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Martial Arts2011.10.03 16:22

1932년 10월 6일. 동아일보기사다. 조선무도관에서 관원을 모집하는 내용을 다룬 기사인데, 흥미로운 것은 펜싱이 최초로 유입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이도류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고의 내용으로 보면, 일본의 검도, 이도류, 펜싱이 같은 활동을 했음을 말해 준다. 같은 시간대에 수련하는 시간을 안내하고 있다. 오후반의 경우 검도, 이도류, 서양검도(페싱)이 4시반에서 6시, 권투가 6시부터 7시반, 유도와 씨름이 8시에서 10시까지로 되어 있다.

이도류(二刀流)라는 말을 들어 보통 미야모토 무사시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이도류의 창시자로 미야모토 무사시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廣辭苑》에서는 "이도류와 이천일류는 동일하며, 이천일류는 미야모토무사시가 창시한 검도의 일파(一派)"(新村出編, 1959)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圖說日本武道辭典》에서는 "이도류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천일류를 학습하는 것으로 에도시대 중순이 되어 주창한 유파의 의식"(笹間良彦, 1982)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도류가 미야모토 무사시가 창시한 이천일류로부터 생겨난 일파의 무술이기는 하나, 현대검도에서 이도류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유파의 의식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현대검도에서 사용되는 이도류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창시자라고 보기는 힘들며, 양손에 칼을 가져 싸우는 검법의 총칭으로서 이도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반적으로 "두개의 칼을 갖고 싸우는 것"(全日本劍道聯盟, 平成3年)을 이도류를 나타내며, 특수한 경우에 대해 구체적인 유파명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二刀流'와 '二刀'와 구별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二刀는 칼과 호신용 단도의 것을 가르키는 것이고, 이것을 이용하는 유파를 二刀流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二刀流라는 말은 그리 사용하지 않고, 二刀, 즉 "두 개의 칼(二本の刀)을 가져 싸우는 것"을 의미하여 二刀라고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兩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양도도 대도와 소도, 즉 칼과 호신용단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二刀라는 의미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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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11.0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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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4월 27일.
세계검도선수권대회의 전신인 사회인국제검도대회에서 개인전에 고 김춘경선수가 우승을 차지한다. 아마도 최초의 개인전 우승일것이다. 그는 5단부이하 경기에서 일본의 선수를 상대한 결승전에서 3분 32초만에 머리와 허리치기로 우승을 차지한다.

그는 육사 검도교관을 비롯해 용인대 검도교수로 재직한바 있다. 그의 지도철학은 "검도는 발로 하는 것이다"였다. 항상 기본을 중시했고, 머리나쁘면 검도를 못한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이러한 이유로 하체훈련을 강조했고, 용인대 뒷산인 부아산 크로스컨트리를 자주 시켰다. 그는 검도계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남아 있다. 단별선수권대회라는 대회가 있는데, 동일한 단끼리 하는 시합으로 1단부터 7단까지 우승한 적이 있다.

대학시절 소주를 함께 마시며 한 말씀이 기억난다.
"기본이 중요하다. 기본을 갖추면 뭐든 자신이 있다"
"나는 검도를 늦게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운동이 끝나면 타격대를 놓고 기본에 충실했다"
"기본에 충실하면 시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상대가 움직여도 고정된 타격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김춘경선생님은 먼 세상으로 떠나셨다.
문득 옛자료를 살펴보다 선생님 자료가 나와 몇자 적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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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02.19 18:18


HP | HP psc2400

네이버 '검도세계카페'에 닉네임 셋쇼마루님이 올려주신 사진과 글입니다. 사진과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바로 이사진은 1967년도 최초의 국가 대표 선수들입니다. 18명의 정예선수들이 3조로 갈려 풀리그전 끝에 A조 우승 강용덕 B조 우승 김춘경(위 사진에는 훈련불참으로 없음) C조 우승 김재일, 자동케이스 김영달, 정태민, 5명이 선발되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제 3회 국제 사회인 대회 출전자 들입니다. 5인조 첫 시합에 일본에 유일하게 이긴 강용덕 선생은 상대 오가켄지로(전 무도대학장)을 2:0으로 격파한 귀재입니다. 좌로 부터 서정학, 정태민, 김영달, 서동준, 강용덕, 이홍국, 김석춘, 전동욱, 윤병일, 그 옆은 당시 서울대학생으로 김영배 선생 조카가 그냥 참여 한 것 입니다. 마지막 김영배 선생 이때 맨땅에서 맨발로 강훈련을 했고 서정학 선생님이 직접 지도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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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02.07 23:21
Canon | Canon PowerShot S60 | 2007:07:21 10:18:02
SONY | DSC-F828 | Normal program | 2006:07:21 09:51:50

2007년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에 "제2회 김응문 선생님 추모 세미나"에 대한 가사가 실렸습니다. 서울 성남고등학교 LA동문회에서 과거 검도선생님을 추모하는 추모대회에 자리를 보도한 것입니다. 끈근한 동문 이야기가 미국에서도 있다니 대단합니다.

1. 한국일보 기사 (8월 13일, 2007년)

'스승존경, 동문사랑' 검도의 정신이죠

성남중고 검도부 출신 '성검회'

고 김응문 선생 추모 세미나
가족, 한국 동문들도 초청
이국땅서 검도의 맥 이어가

예로부터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고 했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스승 존경’을 마음에 새기고 우정을 나누는 동문들이 있다. 바로 성남중고등학교 검도부 출신들로 구성된 ‘성검회’ 미주 동문들이다.

