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럭홈즈와 유도창시자 가노지고로가 만났다.

2015. 7. 10. 03:00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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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명치39년) 일본무덕회에 일본의 각 유술유파의 고단자들이 현대유도의 창시자 가노지고로와 기념촬영을 한 것이다. 유술의 통합과정시기다. 

신식군대와 무기 등으로 일본에서는 유술이 거의 사장되어 있었던 시기다. 대부분 접골을 하거나 다른 생업을 하고 있었다. 가노는 무덕전과 일본무덕회를 만들어 유술과 검술 유파들을 불러 모은다. 다양한 유파가 사라질 즈음 그는 일본무도를 일본의 우익활동으로 활용한다. 


영국의 셜록홈즈가 일본 유도의 가노지고로를 만났다. 셜록홈즈는 세키쿠찌류의 사토사범으로 부터 유술을 배웠다는 것은 무예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익히 알 일이다. 셜록홈즈가 가노를 만났을때의 기억을 일기에 적어 놓았다. 


1889년 레스토랑 "심슨 가족"에서 만났는데, 


한남자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28세정도로 보였다. 

몸가짐이 바랐고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신장은 작은 편으로 검정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레슬러나 복서의 신체적 특징은 거의 없었다. 코와 귀도 정상이었다. 

얼굴이 좌우대칭으로 무너진것도 아니고 주먹이 큰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손목은 매우 굵었으며 종아리 삼두근이 잘 발달하고 바지는 종아리둘레에 꽉 찼다. 


슈트와 모자는 새로웠다. 슈트는 영국것이었다. 

팔꿈치가 마모하거나 바지의 무릎이 나오지 않았다. 

오른손을 사용해 모자를 벗었고, 신발은 프랑스제였지만 흠집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새것 같았다. 


악수를 하면 마르세유 비누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악수는 놀랄정도로 강하고 단단한 느낌이었다. 톱은 짧게 정돈되어 있었고, 변형이나 균열은 없었다. 

"조금 전까지 마르세유에서 숙박했다"라고 말해, 놀랐다. 



홈즈가 가노사범을 만난 것은 1889년 9월이다. 그는 경제학 교수였으나, 일본 문부성의 명령으로 유럽교육사정 시찰관계로 와 있었다. 그는 28세였지만 이미 무술계에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오랫동안 덴진신요류 유술을 배웠는데, 일본의 5대 유파유술을 선별해 단을 버리고 자신의 강도관 유술을 만들어 유도라고 한 사람이다. 


하지만 홈즈의 이야기와는 달리 가노사범은 학습원 교감이었고, 궁내성에서 1889년 유럽으로 갔다. 문부성 유학생이었던 나쓰메 소세키 등보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귀국 후에 고등학교 교장 (현재 쿠마모토 대학 학장에 해당)이 될 정도로 박사일거라것이라 생각하고 영국에서 "닥터"라고 한 것 같다. 


가노는 박사학위를 받지 않았다. 일부 영문표기에 'Dr'로 표기한 것은 한번 검토해 볼 일이다. 가노는 덴진신요류와 여러 유파의 유술을 배운 것은 확실하다. 그의 자서전에 " 유술 각파을 연구했다"고 쓰고 있는데서 알 수 있지만, 사실 각 유파를 배우면서 시합에서 이겨봤다는 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가노가 왜 그리 유도계의 명성을 가지고 있을까?

1906 년 가노사범이 45세때 일본무덕회에서 각 유술유파 원로들과 제정형을 만들면서 유도계의 수장이 된것이다. 이 사진이 그 증거다.

 

IMAI N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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