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Martial Arts2011.11.04 14:00

1931년 7월 6일 동아일보에 연희전문학교 정인보교수가 쓴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글이다. 아마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신문에서의 공개자료는 이 자료가 처음인듯 하다. 내용은 상당히 어려운 문체를 사용하고 있으나, 결론은 책구성이나 내용이 짜임새있고 좋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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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
Report/Research2010.05.31 12:55







한(韓),중(中),일(日) 장병무예(長兵武藝) 장창(長槍) 연구(硏究)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수비록(手臂錄)≫,≪민속화보(民俗畵譜)≫를 중심으로-

(A study on Long spear of the Korea, China and, Japan -Focused on ≪Muyedobotongji(武藝圖譜通志)≫,≪Shoubilu(手臂錄)≫,≪Minzokugafu(民俗畵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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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
Report/Martial Arts2010.03.2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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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70년대 한국유도원에서 모한훈련중 낙법을 하는 장면이다. 추운겨울 그들은 유도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의 의지력을 배워간다. 그러나 이런 모한훈련은 요즘 보기 힘들다.


두서없는 글이다.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써 본다.

무술이 요즘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술중에도 중국의 태극권에 대해 지식층들 사이에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부 스포츠교육을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도 그 방법론을 무술의 수련방법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어제 이런 몇몇 선생님들이 자연스러운 미팅속에서 이야기들이 오갔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스포츠를 만들 수 있을까다. 스포츠행복론에 항상 고민하는 한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이런 이야기속에서 무술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것의 정답은 몸과 마음의 의지력을 다스리는 무술의 특성을 잘 접목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마치 신비스러움으로 포장되어 있기도 하고, 뭔가 극치를 꿈꾸는 것 같이 과장된 것이 무술이기도 하다. 이런 무술은 동북아를 중심으로 유럽, 아프리카까지 보급되어 있다. 동양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동양문화속에서 발전해 온 지금 무술의 모습은 어디서 출발하는가.  여기서는 화약발명이후 무술이 급변하고 변용되었으며, 정립되어간 시기인 19세기를 기점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국이 무술을 정립해 가는 시기는 19세기부터다. 달마를 운운하지만 중국의 근대무술은 이 시기가 적절하다. 수많은 무술이 존재했고, 그 무술의 형태가 변용을 가져오고 정리되는 시기다. 이 때 민간무술의 발달은 무술을 양생의 수단으로 변화시켰고 서구문화의 유입에 대한 대항적 개념으로 무술이 그 역할을 했다.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무술인 '태극권'은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처럼 그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무술로 꼽는다. 그들은 "최강의 무술은 없고, 최강의 무술인이 되기위한 사람은 많다"고 주장한다. 이 말처럼 그들은 무술 하나하나가 오랜 수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립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무도역시 19세기부터 시작된다. 서구적인 스포츠의 영향력도 있고, 서양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노력이 사무라이세계를 다시 부활시킨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유도의 창시자 가노지고로다. 그는 외국어학교와 동경제국대학 출신으로 공리주의와 실리주의적 사고로 일본의 고대유술을 현대유도(강도관 유도)로 새로이 정립한 사람이다. 가노 지고로의 이러한 노력은 유럽에 일본무도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18세기는 일본과 중국의 무술을 탐구해 온 시대다. 정조때 완성된 <무예도보통지>는 일본과 중국의 기술들을 재정립해 놓은 것이다. 일부의 검법들은 우리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우리의 19세기 무술은 국궁과 씨름, 택견뿐이다. 그 명맥이 활터와 서민들에 의해 이어져 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중국처럼 민간에 의해 민간무술이 전승된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스포츠처럼 변용된 것도 아니다. 유희로서 놀이로서 무술이 여기저기 존재해 온 시대였다. 어찌보면 무술에 대해서도 틀에 박히거나 통제받는 몸짓을 거부하는 우리들의 사고때문에 중국이나 일본같이 정립되거나 경기와 같은 변용에 접근하지 않았을 수 도 있다. 쉽게 말하면 그렇게 안해도 씨름 장사들이 있었고 싸움꾼들이 많았다.

이러한 한, 중, 일 무술은 20세기를 맞이해 서구문화의 유입과정에서 어떻게 변용했느냐에 의해 지금의 스포츠로, 무도로서 그 특성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 특성들 중에 한, 중, 일의 공통점은 서양의 스포츠와 구분지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승부가 아닌 몸과 마음의 의지력을 다스리는 것이 무술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다. 이런 과정때문에 지속적으로 수련하고 연구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중국에서는 Kung Pu(功夫)로 표현하기도 한다.
 