이들은 지난 달 세리토스에 있는 리저널 팍 체육관에서는 의미있는 행사를 가졌다. 지난 84년 작고한 자신들의 스승 고 김응문(검도 교사 8단) 선생을 추모하며 제2회 검도 세미나를 펼친 것이다.
남가주에서 활동하는 성검회 회원들은 물론 한인 검도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생전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검도의 본과 기술을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성검회 동문들은 이날 행사에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고 김응문 선생의 가족과 각각 한국과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 김 선생의 수제자와 선배를 초청,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이들의 동문사랑도 각별하다. 특히 한 스승 밑에서 같은 가르침을 받으며 선의의 경쟁을 펼친 사이다 보니 학창시절의 추억은 삶의 다른 어떤 기억보다 소중히 자리했다.
대학 졸업후 성남중고등학교 검도교사로 모교에 돌아가 7년간 후배들을 가르친 박재욱 사범(검도 교사 7단)은 지난 2000년 미국에 오자마자 친구 찾기에 나섰다. 고교시절 함께 수련했던 제임스 현(검도 4단)사범이 LA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0년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이었다. 박 사범은 전공을 살려 검도를 계속하고 있었으나 당대 라이벌로 실력을 겨뤘던 현 사범은 목사가 돼 있었다. 현 사범의 재능이 묻히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박 사범은 친구에게 다시 운동을 시작할 것을 권유했다.
현 사범은 “수 십년만에 다시 만난 친구가 이제는 검도를 선수가 아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그렇게 실력이 꽃을 피울 것이라고 격려한 덕분에 지금은 사역과 검도를 접목시켜 활동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두 친구의 재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이프러스 검도장의 강은구 관장은 “후배들이 스승의 정신을 이어가고 우정을 나누며 검도의 정신과 맥을 이어가는 모습에 흐믓하다”며 “앞으로도 계속적인 세미나와 모임을 통해 검도를 더욱 활성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재욱 사범 역시 “검도는 예의를 배우고 정신집중을 기르며 자세를 고치는 매우 좋은 운동”이라며 “이 시대 마지막 무도라 할 수 있는 검도를 통해 옛 것을 지키는 노력과 스승을 존경하고 모시는 모습은 요즘 어린이들에게 큰 가르침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 중앙일보 기사 (8월 28일, 2007년)

'미국 검도 열풍의 중심입니다' 성남중•고교 검도부 모임 '성검회'         

내년 9월 전세계 검도인 대회 추진

"검도의 매력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한국의 검도명문 성남중학교 고등학교 검도부 출신 선후배들의 모임인 성검회(회장 강은구)가 남가주 검도 중흥의 주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올해로 창립 8년을 맞은 성검회 남가주 동문모임은 강은구(20회) 회장, 박재욱, 제임스 현, 박동섭(이상 30회), 유재호(32회), 허욱(33회), 최지환(35회), 이원영(36회)씨 등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 5명은 현재 검도도장 관장 또는 사범을 맡아 검도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검도부 출신답게 최저 초단에서 최고 7단의 유단자들로 구성된 성검회 회원들은 지금도 틈만나면 도장을 찾아 검도수련에 힘쓴다.

두 달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가지며 친목을 다져오던 성검회 회원들은 단순한 친목 도모를 넘어 검도계 전체 발전에 힘을 보태자는 취지로 지난 해부터 검도 세미나를 시작했다. 첫 해 세미나에선 검도의 기본과 기본형이 소개됐다.

지난 달 21일 세리토스 리저널 파크 실내체육관에서 개최한 제 2회 검도 세미나엔 100명 가까운 검도인과 그 가족들이 운집해 성황을 이뤘다. 쌍칼을 사용하는 법이 집중적으로 다뤄진 이번 세미나는 1959년 4월 성남중 고등학교 검도부를 창설한 고 김응문 교사를 추모하는 성격으로 치러졌다. 고 김 교사의 막내딸 경숙(풀러턴 거주)씨는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미나에 참석했으며 한국과 캐나다 등지의 동문 선배들도 대거 참석 성검회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성검회는 내년부터 세미나 대신 전세계 검도인들이 출전하는 검도 오픈대회를 열 계획이다. 성남중 고 남가주 동문회도 대회를 후원할 예정이다.

검도세미나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제임스 현씨는 "미주에서 한인들이 세계 각국 선수들이 참가하는 검도대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며 "내년 9월 열릴 초대 대회를 계기로 남가주는 물론 미주 전체에 검도 열풍이 불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 회장은 "검도는 전신운동으로 바른 자세를 갖추는 데 도움이 되며 집중력과 판단력 순발력 배양에 좋다"며 "특히 청소년들의 예절 교육에도 효과적"이라고 검도의 장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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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s2010.01.29 13:43

'조선세법(朝鮮勢法). 17세기 초 중국의 모원의(茅元儀), 1594∼1644)가 쓴 중국의 병법을 집대성한 <무비지(武備志)>에 나오는 검법이다. <무비지>란 중국 역대의 모든 병법서(兵法書)를 참고하여 명(明)나라 말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84권부터 92권까지가 교예편(敎藝篇)으로 여기에 유일하게 검법(劍法)이 있는데 이 검법의 이름이  ‘조선세법’이다.

