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술, TV를 타고 알려지다

2011. 7. 3. 15:48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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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우리나라 무예는 다양하다. 그래도 1960년대와 70년대 가장 큰 활약을 한 지금의 제도권 무예이외의 무예를 꼽는다면 '정도술'이 있다. 이 정도술의 이미지는 검술에 있다. 특히 각종 드라마에 출연한 당시의 사범들이 검극물을 통해 시청자들을 자극했다.

1965년 대한정도술중앙수련관은 한중양국의 친선을 목적으로 5월 3일과 4일 이틀에 걸쳐 친선무술경연대회를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다.  경향신문 5월 3일자 8면의 기사내용이다. 국내 언론에 정도술과 관련하여 처음 나오는 자료다.

1970년 7월 25일 경향신문 5면, 정도술이 언론에 또 등장한다. 당시 검객활극물의 시도로 만들어진 TBC의 '두 나그네'와는 달리 TBC의 '녹슨단검'은 검극물의 성공보다는 당시 주인공으로 나오는 돌쇠의 코믹연기에 인기가 있었다는 것. 남량특집의 경쟁에 검극물이 대거 나왔지만 실패하던 시절이다. 그 이유는 일본의 사무라이검술에 경쟁상대가 안되었던 당시의 분위기때문으로 보여진다.

'녹슨단검'의 후속으로 나온 것이 KBS의 '돌쇠'. 여기엔 한국의 고유라고 자칭하는 '화랑검법'이 등장한다. 당시 기사내용을 보면,

....여기에 나오는 검술은 한국고유라고 자칭하는 소위 '화랑검법'의 대한정도술이란것으로 안일력씨가 지도하며 '녹슨단검'때 검술지도를 한 검술4단의 안길원씨가 직접 탈렌트로 등장한다.....

1971년 당시 안길원과 안일력

하지만 이 당시에 화랑검법이라고 주장을 해도 언론은 그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고 '국적불명의 검술'로 치부한 시대다.

하지만 1971년 동남아 수출을 목표로 본격적인 검객영화를 만든다. '분노한 세얼굴'은 임원식감독이 현역 무사형제인 안길원(당시 28세)와 대한정도술수련관장이던 안일력(당시 38세)를 등장시킨다.

당시만 해도 제도권의 무예는 유도, 태권도, 검도, 씨름, 궁도뿐이었다. TV를 통해 알려진 정도술이나 당시 안일력씨에 의해 만들어진 무술총연합회에 함께 한 합기도 등도 주목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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