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의 세계화와 세계무술연맹의 역할

2010. 1. 21. 16:10Report/Martial Arts

728x90
반응형

무술의 세계화와 세계무술연맹의 역할

허건식

체육학박사/세계무술연맹 이사/소마연구소 소장

이 글은 무술이 세계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세계무술연맹이 유네스코 자문기구로서의 무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지금부터 10년 전까지는 무술들이 경기화에 초점을 맞추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이에 따른 경기화 문제와 무도의 본질적 문제간의 시소게임이 시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무술의 세계화에서 가장 심각하게 제기되고 문제들은 무술의 세계화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될 것이다. 세계화의 본질에 대한 물음은 단순히 무술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주도하고 있는가하는 물음을 넘어 서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것이 무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맞물려 무술의 세계화가 자칫 무술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면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통적인 무술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무술의 세계화에 따른 문제점을 찾아보고, 이러한 문제를 세계무술연맹이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에 대해 살펴 보았다.

무술의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여러 문화가 뒤섞이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민족국가들에 의해 보급된 무술들이 각국에서 그들만의 문화와 접목돼 새로운 신생무술들이 등장하고 대중화에 이르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무술이 스포츠문화의 영향으로 스포츠화된 종목 역시 그 내면에는 스포츠의 경기규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결국은 하나의 보편 문명(universal civilization)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 문명이란 인류의 문화적 융합, 즉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공통된 가치관과 믿음 및 이상을 그리고 공통의 체제나 제도를 받아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국의 음악과 무술의 만남, 각국의 신체리듬에 맞는 무술형태의 변화, 그리고 합리성을 앞세운 경기규칙 등이 무술의 세계화속에 나타난 특성들이다. 이러한 형태들은 구지 ‘무술’로 해석하기에는 어려운 논리들도 많다. 일시적인 ‘대중문화’로서의 변화이지 한때의 유행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한 때의 대중적 유행이 세계 곳곳에 열병처럼 퍼진 사례는 역사 속에서 수 없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것들이 무술의 심층적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인기리에 보급되고 있는 신생무술들은 대중문화의 일부분으로서 변화되고 있는 것들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통을 고수하는 무술인들은 자신들의 무술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강화되고 있다. 왜 이런 욕구가 발생하는가? 여기에는 무술의 정체성을 회복함으로써 무술의 세계화가 갖는 제국주의적 획일화에 대항하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그동안 무술이외에서 많은 영역에서 반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수행해 온 세계화에 대한 반론일 수 있다. 무술역시 수많은 환경 속에서 스포츠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스포츠화된 무술의 조직의 지배를 우려하고 있다.

다음은 무술에 대한 지적 재산권에 대한 원천적인 재검토이다. 무술의 근원이 어디이고 무술에 대한 체계를 어느 나라가 만들었는가에 대한 것보다는 무술이 원래 각 나라와 민족마다 존재했다는 거시적인 기원론을 근거로 한다. 공동으로 지니고 있던 신체문화가 어떠한 수련체계를 가해 처음의 신체운동체계보다 더욱 좋은 결과를 산출했다면 그 무술은 개간(開墾, reclamation)된 것이다. 그러나 무술이 다양한 문화와 만나면서 재생산과정에서 지적 소유권의 확립과 함께 무술지식의 사유화는 새로운 지식을 모두 사유화 할 정도로 가속화되고 있다.

무술에 대한 사적 소유권은 토지나 자본의 사유화와는 다르다. 어떤 무술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무술의 지식 획득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무술을 독점적으로 활용해서 좋은 결과를 산출한다면, 그것을 사장시키는 것보다 낫다고 해야 한다. 같은 논리로 그것 때문에 아무리 많은 수련생을 확보하였다 할지라도, 다른 무술의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 이상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술의 사적 소유에 대한 주장은 해당무술의 본질에 대한 완전한 곡해(曲解)위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나의 새로운 무술이 창안되는 과정을 보면, 누구든 새로운 무술을 창출하려면 지금 까지 축적된 무술의 지식을 배우지 않고는 불가능 할 것이며, 이 배움의 과정에서 무상으로 제공된 모든 것을 고려해 보면, 창안한 무술의 양은 대개의 경우 극히 적은 부분에 불과 할 수 있다. 또한 지적 재산권의 보호가 혁신을 촉진시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무술의 창출자에게 지나친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계속 야기 시킬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최근 무술이 건강을 위한 소재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적 소유권은 생명의 도구화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지적 재산권을 떠나 무술이 스포츠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무술이 지닌 기술체계와 정신적인 면에 있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무술의 겨루기식 경기화는 무술이 지닌 본래의 특성들 중 승부의 세계를 강조하고 결과론적인 입장을 고집해 무술의 본질은 약화될 수 있다. 또한, 스포츠세계에서 나타나는 조직의 갈등을 고려해 볼 때 조직권력이 강화된 국가에 비해 다른 국가들의 가맹국의 권력은 약화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무술의 세계화를 주도한 종주국이 종전과 같이 효과적일 수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연 스포츠화된 무술을 무술로 볼 것인가? 스포츠로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엄밀하게 따지면 무술이기 보다는 ‘스포츠’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술들은 경기 속에 모두 무술적 요인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강조하면서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이나 아마츄어리즘(amateurism)을 무도정신(武道精神)과 똑같이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무술이 세계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무술이 풀어가야 할 문제는 많다. 이러한 문제의 해법은 세계무술연맹이 다원주의(pluralism)적 접근아래 그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이것은 무술이 문화로서 간주되고 다원론적인 세계 역사와 문화에서 차지한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술의 목적과 수련의 가치관에 있어서 오늘날도 격렬하게 지속되고 있는 실전성과 정신성사이의 논쟁은 무술이 지닌 다원적인 가치와 목적을 포용한 문화에 있다. 투기, 호신술, 전쟁술, 건강?의료적 수단, 교육수단, 종교적 행위(武舞), 무용(武舞, 劍舞), 공연, 놀이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다원적인 문화적 기능을 처음부터 그 발전 과정 속에서 포용하여 그 가치와 의미를 복합적으로 발달시킬 필요가 있다.

다원적인 가치와 목적 속에 세계화과정에서 문화적 차이에 따른 대중문화로서의 새로운 무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무술의 현상은 다양한 가치와 의미들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이론과 사상들이 무술의 실천과 이론 속에 하나 둘씩 찾아 가야 할 때이다. 그 속에는 무술문화가 인식하는 인간과 인간의 몸의 세계, 그리고 인간의 신체가 움직이는 원리와 그것에 놓인 의미와 가치관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세계무술연맹은 이것을 체계적으로 풀어내는 이론적 작업이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술은 현재 완성되어 있거나 제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관점에서 무술이 지니고 있는 소재로서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재구성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술의 생명력은 무술이 지닌 다원적인 가치를 규명하고 이를 지속화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아래 재생산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무술들에 대해 단순한 타 무술에 대한 차용과 수용을 떠나 독자적인 발전과 변용의 과정을 중시하게 할 필요가 있다.

결국 무술의 세계화에 있어 세계무술연맹은 공존과 다양성을 수용하는 무술체계로의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들이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세계체제’라는 해석으로 연맹의 사업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각국의 무술은 제각기 다른 문화유전자를 기반으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사명을 안고 있으며, 세계무술연맹은 각국의 무술이 공존과 다양성을 보장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