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Martial Arts2012.02.29 23:50

구판홍 사범

킥복싱의 원류는 태권도인이다. '킹투기'라고 불리기도 한 킥복싱은 1964년 9월 대한태권도협회 오도관 점남 본관장인 구판홍(사진)에 의해 태권도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가장 강한 무술을 만들고자 태권도, 복싱, 유도, 레슬링 등의 특성을 종합회 종합무술체계로 킹투기라는 이름을 만들어 창안했다고 한다. 1968년 일본의 노구치오사무 기꾸 복싱회장이 킹투기의 발상지를 광주, 창시자를 구판홍으로 하여 회담을 가졌고, 이 킹투기는 킥복싱으로 명칭을 통일해 한일간의 국제교류를 합의했다고 한다. 1968년 12월 12일에 문교부로부터 사회단체 등록(제29호)을 받았고, 동양방송국을 통해 태국코치를 초청하는 등 활동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1970년 4월 사회단체 제31호를 받았음에도 도장간 혼란이 있어 혼란스러웠다.
당시 사범명단은 서울)김정대, 강영복, 조향동), 강화(배성실), 청주(최병학), 대전(최창열), 대구(예영달), 부산(임천규, 김대훈, 구본근), 광주(김광춘, 이현방), 전주(김귀진, 김현식), 목포(구판봉) 사범이 최초로 한국킥복싱을 보급한 인물이다.

또, 프로태권도 창시자역시 구판홍이다. 그는 태권도인이면서 킹투기 혹은 격투기를 처음 만든이로 유명하다. 그가 1979년 갑자기 프로태권도라는 이름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기사에 의하면 세계프로태권도연맹은 일본에 있었다고 하고 있고, 일본프로가라테와 경기를 한 모양인데... 태권도의 프로화시작은 역사적으로 이때부터 봐야할지 의문이다. 한 개인의 의지고 프로모션 성격을 지닌 것일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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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11.3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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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龍이 불러일으킨 미국 영화계의 태권도붐은 좀처럼 가실 줄을 모르고 있다. 헐리웃의 액션스타들은 다투어 태권도 도장출입에 바쁜 것이다. 미국영화에 태권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약10년전. 美 20세기 폭스社가 만든 TV시리즈 「그린 호넷」에서 태권도가 나왔는데 이때 태권도 지도사범으로 초빙된 것이 바로 故 李小龍이었다. 처음에는 지도사범이었던 李小龍이 게스트 스타로 한두 장면 나오다가 드디어는 태권도 스타의 始祖로 군림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할리웃 스타들은 다투어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다.
 

경향신문 1975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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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s2010.11.0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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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 중 김치, 그 중에서도 발갛게 익어 먹음직한 배추김치가 전통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 수천 년 된 우리 전통음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고 적어도 삼국시대 이후로는 먹어왔을 것이라고 보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추’가 임진왜란 당시 전해진 것을 아는 분들 중에는 그 이전에는 ‘백김치’의 형태로 우리 조상들이 즐겨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김치의 주 재료인 배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점이 18세기이고, 실제로 김치재료로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산동지역의 품종이 전해진 것이 20세기에 들어서라고 한다면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할 것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붉은 배추김치가 한국전통음식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부터 그런 사실을 굳이 밝힐 필요가 있느냐 하는 입장까지 있을 수 있습니다.

전통음식뿐 아니라 전통무술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태권도를 포함해 수많은 전통무술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무술’이란 의미에서의 전통무술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볼 만한 때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전통무술이란 것도 그런 면에서 우리는 ‘막연히’ 대대로 전승되어 왔을 것이라고 믿어온 측면이 있고, 많은 무술인들은 이를 숨겨왔거나 심지어 이를 이용해 오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본인 스스로가 무지해서 일반인들과 다름없이 믿어온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합기도, 검도를 비롯해 고구려, 백제, 신라를 언급하며 전통무술을 표방하는 ‘신생 무술’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을 대표하는 무술인 태권도 역시 이와 같은 의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일부 신생 무술 중에는 배우는 청소년이나 그 부모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곳들조차 있다고 보입니다.

