, 그리고 접경지로서의 갈등 등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영웅을 찾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씨름은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한 전사를 선발하는 과정이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유를 바르고 경기를 펼쳤다는 점에서 씨름에는 터키인들의 자부심이 배어 있다. 전 세계 어디를 보아도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매년 대회를 개최하며 천하장사를 선발한 기록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터키인들만의 잔치로 그 명맥을 이어오다 보니 오일씨름은 그 의식과 절차, 그리고 많은 행사의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이 씨름대회가 개최되기 전에 역대 씨름장사들의 무덤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의식들은 씨름영웅을 그들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다 보니 에디르네 이외의 지역에서도 장사대회가 매년 축제의 형태로 개최될 정도로 터키인들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오일씨름이 이제는 국제행사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필자가 연구원들과 현지조사를 간 2015년 에디르네 정부관계자들은 “씨름대회를 국제적인 축제로 확대하려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오랜 전통을 가진 축제가 어떻게 국제화라는 새로운 변화를 치를지 궁금하다. 

터키사람들은 우리의 천하장사와 교류하길 원한다. 우리도 최근 천하장사대회에서 국제대회를 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 우리를 지원한 터키는 한국을 형제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교과서에는 고구려와의 관계까지 언급하고 있으며 한국을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스탄불 전철역에서 만난 터키의 퇴역군인이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 왔느냐”며. 그러면서 자신의 가슴에 달린 뱃지를 보여주며 “한국전쟁을 참전했고, 한 언론사가 초청해 한국을 방문했으며, 항상 대한민국의 뱃지를 달고 다닌다”고 반갑게 맞이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각저도를 보면서 왜 그 벽화의 씨름꾼이 외국인처럼 생겼을까? 이미 고대 국가 간의 씨름 국제대회가 이미 존재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씨름이 전 세계의 씨름꾼들과 함께 하며 제2의 부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인 씨름교류, 터키의 씨름대회처럼 한국씨름을 상징할 수 있는 축제개발, 씨름진흥법에 명시된 씨름마을 조성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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