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무당, 근대중국사관학교

2022. 3. 20. 10:21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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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 武人의 역사다. 이 기사를 토대로 추가해 정리해 보면,

옛날부터 윈난(운남, 雲南)인들은 무(武)를 숭상했다고 한다. 윈난은 내세울 것이 없었다고 하지만, 국방력 하나만은 빠지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룽윈(龍雲)은 윈난의 군벌이었다. 체구 작았지만 검술과 봉술에 탁월했고, 사관학교에서 무술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윈난왕 룽윈을 배출한 윈난강무당은 장쭤린(張作霖·장작림)이 설립한 동북강무당, 위안스카이(袁世凱·원세개)가 텐진(天津)에 세운 북양육군강무당과 함께 청 말의 3대 군사학교였다.

윈난강무당 초대 교장(監督) 리건위안(李根原·이근원)과 교관 탕지야오(唐繼堯·당계요)는 한반도와도 인연이 많았다. 탕은 예관 신규식 선생과 친분이 두터웠다. 윈난의 군·정을 장악하자 한국 청년들에게 군사학을 습득할 계기를 마련해줬다. 한국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윈난강무당은 동린(東鄰)인 한국 학생들에게 영향을 줬다. 훗날 윈난항공학교를 졸업한 한국인들이 ‘윈난파’를 형성할 정도였다. 김일성이 굴기하자 거의 숙청당했다.” 암울했던 시절, 청산리에서 기개를 떨친 이범석 장군과, 한때 북한의 2인자였던 차수 최용건도 윈난강무당을 다녔다. 그 외에도 많았다. 이범석은 연령 미달이었다. 탕이 “나이가 대수냐”는 한마디에 입학이 가능했다.

룽윈은 평생 민주를 옹호, 독재에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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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윈 배출한 윈난강무당, 청산리 영웅 이범석도 다녀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8〉 옛날부터 윈난(雲南)인들은 무(武)를 숭상했다. 글(文)은 잘해도 알아주지 않았다. 룽윈(龍雲·용운)도 일찌감치 무예의 길로 들어섰다. 1990년 10

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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