모원의는 조선세법에 대해 '근자에 호사자(好事者)가 조선에서 검법을 얻었는데 그 법이 구비되어 있다. 중국에서 잃은 것을 사예(四藝)에서 찾은 것이다'라고 설명해 당시 검법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또 현대 일본검도인 'Kendo'의 정립과정에 조선세법도 영향력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무예도보통지>에 있는예도에도 영향력이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조선세법은 한, 중, 일의 검술에 영향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모원의(茅元儀)의《武備志》

조선세법의 세법구성은 거정세 점검세 좌익세 표두세 탄복세 과우세 요락세 어거세 전기세 간수세 은망세 찬격세 요격세 전시세 우익세 게격세 좌협세 과좌세 흔격세 역린자 염시세 우협세 봉두세 횡충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조선세법의 다양한 기술은 일본의 스포츠화된 검도인 'Kendo'의 유형과는 많은 부분 다르다. 직선적이 아닌전후좌우 변화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각 무예단체들은 전통 검법이라고 하여 제각기 해석하고 복원한 상태에서 보급하고 있다. 

조선세법의 국내 연구는 1999년에 한국체육학회지에 이종림에 의해 24세 중 8세만 해석해 발표되었고, 2000년에에는 수년간 조선세법에 대한 연구를 해 온 김재일에 의해 <조선세법>과 비디오 영상자료가 발표되었다. 그 후 일부 단체들의 개별 연구들이 있었다. 김재일의 경우는 조선세법 전반에 대해 사진과
함께 수록하고, 검과 도의 역사적 추적 등을 통해 검과 도의 구분 및 변천과정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조선세법에 대한 완전한 해부를 했을 정도로 이 세법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연구자는 일본검도를 수련한 대한검도회 소속으로 이종림의 경우는 일본식 해석이
강하다는 평가와 김재일의 경우에는 조선족인 허일봉과의 공동복원을 통한 것으로 중국식 해석에 가깝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사실 검의 원리가 중국식, 일본식은 뚜렷해도 한국식은 애매모호한 상태다. 

이러한 연구와 복원의 노력들은 아직은 진행과정이다. 미완성의 복원단계라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각 단체별로 해석의 차이가 있고, 특히 대한검도회내에서도 조선세법에 대해 두 연구자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한검도회에서는 이 세법에 대해 별도의 승단제도를 만들어 단증을 부여하고 있다. 일명 이종림식 방식을 채택하여 검도이외의 조선세법단증을 부여하고 있다.

대한검도회뿐이 아니다. 기타 무예단체들이 조선세법을 표방하며 제각기 다른 해석을 통해 전통무예라고 하고 있고 전통검법이라고 보급하고 있다. 본국검과 더불어 검도계에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해석과 복원의 차이때문에 수련생들은 혼란스러운 상태다.

각 단체별 해석은 검술의 특성과 운용법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검법의 해석과 재현이 어떤 방식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 논리가 미약하다.

조선세법은  <무비지> 게재 이전과 이후에도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 이르기까지 공유하고 있던 검법일 수 있다. 이런 조선세법검법의 복원 및 재현작업은 국내무예단체 관계자뿐만 아니라 각국의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국내 검도단체들부터라도 우선 복원 및 재현을 위한 공동연구를 통해 지속적인 검법 교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선행연구와 복원자를 비롯해 각 검도단체들의 협조로 풀어 간다면 복원된 조선세법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조선세법은 앞으로 검도의 한국화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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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s2010.01.11 03:13
개화기 일본에서 Kendo유입, 90년대 유사단체 증가 혼란

우리나라에서 검도는 근대체육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근대초 개화의 분위기속에 일본에서 유입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개항시기인 1876년에 일본에서 다양한 서구식 혹은 일본식 체육이 유입되었다는 가설속에서 죽도형태의 검도가 이 시기에 무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해방이후 우리나라의 힘으로 단체를 조직한 대한검사회 조직구성이전인 1947년까지 존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해방이후 한국검도는 일제검도의 유형이 그대로 반영된다. 대한검도회 창립과 더불어 대한체육회에 가맹되게 되고, 그후 학교체육과 군경에서 활성화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1988년 올림픽이후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도장이 급증하게 되었고, 유사검도단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유사단체의 급증에 대한 원인은 기존 단체인 대한검도회의 수련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가장 크다. 그것은 죽도검도수련-형의 검도수련-실전베기검도수련이라는 일본의 검도틀과는 달리 죽도검도만을 고집해 온데 있다.

  
 근대체육의 태동기에 유입된 일본의 Kendo
 
대한검도회가 죽도검도수련체계위주라고 하면, 유사검도단체들의 경우는 형의 검도와 실전베기검도중심으로 그 단체는 1996년 50여개가 넘었다. 이 당시 유사검도단체들의 명칭은 해동검도, 한국검도, 검선도, 화랑무예 검도 등으로 6개월에서 1년의 지도자과정을 통해 급조된 지도자들이 세를 넓혀 대한검도회의 수련인구만큼 증가하게 된다.

