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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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 수박이 있었다?
백제(百濟)의 수박이 화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백제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꽃피워서 일본에 전하는 가교(架橋)의 역할이 있었으므로 그들과 교류가 빈번했던 것이다. 왕을 비롯한 귀족층이 고구려 사람들이었다고 본다면 고구려의 풍속이 백제에 그대로 전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선배제도의 수박(手搏)도 백제에서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는 고구려나 신라보다 앞섰던 것으로 보이며, 계백(계백:?~660 의자왕 20)과 신충(信忠)같은 장군의 출현을 생각하면 무술(武術)도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자료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인용했다. "전라도 여산군 작지 마을에서는 해마다 7월1..
2022.06.07 -
한국무예진흥을 위한 담론
2016.6.2. 한국교원대 교육박물관에서는 '한국무예진흥을 위한 담론'이라는 주제로 대한무도학회 춘계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전국의 무도(예)학 연구자들과 교수진이 참여한 이 세미나에서는 국립무예진흥원의 설립, 무예진흥을 위한 충북의 역할 등에 대해 학자들의 열띤 토론도 있었다.
2022.06.02 -
태권도의 흔한 거짓말
문득 이 사진을 보니 우리집 녀석이 당당하게 이야기한게 생각난다. "태권도는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소중한 문화야. 그죠? 아빠?" 바로 답을 주었어야 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변명으로만 들렸을거다. " 역사가 맞아요? 안맞아요? " 아직도 이 두 사진은 태권도 역사라고 단골로 등장한다. 대단한 용기다. 정말 용감하다. 아이들에게 이제는 솔직해져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기때문이다. 역사왜곡에 사기꾼소리는 듣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불교사학자들은 금강상이 헤라클라스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상당히 근거 있는 논리다.
2022.06.02 -
프로레슬러 1세대, 천규덕
김일과 같이 국내 프로레슬러 1세대였던 천규덕씨가 별세한지 1주년이 되었다. 그는 씨름인이자 당수인 출신이다. 1955년 씨름 선수를 시작해 1961년 씨름 선수 은퇴 이후 프로레슬러로 전향했으며, 1985년 프로레슬러를 은퇴했다. '당수의 달인'과 '당수귀신' 등으로 불리며 최고의 스타였다. 왜 그가 씨름선수였는데 당수로 유명했을까? 그는 중학교 시절에 이미 당수도 공인 3단이었으며, 부산에서 공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다가 1963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레슬링 오픈 행사에서 황소를 맨손으로 때려잡아 화제가 됐기때문이다. 천규덕은 1961년 6월 17일과 18일에 열린 서울운동장 특설링에서 장영철 등 20여명이 출전한 기록이 있다. 이 당시 천규덕은 당수도 5단으로 소개되었다. 장충체육관에서 황소를 제대..
2022.06.02 -
발차기는 동양에서 유럽으로 갔다.
19세기 복싱은 영국식과 프랑스식과 영국식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그중에서 복싱이 현재의 올림픽스타일이 되었고, 프랑스식 복싱 은 'savate' 라 하여 GAISF종목이면서 세계무예마스터십종목으로 남아 있다. 사바테는1700년대 후반에 개발되었고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항해하는 프랑스 선박에서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곳에서 아시아 문화중 발차기 기술을 배웠다고 보고 있다. 사바테는 여러 나라의 선원들이 모이는 프랑스 남부의 중요한 항구 마르세유에서 처음 발견된다. Savate의 의미는 Savate라고 알려진 당시의 부츠를 사용하여 상대방의 다리와 몸을 공격했다고 해 이름이 붙혀진 것이다. 이러한 사바테측의 기록에 나타난 사실은 발차기 기술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진은..
2022.06.01 -
유도의 고민, 무도냐 스포츠냐
가노지고로가 유럽에 유도를 보급했지만, 유도는 두가지 방향으로 상황이 만들어졌다. 일본인의 영향력이 우세한 지역에서는 가노지고로의 지시가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다른 한편, 중부 유럽에서는 권투와 레슬링 전통의 영향으로 유도가 이미 체계화되고 고유한 규칙이 있는 격투 스포츠에 동화되었다. 1939년 9월 1일에 발발한 세계대전은 국제 유도의 스포츠 지향에 최종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에서는 무사도(武士道)와 일본 정신인 야마토 다마시(大和魂)를 장려하기 위해 일찍이 1931년에 학교에서 무술 연습을 의무화했었다 . 그러나 패전이후 무술은 서양 스포츠를 대체했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한 후 연합군 최고 사령관을 역임한 맥아더 장군은 포츠담 협정에 따라 일본의 비무장화를 시작했다. 1945년 10월..
2022.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