이렇게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배추김치의 역사는 약 100년, 태권도의 역사는 약 60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채소를 절여먹는 전통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에 배추김치가 나올 수 있었고, 한민족의 무예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태권도라는 무술이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 전통무술에 관해서도 공론화를 통해 좀 더 엄격히 판단하고 한국무술이 더 단단한 바탕에서 성장해 나갈 정당성을 찾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원문보기 http://taekwondo.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4/2010110401391.html

<황규경 hkk0918@hanmail.net>
-태권도조선 객원칼럼니스트. 법무법인 케이씨엘 변호사. 온라인 무술카페(합기도공부, 무예공부) 운영자로 활동해왔으며 웬만한 전문가 이상의 식견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재야 무술연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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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
Reports2010.08.08 22:43
사용자 삽입 이미지Canon | Canon EOS-1D | Manual | 2009:10:16 03:34:16

태권도계에서 흔히 구분하고 있는 무도태권도와 경기태권도는 일부에서는 구지 구분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사실 둘 다 태권도라는 점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글은 경기화 된 태권도가 어떻게 변해갈 지에 대해 고민한 것이다. 수련 중심의 태권도와는 달리 스포츠화 된 경기태권도의 변화는 그 변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Allen Guttmann은 근대 스포츠의 특징을 주장한 바 있다. 원시 스포츠에서 근대 스포츠로 전환되면서 근대 스포츠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특성들을 말한 바 있다. 그의 이론은 실제 경기태권도의 미래를 예측해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을 근거로 살펴보면 첫째, 승리, 경제적 보상, 명예 등을 추구하는 등 세속화 되었다. 이미 태권도는 경기화에 성공했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의 정식종목으로 그 결과에 따른 경제적 보상뿐만 아니라 명예를 얻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경기태권도의 스타를 부각시키는 다양한 전략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여성과 소수집단의 참가비율을 늘려 가는 것을 포함하여 평등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남녀 태권도경기가 진행 중이며 남녀를 넘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품새대회 개발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평등의 원칙이 내포되어 있다.

셋째, 높은 수준의 운동을 하려면 전문화가 필요하고 이 전문화가 더 높은 수준에 대한 요구와 결합하면 프로화가 추진된다. 간혹 태권도의 프로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미 프로의 성격을 지닌 실업팀이 활동하고 있으며 전문적인 태권도선수가 직업의 형태로 등장했다. 이러한 준프로 형태는 앞으로 프로태권도의 진행형으로 이어질 것이다. 

넷째, 명시된 규칙에 의해 규제된다. 즉 규칙이 경쟁을 지배하는 것이다. 공정성 논란 등의 경기규칙에 대한 개정을 비롯해 규칙이 경쟁을 지배하고 있다. 경기태권도의 내면에는 경기규칙이 지배하고 있어 태권도경기가 태권도의 본질을 상실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경기태권도의 변화는 지속적인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관료화다. 현재 경기태권도 활동을 후원, 통제, 관리하기 위한 대한태권도협회나 세계태권도연맹이 존재하고 있다. 대회가 확산될수록 조직 구조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이나 대륙연맹, 국가연맹 이 외에도 기업스폰과 지역도시 등이 주최하는 경기전문 에이전시나 조직위원회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섯 번째, ‘모든 운동 기술을 계량화하고 측정할 수 있도록 바꾸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록하는 것’이 계량화와 좀 더 뛰어나려는 욕망이 결합하여 나타난다. 경기장의 심판기능과 전광판, 승부판정 등은 이미 경기태권도의 기술들을 판정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특히 차등점수제 등의 영향력도 여기에 해당된다. 최근 전자호구 등을 통해 보다 객관화하려는 노력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경기태권도인들이라면 이러한 논리들은 한번쯤 생각해 본 것들일 것이다. 하지만 변화에는 항상 기존방식과 논쟁을 벌이게 된다. 경기태권도의 관계자들은 이런 논쟁을 떠나 태권도가 스포츠로서 변화하는 데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태권도경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경기화의 가장 큰 요인은 관중 누구나 승패의 판정을 알 수 있는 스포츠라야 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인식이 관중으로 하여금 공감대를 이끌어 내야 한다. 하지만 태권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도종목들은 상대성을 지니고 숙련 정도의 기술이 다르기 때문에 해법을 풀어가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경기태권도의 미래는 군더더기를 없애며 태권도경기만의 기술들로 압축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관중이 없는 태권도를 원하지 않는 태권도인들의 지혜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http://tk24.co.kr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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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
Reports2010.07.07 09:53

사용자 삽입 이미지Canon | Canon EOS 20D | Normal program | 2010:06:30 21:35:35
미국의 태권도사범들이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위를 갖고 있는 반면에 국내 태권도사범들은 그러하지 못할까라는 현실에 대한 고민은 지도자라면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몇일전 미국 태권도고단자들과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대화를 통해 그들이 인정받는 이유를 찾아 보았다.