무술인들이나 이를 연구하는 관계자들중에는 한, 중, 일을 구분짓거나 억지로 특성차이를 강조하려 한다. 그러나 한, 중, 일의 무술은 동북아의 문화교류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변용되고 지역의 특성에 의해 발전해 왔다. 이런 점에서 무술을 구지 한, 중, 일로 구분지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특히 조선시대에도 궁안에 동남아출신들의 무사들이 존재했다는 사료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더라도 우린 고립되거나 통제된 문화속에서 무술이 존재해 온 것일 수 있다.  

무술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특성이 있다. 최고의 무술은 없지만 최고의 무술인이 되기 위한 사람들의 지속적인 노력하기 때문이다. <무예도보통지>를 발간한 정조때 무사들이 지금의 도장관장님들 보다 무술을 잘했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의 의지력을 다스리는 것 역시 과거보다 현재 더욱 많은 방법론이 존재하고 있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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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
Reports2010.01.20 14:56
무술은 원래 생사(生死)의 장(場)에서 마음의 자세, 태도,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지만, 기존 살상(殺傷)의 기술을 차츰 순화하여 인간수양의 도(道)로서 발달하여 왔고 최근에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것보다 자아의 마음의 적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차원을 달리했다. 또한 신체적으로는 건강을, 표현적으로는 미적 표현을 추구하게 되었다. 미적인 표현의 예로 스포츠화된 현대무술에서 각각의 무술들은 그 본질을 유지하고 미적인 평가를 위해 태권도의 경우는 품새경연대회, 검도의 경우는 본국검법연무대회, 유도의 경우는 본(本) 경연대회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그외에도 승급(昇級) 및 승단심사(昇段審査)의 한 부분으로 형(形)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본의 경우 다양한 무술유파들이 제정형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노력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역시 조선시대에 정조(正祖)의《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내용과 같이 다양한 유형의 무술형(武術型)을 정리해 왔다. 이런 무술의 형에 대해 일본의 경우에는 분파된 다양한 형을 종목별로 특징적인 형으로 정리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다양한 해석의 차이로 여러 무술단체들이 난립 혹은 분파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각 단체들의 독단적인 상업성에 치중한 나머지 여러 유형의 무술들이 국내에 난무한 실정이다. 또한 경기위주의 무도스포츠들이 경기력에 치우친 나머지 형의 개발 혹은 형의 수련을 등한시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무술의 형은 실전적인 기술이 형(形)으로 남겨져 오늘날 수련의 일부분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고, 국내의 경우 스포츠화된 무도의 경우 형에 대한 인식이 형식에 불과하여 그 본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형(形)을 알기전에 알아두어야할 무술에서의 자세란?

무술은 수련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자세(姿勢)를 강조한다. 이 자세라는 것은 대련동작의 기본자세나 대련행위의 준비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이는 적을 전제로 상대를 가해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자신과 대립하는 것이며, 언제 어디서 상대의 공격에 대비하여 이길 수 있는 마음과 기술을 습득하는데 매우 중요한 무술수행의 한부분이다.

실제 임기응변(臨機應變)에 있어 적을 대할때 자세(姿勢)는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과거 일본의 무사들은 일상적인 진퇴시에도 남이 덤벼들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원리를 "자세가 있는 것도 같고 자세가 없는 것도 같다"라고 하여 무술수행의 극치인 "무(無)의 자세"라고 했다. 이것은 자세를 잡으려고 해서 자세가 되는 것이 아닌 서있거나 앉아 있어도 자연 모습 그대로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유지하는 가운데도 일정한 기본적 자세를 배우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많은 술리나 변화를 배워야 했다. 이것은 오래된 자세에 포함된 몸을 지키는 것을 도(道)라고도 했으며, 이러한 무술수련에서의 태도와 품위를 새로운 교육의 도(道)로 살린 것이 자연체(自然體)다.

또한 승부에 있어서 외적으로는 생리적, 내적으로는 숨어있는 육체적, 심리적 저항력에 의한 피동(被動)의 입장(立場)을 이겨내서 자신의 주동(主動)의 입장을 확립하는 것이 승리하는 것으로 보았다.