이 단체들의 수련내용은 도법 혹은 검법, 격검으로 구분된 것이 특징인데, 대부분 도법이라는 실전베기와 형위주의 수련으로 시작돼 단체가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격검이라는 부분의 경기적 측면도 등장한 것이 특징이다. 그 후 2000년대에 접어들어 80여개의 단체가 생겨나고, 이후 현재는 100여개의 유사검도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endo를 Kumdo로 사용하는 것, 설득력 없다

검도의 기원은 <한서(漢書)>의 劍道38編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말하는 검도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죽도의 발명과 함께 등장한 죽도경기를 칭하는 말로 국제용어에서는 ‘Kendo’로 정의되고 있어 국제용어자체에 일본에서 시작함을 명시하고 있다.

40여개국의 국제연맹가맹단체에서 유일하게 ‘Kendo’가 아닌 ‘Kumdo’로 표기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이것은 일본에서 정립한 검도의 원류가 우리나라라는 강한 집착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강한 집착만 있었지, 과연 우리만의 독창적인 검도를 발달시켜왔는가라는 비판의 소리도 크다.
우리는 ‘Kumdo’라는 영문표기에 익숙해져 있다. 또한 당연히 ‘Kumdo’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끝까지 고집하고 있다. 그동안 인터넷상에서 네티즌들은 ‘Kendo’냐, ‘Kumdo’냐를 놓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유도가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까지 ‘Yudo’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국제용어 'Judo’로 명칭을 변경한바 있다. ‘Yudo’를 사용할 시기 유도계에서는 유도는 우리의 유술이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유도로 유입되었다는데 강한 집착을 보인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유도경기는 일본의 가노지고로에 의해 정립된 ‘강도관유도’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올림픽종목에서 역시 종주국은 일본이라고 명시하고 있어 거부할 수 없는 용어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검도회의 검도는 'Kendo'를 사용해야 한다. 검도인 ‘Kendo’는 지금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 혹은 국제적인 입장에서 “Kendo’는 죽도경기를 말하고 있다. 검도라는 용어가 한서(漢書)에 나왔다는 근거를 대며 ‘kendo’로 해석 되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말로 ‘켄도(Kendo)’가 아닌 검도로 한자 풀이가 될 뿐 국제적인용어는 ‘Kendo’가 맞다는 주장이 앞선다.

우리는 ‘Kendo’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제3국의 입장 혹은 비 검도인들의 주장에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가? 그래도 ‘kumdo’다 라고 말한다면, 서양인들이 표현하는 “Japanese Fencing’이라는 표현도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지금의 ‘Polo’와 동일한 ‘격구’가 있었다고 해서 ‘Polo’라 하지 않고 ‘Kyeoku’라고 해야 하는가? 이러한 논쟁의 소재는 서구에서 일고 있는 동양무도의 연구방향의 확대로 인해 그들이 손대기전에 정리되어야 할 과제이다.


 수련환경 무시한 요판제거

   원안은 도복하의의 요판
 
도복의 문제는 해결되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국내에서도 나름대로 한국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극복되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우려가 되는 점은 있다. 지금의 도복은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평상복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나라 검도가 더 우월하고 긴 역사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수련하는 수련복은 한국식이 되어야 할 것 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죽도경기에 한국식을 가미한다면 훗날 죽도검도의 역사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환된 것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훗날 우리의 치욕스러운 검도사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죽도검도는 일본에서 고안된 것이다. 도복역시 일본 것이기에 이 경기화 된 죽도 검도를 할 때 일본식 도복을 착용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국제화가 된다면 국제적인 취향으로 변화될 것이 뻔하다. 그것은 유도의 컬러도복의 논쟁거리로 우리는 미리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일본식 죽도검도 경기에서 국제적인 취향으로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몇해 전부터 국내 주요경기에서 요판이 부착된 도복착용을 금지시키고 있다. 일본색이 강하다는 것과 개량된 도복의 안정성을 설명하며 정해진 규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검도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허리이다. 밸트형도 허리를 보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벨트형의 경우 허리강화운동에 도움은 주지 못할 것이라는 한편의 주장도 있다. 이러한 요판의 문제는 충분한 임상 실험에 의해 실험을 공개하고 검증을 받았어야 했다. 일복식 도복의 개량문제와 한국식도복의 착용에 대한 주장들은 앞으로 검도복의 한국화 작업의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심지어 지난 사회인검도대회에서 국내 선수들의 경우는 요판에 따른 금지조항이 적용되었으나, 일본에서 출전한 선수들의 경우는 묵인한 일이 벌어졌다. 모호한 심판규정이 아닐 수 없다.

도복은 수련자의 환경에 대한 최후의 자존심이다. 언제나 환경은 인간을 지배하려 들고 인간은 스스로 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검에 대한 수련에 있어 그 본질은 내,외적으로 도전에 대한 자아 정체감의 확립이라 할 수 있다.

도복의 의미는 자연으로서의 인간이 인간적 질서를 내세워 환경에 대한 가장 최선의 예우이다. 검을 수련하는 것은 환경과 또 다른 자극과의 싸움에서 스스로가 초월하고자 하는 것인데 수련차원에서 일본식 도복을 입고 수련하는 그 의미는 한국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경기화 된 죽도경기에 한국식 도복은 맞다고 생각 될 수 있는가? 모든 의견을 수렴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편향된 수련체제 강조가 많은 유사단체 등장시켜

지금 국내의 모든 법인 단체들은 과거 특정 단체만이 누린 ‘단일체제’의 특성이 사라졌다. 김영삼정부 당시 많은 법인 단체들이 독단적인 운영 혹은 비리가 발생되었다는 것과 단체들의 자유경쟁원리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결과로 사단법인가가 자유롭게 이루어져 법인으로서의 검도유사단체들이 급증했다. 국내 법인이 어려울 당시 해동검도의 한 단체는 미국에서 법인을 받았다.