미국사회에서 인정받는 지도자들은 “아내에게 헌신적이고, 자식들은 현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재로 성장해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 말을 듣고 문득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글귀가 생각났다.

修身(수신) 자신을 다스릴줄 알면
齊家(제가) 가정도 다스릴수 있으며
治國(치국) 이는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생기며
平天下(평천하) 결국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다.

이 말은 자신을 다스릴줄 알아야 하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삶의 기본을 말하고 있다. 미국사회에서 인정받는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가정에 충실했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개방적이라고 알고 있는 미국사회에서도 기득권들은 ‘齊家’를 가장 소중한 삶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언제가 부터인가 기본은 무시한채 治國과 平天下에 몰입된 삶을 살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도 없을 것이다. 자녀들에게 권하고 있는 대부분의 위인전도 ‘修身齊家’보다는 ‘治國’에 집중된 것들이 많다. 또, 많은 무술들의 이념이 ‘화랑정신’과 ‘호국’으로 강조되고 있어 우리 삶속의 진정성은 소홀한 면이 있다. 이러다 보니 ‘治國平天下’에 몰입되어 있고, 스스로 지켜야 할 ‘修身齊家’는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修身齊家’가 아니더라도 ‘治國平天下’를 했던 것처럼 비추어지는 우리 역사의 해석에도 문제는 있다. 그동안 ‘治國’을 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修身齊家’는 무관한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이렇다보니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희생이 없으면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가정보다는 일이 먼저”라는 사고가 사회구조에 틀여 박혀 있다.

요즘 핵가족화가 되면서 부모의 역할은 무너지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돈만 벌면 된다는 가장들의 생각은 스스로 돈벌이, 수입원으로 제한된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를 돈벌어오는 기계로 생각하고, 어머니를 추가수입원으로 생각하는 우리 자녀들은 부모라는 위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治國’을 한다는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이 修身齊家의 삶을 원하고, 이것을 위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修身齊家’보다는 말그대로 ‘治國’이라는 말로 그들만의 논쟁속에서 治國을 위한 밥그릇싸움에 얽매여 있다.

또한 태권도계도 그동안 미국의 최고 태권도사범을 ’治國‘이라는 논리로 접근해 평가해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 정부나 무예계역시 ’修身齊家‘보다는 ’治國‘의 삶을 산 지도자들을 홍보해 왔다. "가정을 희생하면서까지"라는 모호한 논리로 희생적 평가를 '애국'이라는 단어로 해 왔다.

지금 세상은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경제 도약기의 삶에서 가정에 실천할 수 있는 덕목이 절실히 요구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治國을 위한 프로그램보다는 修身齊家를 강조하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태권도원로들이 미국사회에서 3,40년을 살면서 경험한 ‘修身齊家’는 그들이 미국사회에서 인정받는 ‘master'로서의 진정한 삶이었다. 태권도계나 무예계에서도 이들의 삶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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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05.04 01:47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에 이집트 최초의 태권도 전용훈련장인 ‘고려 태권도장 '이 개관식을 가졌다고 한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개관한 이 도장에 이집트 역사상 첫 태권도장 오픈을 취재하기 위해 아프리카 지역 30여개 이상의 언론사가 취재 경쟁을 벌이는 등 관심이 집중됐다고 한다.
 
고려태권도장에 들어간 총 소요비용은 약 4만 3천 달러. 전액 한국국제협력단(이사장 박대원,KOICA)이 지원했다. 총 면적 443.25㎡로 훈련장(300㎡)을 비롯해 사무실, 남녀 탈의실, 창고, 주방, 남녀 샤워 및 화장실, 그리고 한국 문화원 등이 각각 마련됐다. 또한 태권도 전용매트와 보호장구 등 훈련장비와 시청각교육 장비, 책상, 의장 등의 각종 기자재도 구비되었다. 주정부 소유의 아스완스포츠클럽은 부지를 제공했다. 지난해 11월에 착공에 들어간 뒤, 6개월 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고려태권도장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이중 부대시설로 마련된 한국문화원은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한 아스완의 지리적 제한점을 채워줄 전망이다. 현재 주 3회 한국어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영화 등도 정기 상영되고 있다. 전통놀이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대거 포함됐다.

