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7. 17:24ㆍReport/Martial Arts
1989년 6월 대한제국왕립무관학교 1기 사관생도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모집정원은 200명에 지원자는 1700여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 무관학교의 교원은 교장(장급), 교두(영관급), 교수 및 교관(영.위관급)이었다. 이외에도 의무관. 번역관. 주사. 조교 등 80여명으로 편제되었다. 당시에 외국인 교수교관이 있었는데, 러시아.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온 교수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과목은 기초군사훈련, 전술학, 군제학, 병기학, 축성학, 지형학, 위생학, 마학, 외국어학 등이 있었으며, 훈육 과목으로 교련, 마술, 체조, 검술, 군용문장 및 제근무의 훈회(訓誨) 등이 있었다. 현대 사관학교 교육에 비해 부족하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제도화된 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육기간은 1년으로 원수부의 특별시험을 합격한 자에게만 졸업자격증이 부여되었고, 졸업생은 종6품 참위(소위)로 임명되었다. 1900년 1월 장연창(張然昌)을 비롯한 128인의 첫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이 무관학교는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원수부를 폐지하고 무관학교를 9월에 신설된 교육부에 이관, 소속시켜 일본식으로 개편하였다. 이듬해 2월 교육부가 폐지되면서 다시 군부의 지휘, 감독을 받게 되었다.
당시 무관 학도는 유년학교 졸업생으로 수학 연한 3년을 원칙으로 하였다. 1904년 9월 무관학교를 장교 양성 기관으로 만들어 종래의 천거 제도는 폐지하고 3년간의 육군유년학교 졸업생을 입학시킴으로써 졸업 기한은 총 6년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1907년 8월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면서 무관학교의 모집 정원이 15인으로 축소되었다. 그 후 1909년 9월 무관학교가 폐지되면서 사관양성은 일본국 정부에 위탁한다는 조칙이 발표되었다. 근대적인 군사 제도의 개편과 함께 설치된 무관학교가 그 기능을 그나마 발휘하였던 것은 1898년에서 1904년까지 6년뿐이었다. 무관학교는 1896년부터 1909년까지 49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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