근본적으로 국내검도의 다양한 단체형성은 기존 검도계(대한검도회)의 지나친 죽도경기위주의 오류에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한검도회 이외의 단체들이 대한검도회의 검도와 상반되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탈(脫) 일본검도’에 있다. 반일 감정이 어느 민족보다도 강한 우리 사회에서 ‘탈일본검도’라는 이슈는 검도 동호인들로 하여금 신선하게 다가섰고, 많은 검도인구를 확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단체들의 특수한 형태나 역사적 논리의 난해함, 그리고 불분명한 지식체계의 난립으로 이한 문제가 야기되었다.

둘째는 죽도위주의 검도가 아닌 진검 수련에 큰 목표를 두고 있다. 검도가 다른 무도와는 달리 정신적인 수련활동에 도움을 준다는 기존 사고들을 죽도가 아닌 진검 수련 중심이 일반인들에게는 많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기존 대한검도회에서 진검수련의 여부를 놓고 많은 갈등을 일으키던 가운데, 일선 지도자들이 대부분 경기 위주의 죽도검도에는 기량이 우월하나 진검 기능에는 미흡하다는 부문에 사설 단체들의 검도수련매력은 큰 효과를 초래하였다.

이미 국제적인 보급과정에서 오는 죽도 검도의 본질 규명에 있어 한국 것이 아닌 일본 것 이라는 정통성이 고수 된 것은 이미 인정된 사실이다. 이러한 일본성향에 맞서 대한검도회내에서도 개선의 의지, 즉 한국화 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는 쉽게 결심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탈일본화의 정책과 통합적 의미로의 단체육성이 과제

수련체계 개선을 위하여 탈일본화와 진검 중심의 수련과정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탈일본화의 정책적 방안은 없는가? 이미 검도의 종주국인 일본은 ‘검도의 올림픽화’를 거부하고 있는 층이 강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검도가맹국들은 ‘경기화추진’과 ‘올림픽정식종복채택’이라는데 긍적적인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태권도의 한국화작업에 대한 선례가 있다.

태권도가 '탈 공수도' 혹은 '탈 가라데'를 표방하고 한국화작업에 대한 많은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올림픽의 정식종목채택으로 인해 많은 변화와 노력을 해오고 있다.

우리검술의 뿌리를 복원하는데 노력해야 하고, 우리 검도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다. 여기서는 대한검도회의 검도가 정통성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면 자기우월성과 비전성, 철학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지않게 되고 순수하고 본래적인 전통검도의 의미가 성립될 것이다. 이러한 토대위에서 민족적 자긍심으로 우리의 전통검도를 기를 수 있다.

또한 전통검도라 이야기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밝혀야 하고, 전통의 바른 해석을 통해 생명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의 몸짓이 무엇이고 그 기능을 후대에게 올바르게 전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대한검도회에서는 여러 사설단체들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으므로 대한검도회내에 활발한 검법연구와 더불어 조직적인 학회 및 정부기관이나 대학기관과의 책임있는 단체로 급부상하면서 여러 사설검도단체와의 폭넓은 의견교환 등으로 조직을 제정비하고 학회를 발족시켜 전통검도를 활성화화 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검법은 문화적인 차원에서 보전하고 존속시켜야 하며, 경기 검도는 스포츠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이중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단체들에게도 대회규칙이나 공통적인 법률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해당 단체나 도장들은 자율적인 차원에서 고난도의 동작이나 독특한 형 등을 발전시켜 여러 단체들의 검증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검도라는 모든 단체들은 <무예도보통지>와 같은 내용을 기본적인 모델로 삼아 기본자세나 동작을 개관적인 입장에서 심사하고 각 단체의 특성을 살린 전문실기를 평가하는 이중적인 기준이 그 예이다.

죽도경기의 국제적 취향으로의 변모를 갖추어야 한다. 현행 죽도 경기의 복장,용구,시합규정은 일본식의 방법으로 일본을 상징하는 무도경기의 색채가 강하다. 죽도경기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국제적인 취향의 복장과 용구, 그리고 시합규정의 합리화에 맞게 개선해야 할 것이다.

현재 대한검도회에서 죽도경기 위주의 체제에서 탈일본화의 체제국축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 바로 수련체계의 구체화다. 이미 일본에서 죽도경기이외의 진검수련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 있다는 것은 기존 무도경기인 유도, 태권도, 검도(죽도경기)가 서양스포츠의 경기룰을 모방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반면에, 한편에서는 무도특성을 살린 평가기준에 의한 경기방법이 채택되기도 한다. 그것은 무도의 본질 계승해 나아가려는 의도가 크다.