이 도장은 국제협력단으로 이집트에 파견된 한혜진사범에 의해 진두지휘가 이루어졌다. 한사범은 국제협력단의 임무를 모두 마치는 오는 8월 영구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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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 http://www.mookas.com/media_view.asp?news_no=1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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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03.0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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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전 무카스미디어 기자가 이집트 생방송 TV토크쇼에 출연해 '건강'이라는 주제에서 한국소개와 더불어 태권도수련이 건강에 좋은점을 소개했다.

한 기자는 현재 KOICA 소속으로 이집트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다. 영문 머리글자를 딴 코이카(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KOICA)는 정부 차원의 대외무상협력사업을 전담 실시하는 기관으로, '함께 잘 사는 인류사회 건설'이라는 모토 아래 1991년 4월 설립되었다. 한국과 개발도상국의 우호협력관계 및 상호교류를 증진하고 이들 국가들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함으로써 국제협력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 전문가, 의사, 태권도  등의 전문인력 및 해외봉사단 파견, 국제협력 요원을 포함한 연수생 초청사업, 국제비정부기구(NGO) 지원, 개발조사 및 물자공여 사업, 아프가니스탄 지원 사업, 기타 프로젝트 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한기자는 오는 8월 이집트의 업무를 마치고 귀국예정이며, 현재 http://taemasis.com/를 운영하면서 이집트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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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02.18 00:16

해방이후 60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뿐만이 아니라 체육또한 눈부신 성장을 가져 왔다. 이러한 성장과 더불어 태권도역시 국기태권도로서 전세계인이 사랑받는 무도스포츠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일선 도장 지도자들과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행정관료 출신인 김운용 1인체제에서 집중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도 한 몫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와 태권도는 뒤돌아볼 겨를 없이 쉼없이 달려 왔다.

당시에는 전문인력도 부족했었고, 급성장하던 중이라 우선 내 주변의 가까운 곳으로부터 인력을 충원했었고 그들의 뛰어난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시에 잘따르고 순응하며 그저 열심히만 하면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이 때문에 수위로 입사했거나, 운전기사로 고용되었어도 그 능력의 여부와 관계없이 상사의 뜻에 잘 맞으면 과장-부장-임원으로도 승진이 가능했었다. 우수한 인재나 회사의 경쟁력 보다는 자신을 추종하는 인맥을 구축하여 그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해 가는 것이 최우선의 방법이었다. 10년후 100년후의 미래보다는 살아있는 동안 그런 영향력을 행세하고 싶어 하는 출세지향주의자들과 졸부들이 기세 등등 하던 그런 사회였었다. 특히 관료들과 공공성을 갖추어야 하는 기관들도 마찬가지였다. .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체육 등 모든 분야에서 쉼없이 달려 온 길을 잠시 멈추고 제2도약을 위해 변화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의 우르과이라운드(UR)와 IMF는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돌아보게 한 소중한 교훈을 주었다.

쉼없이 달리다 보니 시스템에 있어 많은 문제가 있었고, 급속한 성장 뒤에 따르는 각종 사회적인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큰 홍역을 앓기도 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변혁을 꾀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태권도계도 인맥을 동원하고, 수직적인 조직을 통한 획일적인 사업 등으로 태권도를 성장시켜왔지만, 지금 변혁의 과정에서 홍역을 앓았고, 지금도 앓고 있다.

지금 정부는 태권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국민의 세금을 태권도에 지원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을 지원하는 사업은 공정성과 객관성이 매우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국기원에 인적쇄신과 경쟁력 있는 인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국기원은 이 현실에 갈등을 빚고 있고 있어 많은 태권도인들은 혼란스럽다.