과거 검술에서 무사(武士)들은 적에게 "당했다"는 것도 역시 적으로 하여금 "베게 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기선(機先)을 잡지 못한 것을 치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동적 작용을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이 무사의 생명이 되었고 무도에서의 선(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선제공격을 위해 적에 대한 기회를 알아야 했다. "안다(知)"는 것은 눈(眼), 귀(耳), 코(鼻), 입(口), 손(手)의 작용을 초월해서 직감으로 무형(無形)을 보고, 무청(無聲)을 듣는다 라는 데에 있다. 소위 "무심(無心)으로 자연의 묘(妙)에 들어가 무위(無爲)로 해서 변화의 신(神)에 도달한다"라는 경지에 가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오감의 작용에 의지해야만 했다.


殺의 대안, 형(形)의 형성

무술의 기술은 그 종목의 원류가 실전의 장에서 체험을 바탕으로 주관적, 개성적 공부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이것은 비기(秘技)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많은 류파로 분리되어 대립하였다. 같은 종류의 유파이면서 말기에 가면 분파가 분파를 낳아서 차츰 많은 류파로 세분화 되었다.

무술의 기술구성은 원래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살(殺)을 목적으로 했다. 폭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살(殺)에 의한 것도 피할 수 없기때문이다. 일부 사려깊은 무술의 달인은 기술의 완성도가 높을때 정신면에서는 자각에 근본을 둔 자기규제에 의해 살(殺)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살(殺)에 대한 부정이 위험한 기술을 안전성을 지키면서 연습하는 방법으로 발달되었다. 이것이 바로 무술의 형(形)이다.

과거의 무술형태는 다양하고 기술의 종류도 잡다해 이것에 대처하는 공방의 형(形)역시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과거 무사들은 주관적, 체험적 신념이 강한 반면에 과학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점이 있기 때문에 무술의 기술은 유파(流派)에 따라 다르게 전해졌다. 기술의 객관적 표현을 하는 장(場)은 실전장이고 묘기였기에 이것을 보편적·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곤란하였고, 이러한 사정을 갖고 있던 무술들은 많은 류파로 분리시킨 것이다.

다양한 실전의 기술을 위험없이 습득하는 방법은 정해진 격투형태를 상정해서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여러가지 동작을 형(形)으로 연습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어 및 반격의 기술을 올바른 순서에 따라 행하지만 그 순서의 마지막 동작만은 "힘"을 빼거나 중지함으로서 위험을 피하였다. 이것이 형(形)의 연습법이다. 이러한 형은 수많은 공격과 방어의 기술중에 선택된 공격방어의 순서와 방법이 약속하에 꾸며졌고, 기술의 원리를 알고 기술의 실체를 체득할 수 있게끔 유도했다.

과거에는 무술을 배우는 목적이 실용성을 떠나서 생각되지 않았다. 따라서 형에서 기억한 기술을 자유롭게 의지대로 한정없이 힘을 발휘하여 응용변화의 작용을 기를 수밖에 없었고, 실전이 우선이였기 때문에 평소 형(形)만의 연습으로 실력의 객관화는 어렵고 실전의 장에서만 객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실전과 형의 논쟁

오늘날 무도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검도, 유도, 태권도, 합기도 등을 총칭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옛부터 무술을 정신수양이라고 한 이유는 실전의 장(場)에 임하여 이기기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 기술을 통해 평상의 마음자세나 생활태도의 중요한 일까지 수행을 권장했기 때문이다.

무술의 정신수행이라는 것은 기술을 떠난 마음만의 수행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승부와 상관없이 동요하지 않는 마음이고, 승부가 생사와 이어져 있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를 눈앞에 두고도 동요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말한다.

기술은 아무리 뛰어나도 격투종목의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기술만을 의존할 수 없었다. 여기서 절대로 패할 수 없다(절대불패(絶對不敗))는 마음을 얻기 위해서 종교적 신념을 가져야 했다. 무술수행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의 문제에 있어서 옛부터 무사들은 주관적 개념을 말했기 때문에 마음에 대한 표현이 가지각색이었다.

일본무도에서는 부동심(不動心)이나 무주심(無住心), 공(空)의 마음 등과 같은 불교적(佛敎的) 표현이 많고, 특히 유술의 문서에는 기(氣), 화(和), 유(柔), 음양(陰陽) 등의 유교적(儒敎的) 표현이 많았다. 이것은 무도가 생명을 담보로 하는 투쟁의 기술에서 출발하여 승부의 세계를 초월하려는 마음의 탐구로 이어졌기 때문에 불교의 생사관(死生觀)이나 유교(儒敎)의 대자연(大自然) 융합(融合)의 도(道)가 접목된 것이다.