예를들면. 태권도의 품새경연대회의 경우 겨루기 위주의 경기에서 표연(방법에 의한 심사기준을 채택한 예라든가, 우슈의 경우 표현경기와 산타(겨루기)가 있듯이 검도의 경우도 검도의 본질을 살리고 창작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진검의 표현연기나 실전베기 경기가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죽도경기위주나 일본의 죽도경기와 형위주를 탈피하여 앞으로는 죽도경기와 검도의 본질에 접근하는 베기까지의 구체적인 수련체계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또한 무도가 경기화되면서 경쟁을 떠날 수 없다는 이론이 있듯이 겨루기와 표연의 연무대회는 앞으로 검도경기가 새롭게 반영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 여겨진다. 이것은 기존에 죽도경기 위주의 탈피와 함께 진검수련의 체제를 만들어내 우리나라 검도와 일본검도의 특성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계기가 될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의 고유검술의 인정과 함께 한국고유의 검술을 세계화시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국내의 많은 검도단체들의 난무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검도라는 독립적 운동의 가치를 육성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해결은 지나친 자기우월주의에 빠진 단체들의 과욕을 저버리고, 상업성을 배제한 관심이 중요하다.

해결의 실마리는 국가에서 정책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 정책적으로 지원육성하는 무도정책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기위주의 무도스포츠 육성에만 치우치고 있으며, 전통무예라든가 국내에 산재해 있는 각종 무도단체들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산만한 무술단체들이나 검도단체들 스스로가 체계화시키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상황에서 더욱 문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가장 큰 원인은 상업성에 있다. 상업성의 배제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의 경우나 중국의 경우 중앙위원회를 두어 각 유파의 무술을 정리하고 보존하는데 노력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는 교육적 차원에서 대학과 각 학교에서 정식과목으로 채택되고 있거나 각유파의 활동을 인정하여 '무도제(武道祭)'를 유치하는 것을 볼 때 국내의 무도는 열악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각 단체들의 혼란은 정책의 배경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100여개의 검도단체들을 통합관리하는데는 문화관광부의 개입도 필요하다. 경기위주의 스포츠로서의 검도에 대한 장려도 중요하겠지만, 이것은 스포츠종목으로서 엘리트선수육성체제에 불과하며,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검도의 장려가 필요하다. 특히 각종 단체들을 관리하는 중앙위원회의 조직이 필요하며, 각 단체들은 자기우월주의에서 탈피한 유사검도의 통합과 지식체계의 설계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교육기관중 하나인 대학의 전공과정에서 검도의 대중화를 촉진하고, 여러 검도인들의 문화사업에 도움을 줄 수는 환경을 개방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전통무술진흥법’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대한체육회가맹단체 이외의 무술종목을 보존 육성한다는 취지다. 1996년부터 생활체육지도자 종목에서 제외돼 자율경쟁체제로 두었던 각종 제도권이외의 무술들이 10년이라는 시간뒤에 다시 평가를 받게 된다.

구체적인 검도에 대한 수련체계구성이 중요하다. 1980년대 전일본검도연맹의 수련체계는 검도의 기본원리를 기∙검∙체일치에 두고 있다. 이 수련을 기초과정으로 본 것이 죽도검도인 'Kendo(劍道)'라 한다. 이후 형의 검도라 일컫는 ‘Iaido(居合道)’가 있고, 형의 검도수련의 완성도에 따라 실전베기술인 ’Battodo(拔刀道)‘가 있다. 이러한 수련체계는 “검의 이치를 배운다”는 일본검도의 특성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의 수많은 검도단체들은 이러한 수련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각 단체별로 분리돼 수련되고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기검체일치의 수련-형의 검도-실전의 검도라는 수련구조를 충분히 결합하여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05. 무토미디어 기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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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
Report/Martial Arts2010.01.11 03:11
일제통치하에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스포츠종목이 유입되었다. 선교사들에 의해 서구스포츠가 유입되었으며, 일본인들에 의해 학교체육 및 일본무도의 유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금 체육사나 무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자료를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신문기사나 일부연구자들의 연구물을 참고하는 수준에서 정리되고 있다.

  필자는 얼마전 일제당시 조선총독부나 민간인들에 의해 시설을 갖추고 있던 무도도장 현황에 대해 1934년에 일본문부성에서 보고된 자료를 발견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검도도장뿐만이 아니라, 유도, 궁도, 스모 등 일본 무도와 더불어 육상, 정구, 야구, 축구 등을 할 수 있는 시설까지 모두 조사되어 있었다. 그 내용중 검도, 유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6개지역 - 경기도(경성포함),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강원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을 구분해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경기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경성무덕관

경성부 황금정

 1912. 7.

  120

 검도

陳丿內廘

 강도관

경성부 장곡천정

 1917.11

  120

 유도

篠田治作

 인천무덕관

인천부 산수정

 1922.10

   54

 검도, 유도

仁川府尹

 송도광무관

개성부 만월정

 1925. 8

   -

 유도,역기,체조

김홍식

 개성상무관

개성부 대화정

 1927.11

   73

 검도,유도

개성경찰서장

 평택무도관

진위군

 1931. 7.

   12

 유도

박상만

 이천체육회운동장

안성군

 1931.11.

   32

 유도

분상동

[충청남북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연무장

 연기군

 1921. 6

  52

검도, 유도

조치원경찰서장

 예산상무회연무장

예산군

 1929.10

  36

검도,유도,총검도

예산경찰서장

 보은공회당

보은군

 1927. 4

  144

검도, 유도

內田定吾

 음성연무장

음성군

 1927. 5

  30

검도, 유도

음성경찰서

 청주강무장

청주군

 1929.10

24

유도

濱田淸太郞

 제천연무장

제천군

 1931. 6.