태권도진흥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국기원은 변화하는 모습이 없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는 국기원이나 태권도에 대해 “어떤 이유로 국민의 세금을 쓸 수 있을까?”에 고민하고 있다. 지금 국기원이나 태권도 관계자들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학교가 어떤 조직이고, 어떠한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내가 낸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자녀의 학교가 부적절한 상태라면 학부모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국민의 세금으로 국기원을 지원하게 될 경우 국기원에 문제가 있다면 도장을 보내는 학부모의 마음도 같을 것이다. 이것이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의 마음이고, 세금을 내는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사회는 해방이후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을 성장시킨 공신들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까지 국내 기업에서 근무했던 공채 1기, 2기들, 대기업의 간부들은 한국경제를 만들어 가던 1등 공신들이었다. 하지만 우르과이라운드(UR)와 IMF이후 위기를 맞았다. 시대적 상황에 맞는 경쟁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적쇄신이 이루어졌고, 이들은 하나 둘 회사를 떠났다. 이미 우리사회는 1등공신으로 인정하였지만 미래를 위해 인적쇄신의 요구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 들여야 했다. 시스템이 경쟁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국기원은 그동안 심사, 지도자 양성, 인사제도와 국기원내의 관행적인 업무시스템이었다. 국기원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태권도계나 정부에서 요구하는 인적쇄신이 필요하다. 이사회 기능, 원로로서의 역할, 직원으로서의 역할을 위해 자체 인력개발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력을 확충하는 인력개발이 필요하다. 특히 태권도가 무형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쟁력을 갖춘 국기원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근거를 들어 정부는 이사회의 제기능을 살릴 수 있는 인적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마인드를 갖춘 전문인력과 목적사업을 원활하게 펼칠 수 있는 전문인력의 등용, 그리고 기존 직원들에 대한 재교육 등의 인력개발을 통해 인적자원을 고도화시키려는 노력을 해보자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국기원의 인사를 바라보는 입장을 “누구든 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법제정이후 태권도계의 인사들에 대해 태권도의 발전에 공로는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제정이후 헤게모니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 책임을 지금의 국기원에 부여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국기원의 경쟁력은 사람과 의사결정의 문제에 있는 가운데 정부가 국기원의 인적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브랜드로서 가치가 높으며, 해외태권도시장은 앞으로 수많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세계인의 브랜드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기원의 해외지부에 대한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국기원이 위상을 찾지 못하고 해외지부를 만들고 기능을 강화할 수는 없다. 국기원이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해외지부도 안정된 시스템으로 운영될 것이다.

 또, 많은 대학에서 태권도학과가 개설되어 있어 태권도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세계태권도산업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한다면 실업자로 전락될 수 밖에 없다. 이 미래의 태권도 인재들을 진출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위해서라도 올바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고도의 인적자원을 만드는 것은 인적시스템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기 이전에 국기원이 우선 개혁했어야 했다. 이것이 곧 태권도인의 자존심이고 태권도인의 상징인 국기원의 가치를 높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진행과정이므로 늦지는 않았다.

끝으로, 최근 우리 사회에서 항상 거론되는 “법보다는 상식이 위에 있다” 라는 말이 있다. 법을 집행해야 하는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장은 당연한 책무다. 또 태권도라는 특수성을 감안한 상식을 주장하고 있는 국기원의 입장도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상식이 법위에 서기 위해서는 상식이 아닌 것을 상식이라고 해서는 안될 것이며, 상식다운 상식을 제시해야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태권도인 모두가 국기원이 설립되었던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 갔으면 한다. 당시 관(館)중심의 태권도인들이 한데 뭉쳐 태권도를 정립하였고, 국기원이라는 구심점 속에서 세계화가 되었듯이, 지금 국기원은 정부와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전세계 태권도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하고 제2의 도약을 설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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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
Report/Martial Arts2010.02.11 10:49
Report/Good Writing2010.02.08 14:01
태권도전문기자인 서성원기자가 태권도의 창시자가 최홍희가 아니라는 주장을 해 태권도창시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눈길을 끈다. 이와 관련된 기사를 올려 보았다.  


