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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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의 고민, 무도냐 스포츠냐
가노지고로가 유럽에 유도를 보급했지만, 유도는 두가지 방향으로 상황이 만들어졌다. 일본인의 영향력이 우세한 지역에서는 가노지고로의 지시가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다른 한편, 중부 유럽에서는 권투와 레슬링 전통의 영향으로 유도가 이미 체계화되고 고유한 규칙이 있는 격투 스포츠에 동화되었다. 1939년 9월 1일에 발발한 세계대전은 국제 유도의 스포츠 지향에 최종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에서는 무사도(武士道)와 일본 정신인 야마토 다마시(大和魂)를 장려하기 위해 일찍이 1931년에 학교에서 무술 연습을 의무화했었다 . 그러나 패전이후 무술은 서양 스포츠를 대체했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한 후 연합군 최고 사령관을 역임한 맥아더 장군은 포츠담 협정에 따라 일본의 비무장화를 시작했다. 1945년 10월..
2022.05.31 -
한국 유술은 있는가?
해방 직후 국내 검도계에는 일제강점기 검도를 배운 이들이 검도회를 만들었다. 대부분 일본유학, 국내 학교, 국내 일본군.경출신들이었다. 그러나 검도계에서 눈에 띄게 활동은 안했지만, 실력파들이 있었다. 이들은 격검과 유술로 다져진 사람들이다. 검도와 유도로 다져진 만주계 인물들이었다. 이 인물들을 추적중에 유술이야기가 돌아 잠시 고민해 본다.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학교) 설립자 이제황(1910-1981)선생님의 최종학력은 북경대학이다.유도는 소년시절부터 YMCA유도에 입문해 1932년 초단, 1939년 5단을 승단했다. 항일운동에 앞장 섰으며, 여운형과 일제강점말기에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하기도했다. 해방이후 이범석 장군과 대한유도학교를 서울 소공동(현, 소공동 한화빌딩일부) 설립했다. 그는 유도정신과 ..
2022.05.14 -
태권도의 띠색은 어디서 차용됐는가?
음양오행사상에서 나온 색이 오방색이다. 청(동쪽), 적(남쪽), 백(서쪽), 흑(북쪽), 황(중앙) 등 방위를 의미한다 색상의 우열은 황색, 자주색, 빨간색, 녹색, 파란색, 검은색, 흰색 순이 된다. 색의 계열도 청색계통 색상 : 파랑, 초록, 네이비색/ 적색계통 색상 : 빨강, 분홍, 보라색/ 황색계통 색상 : 노랑, 베이지, 브라운/ 백색계통 색상 : 흰색, 아이보리색/ 흑색계통 색상 : 회색, 쥐색, 암갈색이다. 그렇다면 태권도 띠의 색은 어떻게 차용된 것일까? 검은띠와 흰색띠, 그리고 빨간띠는 현대유도 창시자 가노 지고로가 차용한 것이다. 이외 컬러띠는 영국에서 당구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이 있고, 컬러띠는 프랑스에서 유도종목에서 실용화됐다. 그렇다면, 태권도의 컬러띠는 누가 어떻게 어..
2022.05.03 -
윤석열정부 무예진흥정책은?
27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가 균형발전 지역공약을 발표했다. 역시 지자체에서 체육정책은 많은 부분 아쉬움이 남는다. 발표된 내용에서 체육과 연계해 채택된 지방공약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강원도는 올림픽유산활용 메타버스 플랫폼 구축, -충북은 지역대표유산 세계화 및 스포츠저변확대, -충남은 글로벌해양레저거점 조성, -전북은 국제태권도사관학교 및 전북스포츠종합훈련원 건립 이 공약은 당선자가 후보시절 공약한 내용과 각 지자체가 인수위에 제시하고, 조율해 만들어진다. 한편, 당초 무예공약은 윤당선인측에서는 없었다. 그러나 충북은 'K마샬아츠 세계화 및 무예올림픽지원' 사업을 제시해 충북 지역현안사업으로 반영됐다. 새 정부의 지방 공약이 사실상 확정된 것이다. 오는 6월 지방 선거에서..
2022.04.29 -
청와대 개방프로그램, 융무당 복원후 전국무예대제전을
윤당선인이 청와대 시절의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끊겠다며 직무실을 옮기고 개방하겠다고 한다. 개방이 기정사실화 되었으니 얼마 안있으면 청와대는 이제 관광이나 대통령기념관의 기능으로 변경된다. 이 개방을 앞두고 많은 단체들이 개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려 난리다. 무예계도 특수(?)가 될 것이라며 김치국부터 마시는 이들도 많다. 개방되는 청와대 자리에 무예프로그램을 고민한다면 보다 심사숙고해야 한다. 과거 청와대자리는 국가차원의 무예를 평가했고, 활터도 있었다. 그 중에 융무당은 무과시험이나 무사들을 평가하던 곳으로 원래는 관취당이었다. 이것을 사용이 불편하다 하여 숙종의 지시로 보수후 융무당으로 변경했다. 이 융무당은 일제강점기에 융문당과 함께 용산 에 있던 일본사찰이었던 고야산 용광사(고야산 용광사(高野山 ..
2022.04.28 -
인사동 무예인의 혼이 있는 곳
인사동에 가면 가끔 찾는 경인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태권도인이었던 이금홍( 1936~2010) 전세계태권도연맹 사무총장이 퇴직후 문을 연 곳이다.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후 본인의 아호를 따 1983년 개관한 경인(耕仁)미술관 회장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김운용 총재이후 차기총재로 거론되었으나, 원로로서 백의종군 했다. 그는 1953년 창무관에 입문해, 1956년 박철희, 홍정표 두 사람에 의해 창설된 강덕원의 핵심 관원으로 활동했으며 강덕원 2대 관장을 지냈다. 그리고 대한태권도협회와 세계태권도연맹의 발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태권도 주요 기구의 주요 직책을 맡았었다. 연세대 상과를 졸업했으며 재학시절 학생회장도 했다. 태권도의 브레인이었다. 그리고 세계태권도연맹이 자리할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어쩌면..
2022.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