30

검도, 유도

제천경찰서

 충주연무장

충주읍

 1931.10

40

검도, 유도

충주경찰서

[전라남북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연무장

제주도경찰서

 1923. 2.

  29

 검도, 유도

제주도경찰서

 연무장

광양군

 1924.12

  22

 검도, 유도

광양경찰서

 목포상무관

목포부 대화정

 1926.10

  60

 검도, 유도

목포상무회장

 여수홍무관

여수읍

 1927. 6.

  30

 검도, 유도

古川安一郞

 완도연무장

완도읍

 1927. 6.

  99

 검도, 유도

전남상무회장

 임실군연무장

임실군

 1929. 5.

  12

 검도, 유도

임실경찰서

 금산연무장

진안군

 1929. 6.

  58

 검도, 유도

금산경찰서


[경상남북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부산경찰서연무장

부산부 영정 

 1924. 5.

  37

 검도, 유도

부산경찰서

 경남경찰관무도장

부산부 부민정

 1925. 5.

  65

 검도, 유도

경상남도

 부산상무관

부산부 부평정

 1927. 9.

  17

 유도

山下亦一

 무덕관

부산부 초장정

 1931.10.

  104

 검도, 유도

渡辺豊日子

 마산청년회검도장

마산부 본정

 1932.10.

  50

 검도

마산청년단

 철도국국우회무도장

부산부 초양정

  119

 검도, 유도

철도국국우회 부산지부

 경북무덕전

대구부 동운정

 1923.10.

  575

 검도,유도,궁도

재단법인 경북무덕회

[황해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유,검도장

兼二浦邑

 1918

  36

 검도, 유도

荻野友助

 김천구락부

김천군

 1924. 6

  49

 검도, 유도

김천경찰서

 무덕관

사리원읍

 1928. 8.

  20

 검도

사리원경찰서

 무덕관

사리원읍

 1928. 8.

  17

 유도

사리원경찰서

[평안남북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평양장무회

평양부 상유리

 1924. 4.

  40

 유도

평양장무회

 양무관

평양부 천정

 1929

  15

 유도

神野辰雄

 검도 및 유도장

추을미읍

 1930.12

  39

 검도, 유도

평양광업부

[함경남북도]

설비명칭

소재지

개설년도

면적(평)

용도

관리자

 신흥경찰서 연무장

신흥군

 1923.11

  23

 검도, 유도

신흥경찰서

 함남헌병대도장

헌병대내

 1924. 5.

  18

 검도, 유도

함흥헌병대장

 함남무덕반

운흥리

 1927.11

 818

 검도, 유도

함남경우회

 조선실소회사무도장

함주군

 1929

 230

 검도,유도,궁도

실소회사오락부


  검도는 전국 각지에서 실시되었으며, 일본통치기 스포츠단체의 성격을 띤 단체로는 경성무덕회가 1912년 7월 경성부 황금정(서울의 황금동)에 설치되면서 검도를 보급하였고, 경기회 및 강연회 개최가 이루어졌다. 전남 목포상무회(1926)가 검도를 비롯한 유도를 장려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흥남구락부(1927)의 경우는 검도를 비롯해 각종 스포츠종목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또한 인천체육협회(1925), 경기도체육협회(1926)을 비롯 각 지역의 체육협회에서 검도경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각지역의 협회에서 특정종목을 육성하는 특성도 나타나는데, 경성의 강도관조선지부(1917)와 함안체육회(1931)의 경우는 유도를 주요사업종목으로 협회를 운영하였다.

  이외에도 일본문부성에 보관중에 자료에 특색있는 것은 일본의 궁도가 우리나라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한 점이다. 전국각지에 궁도를 장려할 목적으로 구락부가 형성되었는데, 경기도의 경우는 인천무덕정, 충청도의 경우는 군수가 대표자로 설립한 각종 체육협회에서 궁도를 장려했으며, 경상도의 경우는 대구체육협회가 궁도장려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전라도의 경우는 영암궁도회(1925), 진도궁도회(1929), 제주궁도회(1931) 등에서 궁도장려의 독립적 조직을 갖고 있었고, 강원도의 경우는 철원체육회가 중점적으로 장려했으며, 황해도와 평안도의 경우는 각지역의 군수가 대표성을 체육협회를 운영하여 그 운영내용에 궁도를 다루고 있다. 이외에도 함경도의 경우는 원산체육협회(1925), 함흥체육회(1926), 흥남구락부(1927) 등에서 궁도를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되었다는 것이 흥미롭게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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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s2010.01.01 12:24