  - 태권도 발전과 세계화 공로는 인정
  - 홀로 태권도 창시했다는 논리는 '우상화'에 불과

2000년 새해 벽두, 최홍희는 <태권도신문>에 '태권도는 세계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지의 신년사를 팩시밀리로 보내 왔다. 이 신년사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상적인 인류사회의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태권도는 나날이 성장하여 지금은 지구촌 어디에서나 수많은 태권도 수련생과 애호가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태권도는 스포츠가 아니라 동양사상에 근거한 철학과 민족정신에 기초한 순수 무도이며 임기응변의 스포츠인 가라테 식 사이비 태권도는 이제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태권도 24틀의 마지막 틀인 통일은 우리 민족의 간절한 염원인 통일을 상징하는 틀이다. 원컨대, 새 천년 새 세기를 맞아 반세기가 지나도록 아직도 분단되어 있는 조국의 통일을 기하기 위해 힘껏 노력해야 한다. 고귀한 무도인 태권도가 세계 평화와 복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 보급하는데 앞장 서 주기를 바란다."

국제태권도연맹(ITF)은 무도를 지향하고, 세계태권도연맹(WTF)은 스포츠를 지향한다는 게 최홍희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나는 태권도를 무도라고 생각하고 있지. 내가 만들 당시에도 이것은 단순히 상대를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둔 스포츠가 아닌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야. 스포츠와 무도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은 (국제태권도연맹이 가입되어 있는) 세계무도연맹의 성격을 봐도 알 수 있고…." <월간 말誌 2000년 9월호 참조>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홍희는 어떤 사람이고, 태권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최근 들어 국제태권도연맹(ITF)를 창설하고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최홍희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나영일 서울대 교수는 2006년 11월 국기원이 주최한 '태권도 역사-정신 연구 세미나'에서 "남한을 배척했다고 해서 최홍희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백안시한다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라고 말했다.

북한의 조선태권도위원회는 2006년 1월, ITF 대한민국협회에 평양태권도행사와 관련된 초청장을 보내면서 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라고 지칭했다.  현재 ITF에 소속되어 있는 단체와 일부 태권도인들도 그가'태권도 창시자'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들이 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라고 하는 근거는 △국제적 명성의 브리태니커 사전에 그가 태권도 창시자라고 명기돼 있고 △1955년에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들었으며 △1959년 태권도 최초로 '태권도교본'을 집필하는 등 독자적인 '창헌류' 틀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홍희도 생전에 자신을 가리켜 '태권도 창시자'라며 강한 자긍심을 드러냈다.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는 태권도 창시자가 아니다.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태권도를 창시했다고 하는 근거는 그 어떤 사료에도 나와 있지 않다. 다만 그럴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창시(創始)'는 '처음 시작함'을 뜻하는데, 그가 '태권도를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논리적 개연성은 없다. 오랫동안 그를 연구해온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은 "태권도 창시자란 태권도를 처음 시작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우리들은 (태권도인들은) 그와 같은 의미에 동의하지 않을 듯싶다"며 "왜냐하면 최홍희가 오늘날 태권도를 처음 시작하고 보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50년대 오도관을 만들어 군 장병들에게 태권도를 보급하고 '태권'이라는 말을 만들어 낼 당시에도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는 엄연히 존재했다. 다만 그 당시에는 태권도라는 명칭이 없어 공수도 혹은 당수도가 통용되던 시기였을 뿐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생긴 청도관과 무덕관, 송무관, 조선연무관(지도관), YMCA 권법부 등은 창설자들의 무술 이력이 어떻든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를 파생시킨 태권도 모체관(母體館)이다. 이 모체관에서 무술을 수련한 사람들이 태권도의 도약과 발전을 이끌어냈고, 현재 태권도 원로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태권도계에 전면으로 나타난 것은 1950년대 초반으로, 자신이 사령관으로 있던 군부대에서 태권도(당시 당수도)를 가르칠 때 활용한 인력은 대부분 해방 이후 청도관에서 당수도를 배운 사람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일본 유학 시절 가라테를 배운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무력(武歷)이 없었다.

만약 그가 태권도 창시자라면, 1955년 청도관에서 손덕성 관장 명의로 명예 4단증을 받은 이유를 명쾌하게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태권도 창시자라고 하는 그가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 모체관 중 대표 격인 청도관의 명예단증을 원해서 받았다는 주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서울신문, 1959년 6월 16일자 청도관 손덕성 관장 성명서 참조>

그래도 최홍희가 태권도 창시자라고 한다면 객관적이고 명확한 역사적 사료가 있어야 하고,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주장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지적에 대해 ITF 측은 "WTF에 소속되어 있는 기득권 태권도인들이 그에 대한 편견과 불신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태권도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던 시절에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들고, 자신의 철학과 성향에 맞게 태권도를 창작하고 변형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만들었다는 '창헌류(태권도 틀)'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1965년 창헌류를 소개한 교본에서 故 최 총재는 "태권도와 일본 가라테를 확연히 구분하는데 분수령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문헌"이라고 자평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WTF의 품새는 가라테의 아류라며 창헌류야 말로 한국적인 동작이라며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간 그를 지켜봤던 림원섭 사범(스웨덴)은 이렇게 반박한다.

