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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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신민체조에 유도가 포함되었다
1938년 7월 16일 오후 1시 일제는 '황국신민체조'를 제2, 제3의 체조로 확대 고안한다. 이를 위해 총독부 제2회의실에 모여 황국신민체조제정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사범들은 검도사범들뿐이었을까? 제2 체조영역은 당시 기존의 신민체조를 발전시키기 위해 위원으로 中野宗助, 根本通夫(경성사범학교), 石原一人, 陳內鹿雄(경성무덕관), 松延信藏(평양사범학교)가 참여했고, 제3체조에서는 유도의 형을 포함해 넣은 것으로 古澤勘兵衛(조선총독부 경관강습소), 佐藤完三(경기도경찰부), 依田德藏(경성사범학교), 瀨戶口新吉(경성사범학교), 姜樂遠(조선무도관)이 참여했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조선인으로는 강낙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미 이 시기 친일활동으로 무도교육에도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황국신민체조에 유도..
2022.07.24 -
조선시대 말은?
10년전 500년만에 돌아온 그림. 버드나무가 우거진 냇가에서 목동들이 말을 씻기는 '류계세마도'(17~18세기 추정)다. 일본에 가 있던 그림이었다. 이 그림을 놓고 여러 해석을 한다. 내가 동감하는 것은, 그림 수준은 화원소속 화가, 말을 보면 조랑마가 아니다. 그러나 이 장소에 대해서는 다르다. 개인적으로 서울 아차산 계곡, 백운동계곡, 인왕산 수성동계곡 등 말을 씻길 수 있는 곳으로 보고 있다. 왕의 말로 보인다. 왕자도 포함될 수 있다. 아차산과 광진구, 성동구일대는 국립마장이었고, 경복궁 부근은 무예훈련장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물이 풍부한 곳이라면 이 곳들이지 않을까...
2022.07.17 -
대한제국에 유도를 소개한 사람은?
대한제국에 유도를 소개한 인물중 한명인 소수이시류(双水執流)의 아오야나기 키헤이 마사요시(青柳喜平正聰)이다. 그는 1906년 무덕류유술신형제정위원회에 소수이시류 대표로 참여했다. 그는 1907년 대한제국에 들어와 유도를 소개했으며, 1908년 3월 내각원유회 주최로 비원에서 한일순사유도경기를 개최했다고 국내 연구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1906년 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가 명동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공장안에 강도관유도도장을 세워 운영하였으며, 이 도장에서 타류 유술인 아오야나기가 함께 했다(경성유도발달사, 1927). 이 기록에는 그를 실업가로 칭해 경영지원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유술기술도 뛰어나 소수이시류(双水執流)의 14대 수장이었다.
2022.07.17 -
여성유도의 시작
현대 스포츠로 성장한 유도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 모델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같은 수의 체급과 종목, 단체전의 남녀비율, 성별 구분 없이 동일한 상금(아닌 지역도 있음) 때문에 나온 이야기다. 20세기 초부터 1960년대까지 유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특히 다다미 위에서의 행동도 제한이 있었다. Kodokan의 기록을 보면, 최초의 여성은 Miss Ashiya Sueko가 나온다. Kodokan 유도가 나온지 1년 후인 1893년에 가노지고로는 자신의 아내와 아내친구들에게 유도를 가르쳤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923년 11월이 되어 여성을 위한 정규 교육이 시행되었다. 1926년 하계 훈련 일정을 짜고 같은 해 11월 공식 프로그램과 여성전담부를 신설했지만 당시 여..
2022.06.28 -
KOREA, 1948년 런던올림픽으로 가는 길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출발한 대한민국 선수단에 일본을 경유했다. 런던까지는 20일이 소요됐다. YMCA에서 서울역-부산-일본 하카다 항- 요코하마... 재일동포들이 마중을 나오는 등 선수단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일본에서도 뜨거웠다. 도쿄에 체류하는 재일동포들은 성금과 함께 유니폼, 양말, 넥타이를 선수단에게 전달했다. 오사카와 교토 거주 재일동포들도 성금과 쌀, 수건 등을 기탁했다고 한다. 'KOREA'라는 이름으로 첫출전한 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영국 캠브릿지대 유학파 장환범을 체육회장과 NOC회장으로 추대하고, 친일인사들까지 투입한다. 이 와중에 단체들의 올림픽출전 경쟁으로 단체간 갈등도 있었다.
2022.06.28 -
태권도는 기술평준화가 되었다.
태권도가 국제사회에서 기술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우리가 독식하던 메달종목이었다. 기술평준화가 되기전 세계태권도연맹은 올림픽에서 국가당 8개체급중 4체급만 출전시킬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이 덕분에 최초의 올림픽메달은 태권도에서 나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나라의 효자종목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술평준화가 이루어져 우리도 메달따기가 어려운 종목이 되었다. 국제대회하면서 종주국이 메달을 독식하는 대회는 성장하지 못한다. 유도가 64도쿄올림픽이후 68멕시코 올림픽에서 퇴출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고, 펜칵실랏이 자카르타게임이후 아시안게임에 포함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평준화는 기술이 실제 평준화된 경우도 있지만, 경기규칙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스포츠는 경기규칙이 지배하기때문이다. 종주국의 의..
2022.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