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의 고민, 무도냐 스포츠냐

2022. 5. 31. 11:36Report/Martial Arts

728x90
반응형

가노지고로가 유럽에 유도를 보급했지만, 유도는 두가지 방향으로 상황이 만들어졌다.

일본인의 영향력이 우세한 지역에서는 가노지고로의 지시가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다른 한편, 중부 유럽에서는 권투와 레슬링 전통의 영향으로 유도가 이미 체계화되고 고유한 규칙이 있는 격투 스포츠에 동화되었다.

1939년 9월 1일에 발발한 세계대전은 국제 유도의 스포츠 지향에 최종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에서는 무사도(武士道)와 일본 정신인 야마토 다마시(大和魂)를 장려하기 위해 일찍이 1931년에 학교에서 무술 연습을 의무화했었다 . 그러나 패전이후  무술은 서양 스포츠를 대체했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한 후 연합군 최고 사령관을 역임한 맥아더 장군은 포츠담 협정에 따라 일본의 비무장화를 시작했다.

1945년 10월 22일 그의 명령에 따라 일본 문부성은 모든 유형의 군사 교육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무술은 학교와 대학의 체육 교육 과정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초국가주의로 분열되는 것을 막는 사설 기관은 계속 개방할 수 있었다.  강도관이 그런 경우다. 그리고 전쟁 직후 강도관은 연합군에 문을 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유도를 수련했다.

Source: Judo for the World by Michel Brousse with the collaboration of Nicolas Messner

1937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을 지나 행진하는 유도회원들

194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한 가노지고로를 축하하는 일본인들. 그러나 이 대회는 취소된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