"최 총재의 회고록 『태권도와 나』라는 책 안에는 최 총재의 태권도 동작 사진이 15개 있다. 그중 중복된 동작 사진은 5개가 있어 실상은 10개의 동작 사진이 있는데, 5개 동작은 태권도 동작이 아니다. 가라테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옆차기는 가라테 동작과 똑같다. 최 총재는 평소 수천 개의 태권도 동작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 회고록에 15개 동작, 그것도 중복된 동작이 5개인데, 이는 사람을 교묘히 우롱하는 처사이다." <태권도신문 1998년 10월 기고문 참조>

최홍희는 태권도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신처럼 우상화하고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열일 교수의 말처럼 그가'태권도'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낸 공(功)은 크지만 그렇다고 태권도를 그가 홀로 창시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계파와 이념을 떠나 후진들에 의해 냉철하게 이뤄져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taekwonline.com/detail.php?number=774&thread=29r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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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01.1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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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세계종합무술대회(무술올림픽)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IOC산하 GAISF(국제스포츠단체총엽회) 단체들중 무술과 격투기종목만이 한데 모여 종합대회가 개최된다.

‘Sportaccord Combat Games'가 오는 8월 28일부터 9월 4일까지 베이징에서 개최된다. 이 대회의 조직위측은 GAISF가맹단체중 무술종목과 격투기종목들의 종합대회성격으로 13개종목 60-80개국, 1,200여명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규모를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세계랭킹 20위이내의 선수들이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여 무술과 격투기종목의 최고 경쟁대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각 경기장은 국립경기장(사진)을 비롯 중국농업대학체육관, 북경과학기술대학 체육관, 베이징공과대학 체육관 등에서 경기가 펼쳐지며, 각종 경연대회와 박람회를 비롯해 전시회와 학술세미나도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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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기장



이 대회의 정식종목은 우슈, 아이키도, 복싱, 주짓수, 가라테, 켄도(검도), 킥복싱, 무에타이, 삼보, 스모, 태권도, 유도, 레슬링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13개종목중에 일본무도가 5개종목을 차지하고 있어 일본의 강세가 예상된다. 

또, 각 종목별 경기대회이외도 무술진흥을 위한 학술세미나와 경연대회 등을 유치한다는 특징이 있어 세계무술시장의 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무술계에서는 경기화된 무술종목만이 참가가 가능한 것으로 1회성 대회로 끝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태권도와 일본의 가라테, 그리고 중국의 우슈이외의 종목에서는 큰 관심이 없다는데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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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s2010.01.11 18:03

무술동북공정 시작됐다

사진은 SBS뉴스의 한장면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정책연구를 통해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보다 더 치밀하게 한민족의 뿌리를 자극하고 있다.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태권도시범중 ‘태권도는 중국에서 유래되었다’는 해설를 놓고 동북공정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무예계의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태권도계에서는 별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최근 무예를 연구하는 교수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보면면 생각보다 심각할 정도로 중국은 무술에 대해 동북공정을 이미 시작했다고들 이야기한다. 그 사실에 대해 동북공정에서 다루고 있는 동북삼성은 우리 민족의 역사터이고 우리 무예의 역사가 존재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이미 무술의 동북공정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동북삼성은 과거 고구려가 지배했던 영토다. 그러나 당나라, 여진, 말갈, 거란, 몽고, 청, 국민당을 거쳐 현재는 중국공산당 정권에 의해 중국영토가 되어 있다. 이 곳은 현재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 곳의 역사는 중국역사의 작은 일부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공산주의식 사고로 당연할지 모른다. 공산주의는 인종을 비롯해 민족을 구분하지 않는 계급에 의한 체계다. 결국은 중국의 공산주의는 혈연, 인종, 종교 활동을 비롯한 사회집단이며, 현재 한족의 지배체계로 다른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는 한족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보여진다.

