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땅에서 일본스모판이 열렸다.

2020. 3. 6. 11:24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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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서 일제강점기 스모를 가르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최대규모의 씨름대회를 했다는 기록은 기존 체육사연구자들이 다루지 못했다.

최근 일제강점기 무예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던 가운데, 발견한 일부 자료다. 1931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을 예상했다. 1941년 진주만 등의 폭격을 앞두고 그들은 왜 경성에서 스모판을 열었을까?

황국신민화정책을 펼치던 일본이 조선을 거점으로 움직인 그들의 용감한(?) 이벤트. 자료들이 하나둘 발견되면서 일본의 속내와 해방이후 우리 체육이 얽매일수밖에 없었던 사실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1941년 6월 19일부터 6일간 서울 을지로6가(당시 황금정6정목 부민회장, 현 국립의료원과 쇼핑몰자리)에서 7백여명의 일본 스모선수들이 참여해 스모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기계화국방협회조선지부, 조선국방항공단본부가 주최가 조선군사령부국민총력조선련맹과 일본스모협회가 공동후원이 되어 1만2천여명이 관람할 수 있는 임시경기장을 지었고, 대성황을 이루었다.

일본스모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조선신궁(현, 남산)에서 의례를 하고 대회에 임했다. 당시 조선에서 개최된 정규 일본스모경기는 이 대회가 최초다. 당시 스모스타로 알려진 후다바야마, 미나오나와, 하구로야마와 같은 세명의 요코즈나도 참석했다. 그들은 배로 부산으로 와 씨름특별열차를 타고 경성역으로 왔다고 한다.

이 대회의 취지는 일본국기인 스모경기를 통해 상무정신을 부여한다는 취지였다. 전시에 홍보용인 것으로 보인다.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요코즈나 3명은 제7대 조선총독인 미나미 지로(南次郎) 총독을 접견해 격려를 받기도 했다. 이 대회 경기장에서는 음주를 금했다.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에서 일본 스모선수들이 대회에 앞서 의례를 하고 있다. 
12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임시 경기장 설비 모습
제7대 조선총독인 미나미 지로(南次郎) 총독 접견장면 
1941.5.23. 요코즈나였던 하구로 야마(羽黒山)
미나오나와(男女川)

 

 

 

37대 요코즈나 후다바 야마(双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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