이처럼 武術의 기술이 위험하고 무한정한 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습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 오래전부터 커다란 과제였다. 이러한 풀이로 형(形)이 존재한다. 이 형을 반복연습해서 기억을 살려 나가자는 것이다. 형(形)은 과거의 무사들이 실전의 장에서 생명을 걸고 익힌 기법(技法)이나 심법(心法)을 집적한 것으로 기술을 올바르게 익히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형(形)의 연습은 쌍방 혹은 한쪽의 자유의지 활동을 제한하여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연습이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수행의 어려움은 쌍방의 자유의지 활동에서 기술(技術)을 겨루고 마음을 단련시켜서 공격과 방어의 변화의 원리를 심도 깊게 갈파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형(形)의 연습은 필연적이며 그 기술의 살아 있는 동작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응용(應用)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전국시대에는 그 응용의 공간이 실전의 공간이었으나, 에도(江戶)시대를 맞이해서 그 공간은 사라지고 형(形)만의 연습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이에야스(家康)는 야규우 무내노리(柳生宗矩)의 검선일치(劍禪一致)의 검법과 주자학의 양두마차로 정치를 하여 막부말기까지 이어졌다. 선승인 다쿠안(擇庵)의 영향을 받은 야규우(柳生)신카개류(新陰流)는 활인검으로 발전하였다. 그 무렵부터 일본의 검법은 실전형에서 도장형으로 바뀌어 형의 검법시대로 들어간다. 검만이 아니라 선(禪)과 만난 모든 기예(技藝)들 역시 형(形)의 길로 나아갔다. 이것은 자칫하면 방법에만 의존하고 객관적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독선이 되기 쉽다는 이유로 당시 화법검법(華法劍法)이라고 하여 업신여겼다. 이것을 시정하기 위해서 유생류(柳生流)의 대(袋じない(本識三問答))나 직심영류(直心影流)의 나가누마시로자에몬(長沼四郞左緯門(正德年間)), 일도류(一刀流)의 나가니시주조(中西忠藏(寶曆年間)) 등에 의해서 죽도검술(竹刀劍術)의 연습법이 발명되어 기술이 많이 향상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경기검도(競技劍道)의 기원이 되었다.

유술(柔術)의 경우도 기술의 내용이 복잡하기 때문에 쌍방이 자유의지 활동으로 연습하는 방법, 즉 자유연습법(自由練習法)을 발명했다. 메이지(明治)에 들어와 유도에서 처음으로 메치기와 굳히기의 자유엽습법이 행하여졌다. 그러나 연습법이 시작되었어도 한참 동안 실전(實戰)의 장(場)에서의 수행이라는 사고에 머물러 있었으며 경기화의 방법이 불완전하였기 때문에 무도연습은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포화된 무도에서는 경기화되고 있는 이상 무도의 형은 수련의 한 의미를 줄 뿐 스포츠상의 겨루기에서 이기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스포츠화된 무도가 정신과 육체를 함께 연마한다는 측면은 다른 스포츠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들 무도는 스포츠화되면서도 "다른 스포츠와 다르다"라는 합리화를 하려 든다. 과연 다른 스포츠와 뭐가 다른지라는 정확한 설명없이 "도(道)니까"하는 식의 설명에 그치고 있다.

경기화라는 것은 무한정의 기술을 한정해서 일정한 격투형체, 즉 경기규칙(rule)에 의해 지배돼 승패를 결정한다. 예를들어 검도경기의 경우에 머리, 손목, 허리, 찌름부위(목이나 가슴)로 한정되었다. 이러한 제한된 수련틀은 일본의 Kendo의 수련체계중 하나인 거합도와 도법의 변화나 진검의 베기로 대응하는 기술들은 상실되었다.

하지만 "무도가 다른 스포츠와 달리 존재가치가 있다"라고 할 때 무도는 과거에 생사를 분명하게 하는 목적이 현재의 스포츠화된 무도의 모습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실전적이고 살인적인 기술이 형(形)으로 남아 있는데서 알 수 있다. 이러한 형은 실제 상대를 죽이기 위한 실전성이 밑바탕이 되어 완성된 것이다. 여기서 형(形)은 기술의 목적, 방법, 순서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신체의 동작이고,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것으로 수많은 수행자들의 체험과 연구의 집적(集積)을 통해 정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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