“태권도는 중국의 권법에서 출발했다”, “합기도와 유도는 중국의 솔각에서 출발했다”는 말은 무술의 기술적 측면에서 중국무술계가 내세울만 하다. 문제는 이런 논리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중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무술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전해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의 수천년의 역사는 온데 간데 없고 “우리 땅에서 시작된 것이니 우리 것이다”라는 동북공정의 불도저식 사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다. 미래의 한국보다는 과거의 동북삼성의 한민족역사를 없애는 정책으로 우리 뿌리를 잘라 중국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동북삼성의 고구려땅을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순간 고구려벽화의 씨름은 중국의 씨름이 되는 것이고, 수렵도에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 역시 중국의 기사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고구려의 무술이라고 주장하는 무술단체들은 동북공정이 성공할 경우 중국무술인 것이다.


전통무예진흥법은 식은 감자

이런 동북공정같이 엉뚱한 논리로 살아 가는 국내 무예들도 많이 있다. 말도 안되는 논리로 ‘전통무예’ 혹은 ‘민족무예’라고 주장하고 있고, 전통무예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무예계의 일부 단체들은 ‘단체 살아남기’에 급급한 이기적 모습으로 앞 뒤 못 가리고 무예계를 좌지우지하려고도 한다. 수입무술을 놓고 우리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가 하면, 갑자기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무예인으로 변신을 꾀하고 스스로를 전승자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생긴지 10년도 안된 무예들이 역사성이 미비하다보니, 가전무예로 돌연 변신한 경우도 있다. 개가 호랑이 가죽을 쓰고 호랑이 흉내를 낸다고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우리 무예역사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 동북공정에 대한 대처는 뒷전이고 오로지 자기 단체나 자기만 살아 보겠다는 이기적인 근성을 보이기도 한다. 어설픈 ‘전통무예론’을 내세워 정치권 실세들과 손을 잡고 무예의 정체성을 흔드는한심한 무예인들이 있는가 하면, “아니면 말고”식의 시장잡배 같은 행동으로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사례도 많다.

지난 대선이후 처럼 여야가 바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치권이 개입되기도 한다. 어설픈 무예인들은 정치인들의 학습을 통해 단체를 만들기도 하고, 통합하기도 하면서, 또 분파되기도 한다. 이런 일은 해방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어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무예와 무예인들이 있는가 하면, 집권당의 혜택을 보겠다고 집권당만 쫓아 다니는 무예인들도 있다. 이를 두고 무예계에서는 자정의 소리가 높지만 도무지 막무가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중국이 무술에 대해 자신있게 뿌리와 지역론을 외치며 ‘무술의 원류는 중국’이라고 외치고 있는 마당에 우리 무예계는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한심한 처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역시 전통무예진흥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도대체 관심이 없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면 당장에 긴급한 법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태권도도 정비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전통무예에 신경 쓸 시간이 없는 것인지 시원스러운 그림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렇다보니 지금 무예계마저 전통무예진흥법은 식은 감자로 취급되고 있다.


무예계의 관심, 노력, 대응 필요

이런 원인에 대해 한 무예계의 원로는 “무예계가 배고파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런 배고픔은 우리나라 무예정책이 태권도, 씨름, 국궁에 대부분 지원되고, 나머지 무예들은 박해수준에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방이후 태권도에 집중된 정책으로 인해 태권도이외의 무예들은 설 자리도 없이 제도가 바뀔 때 마다 표류해 왔다. 정부가 태권도에 예산을 투여할 때 나머지 무예들은 정부 지원없이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이제 정부는 서자취급만 했던 무예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스스로가 명품이 아닌 짝통 역사를 만들 정도로, 동북공정은 이미 한국과 중국의 역사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전쟁에는 우리의 민족과 무예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몸짓인 무예가 중국의 짝퉁역사 때문에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우리 무예계도 사리사욕을 버리고, 눈치만으로 일관하지 말고, 적절하게 대응을 할 수 있는 고민과 대책이 필요하다. 동북공정으로 인해 우리 무예의 역사를 빼앗길 수 는 없지 않은가. 정부가 관심이 없더라도 무예의 역사를 바로 알고 바로 잡기를 위해 무예계의 노력과 무예연구가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Tip [동북공정(東北工程)]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는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공정)'이다.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를 말한다. 무술은 우슈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80년을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무예와 일본무도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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