무술의 개념에 대한 이해는 무술이라는 문화행위를 통하여 인간이 추구해 왔던 목적과 가치, 또는 무술이라는 문화분야가 인간사회에서 담당해왔던 문화적 기능에 대한 인식에 바탕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무술 발전에 관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무술은 일차적으로 격투를 위한 기술이라는 목적에서 추구되었다(笠尾恭二, 1994). 격투술로서의 무술의 발전은 한 면으로서는 사회의 분화, 발전을 따라 개인의 신체적 강함의 추구라는 인간 본능에 바탕한 신체 경쟁 문화, 즉 스포츠 문화로의 발전으로 이끌어 졌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 위해를 위한 기술의 발전, 즉 실용적 관점에서 대인 격투 기술의 발전이라는 방향으로 분화되었다. 대인 격투 기술로서의 무술은 집단의 조직적 격투인 전투 기술의 핵심적 부분이 되었고 따라서 군대무술 또는 군진(軍陳)무술로 발전되었다(林伯源, 1994)
무술은 또한 일찍부터 인간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해왔다. 마왕퇴등 고분 자료에서 보여지는 고대사회의 건강체조, 즉 도인양생 신체문화는 후대에서 격투기술로서 발전된 무술과 통합, 또는 융합(중국의 태극권등 소위 내가권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것처럼) 되면서 건강은 무술문화의 중요한 한 가치를 형성해 왔다(李飛 外, 1993). 한편으로 무술은 처음부터 신체를 통한 인간의 미적, 정서적 표현의 수단인 무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 전통 무용의 원초적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는 무용의 하나인 무무(武舞)는 바로 고대사회의 집단적 사냥, 전쟁 등의 문화활동에 뿌리를 둔 무용 양식이다. 이러한 신체 예술적 표현 양식으로서 무술은 검무등 격투기술을 일정한 양식과 정서에 따라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차차 품세나 형 등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무술의 시범이나 시연은 고대사회에서부터 무희, 무극, 또는 무술을 이용한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유행(무술 시범을 통한 약장수의 활동은 중국 명대에 쓰여진 송대를 무대로 하는 수호지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하였으며(康戈武, 1990) 오늘날 무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무술의 또 다른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종교적 영역이다. 신체적 고행과 일정한 기술적 수련을 통하여 정신의 정화 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인도 요가문화의 영향은 동양 무술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요가문화는 그 자체로서, 그리고 선불교 문화의 영향을 통하여 무술의 발전에 다양하게 흡수되었으며, 오늘날 무술에서 중시되는 입선(入禪), 행선(行禪), 동선(動禪)으로서의 무술 수련의 가치를 형성하였으며, 구체적으로 특정한 자세, 동작, 수련 과정으로서 나타나고 있다(笠尾恭二, 1994). 또한 도교의 연단(練丹)사상과 그 수행 방법 역시 무술의 발전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불로 장생을 추구하는 도교 수련 문화가 발전시킨 연단 사상은 무술에서 건강적 가치의 중시와 함께 다양한 도교적 신체문화 양식을 포용시키게 되었다(康戈武, 1990). 불교와 도교의 영향하에서 무술은 신체를 통한 정신의 고양과 초월적 인간의 경지를 추구하는 종교적 가치를 가지게 되었으며, 오늘날 무술에서 정(靜), 내(內), 유(柔)의 중시, 호흠이나 기(氣)에 대한 관심, 무심(無心), 부동심(不動心), 권선일치(拳禪一致), 무도수련을 통한 깨달음이나 자아발견의 추구 등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이러한 무술의 종교적, 사상적, 정신적 가치와 전통들이 신체 수련이라는 무술의 본질적 속성과 결합하여 교육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림-1. 무술의 가치와 기능의 구조

이와같은 무술에 포괄된 전통적 가치와 기능들은 현대 사회에서는 전투기술과 같이 과학문명으로 대치되어 쇠퇴해진 영역도 있는 반면, 과학문명에 의해서 오히려 강화된 신체와 정신, 그리고 자아나 정신적 주체성 등의 가치들로 인하여 새롭게 강조되는 영역도 있다. 그리고 공격성과 같은 개인의 신체적 본능의 표현이 극도로 제한되는 현대사회에서 가상 게임, 영화, 연극, 패션, 오락기구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대리만족이나 상상적 소비문화의 형태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동양 무도의 서구 사회로의 전파는 그 진행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사회속에서 자기화, 즉 문화적 변용의 단계로까지 도달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전통무술에 대한 용어의 정립이라는 명분론적, 고답적 담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급변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퇴행적 자기 논리에 빠져있는 것이다. 무술이 다양한 문화영역과 소비 경제 영역으로 파고 들고있는 것은 무술인들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상상력에 민감한 비 무술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 무술인들이 반성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할 점일 것이다.
무술, 무예, 무도의 개념에 대한 역사적, 사상적, 문화적 연구는 앞으로 더욱 진행되어야 할 주제이지만, 이들 개념간의 우위나 타당성 등에 관한 자기 주장류의 연구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참고할 유사한 영역의 사례로 체육의 개념에 관한 체육학계의 지난 30여 년간의 논쟁의 귀결이다. 학문으로서 체육학의 정체성과 계속해서 확장되는 체육의 외연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여 체육학계는 체육을 대체할 수 있는 Kinesiology, Human Movement, Bio-Dyniamics, Sports Sciencee 등 다양한 개념들을 창안해 내었고, 각 개념의 타당성에 대하여 소모적인 논쟁을 오랫동안 계속하였지만, 그 결론은 논쟁의 승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논쟁과 상관없이 현대 소비사회가 수용하는 스포츠와 전통의 Pysical Education, 체육이 살아남는 귀결을 가져왔다. 우리는 용어나 개념의 타당성에 대한 낭비적 논쟁보다는 무술 (무예, 무도)의 정체성에 대한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역사 연구, 비교 문화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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