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의 땅, 용인

2012. 8. 15. 14:39Report/Martial Arts

728x90
반응형

무도의 요람, 용인대학교

지명 속에는 지명이 생겨난 당시의 명명 대상이 된 장소의 지리적 환경 특성과 함께 명명 집단의 자연관, 그리고 언어 형태가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지명은 자연환경과 문화가 접합된 복합체로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지명의 기원에 대하여 '지명유래', '지명어원', '지명전설', '지명설화' 등의 여러 용어가 사용된다.

국내 여러 도시나 마을들이 제각기 독특한 문화를 상품화하려는 노력은 90년대 지방자치단체가 시작되면서부터다. 필자는 용인대학교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며 15년정도 용인생활을 했다. 무술을 전공한 탓에 용인지리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또 이곳의 무인들이 누가 있는지에 대해 궁금했다. 무엇보다 용인이라는 지역이 '장군의 땅'이라는 신선한 설화를 접했을 때에는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 용인(龍仁)의 유래중 ‘용(龍)’이라는 글자를 사용하게 된데에는 좌측에 ‘투구봉’이 있고 우측에 ‘칼봉’이 있는 풍수지리학적 의미가 있다. 지금은 상당히 넓어진 지역까지 용인시로 자리하고 있지만, 용인의 유래는 이 봉우리의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봉우리사이에는 '장군대지형의 땅'으로 믿고 있는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기 좋은 넓은 지형이 있다. 남씨 집안에서 이곳에 묘를 쓴 뒤로 한 집에서 장수가 태어났고 이 아기는 낳은지 사흘만에 날개가 돋아났으며, 장수여서 이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 시기가 당파싸움이 많았던 때라 한 집안에서 훌륭한 자재가 태어나면 집안 전체를 몰살하는 일이 있어 남씨집안(문중)에서는 회의를 열고 아기장수가 성장하기 전에 처단하여야 한다는 것을 결정했다. 아기장수가 힘이 센 탓에 큰 바위로 눌러 죽였는데, 아기를 양지쪽에 묻어 주려고 땅을 다시 파니 여기에서 투구와 칼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특이한 것은 이 아기가 태어날 때 장군대지형에서 마주하고 있는 액교산의 한 바위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울었다고 전해진다. 이 용마는 아기장수가 죽자 태울 주인이 없다는 것을 슬퍼해 성산(석성산)을 향해 달려갔다고 한다. 이곳이 현재 고림리의 액교산에서 용마가 났다는 용마바위가 전해지고 있으며, 용마가 몸부림치며 울부짖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처럼 용인에는 고장군 묘소전설, 아기장수와 용마바위, 유방리의 남씨네 아기장수 등의 설화가 전해지는데 내용은 비슷하다. 이러한 설화는 조선시대의 남이장군까지 이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칼봉과 투구봉의 설화는 용인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형명은 평창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다. 서울의 경우 수락산의 투구봉과 도봉산의 칼봉 능선이 있는데 이 두 봉우리는 장수의 탄생을 말하는 풍수지리의 논리가 깔려 있다.

용인에 이 설화가 전해진 삼국시대에 구성현(駒城縣)이 고려초에 접어들어 용구현(龍駒縣)으로 지명이 변경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용(龍)'은 '무(武)'를 상징하는 것으로 태종 13년(1413) 처인현(處仁縣)과 합쳐지면서 용인현이 되었다. 처인현은 용인 남부지역이었으며 현재는 용인동부지역으로 고려시대부터 수주(水州)에 속한 처인부곡(處仁部曲)이 존재했다. ‘처인’이라는 말은 ‘처인성’에서 차용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처인성 전투는 고려의 기상을 보여준 대단한 전투였다. 고려군은 정규군 5천명에 성안의 부녀자들이 돌을 날라다가 행주산성과 같은 전투를 벌인 끝에 처인성을 지켜내어 원의 대군을 막아냈다. 이런 사실은 고려시대 대몽 항쟁의 중심지인 처인성이 있었고, 1232년(고종19년) 처인성에서 치열한 전투속에서 김윤후 승군장(현 MBC 드라마 무신에서 김준의 무술 스승으로 나오는 금강스님)의 역할로 당대 최강의 몽골군이었던 정예 10만의 기마군단과 몽고 황제의 넷째아들 살리타 총사령관을 상대해 민초들로 구성된 의병들이 승리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용인의 '인'을 상징하는 처인성 기록이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설화와 역사는 지금의 용인을 만들어냈다. 무인의 땅이었던 수많은 사실들은 지금 용인을 살아 숨 쉬게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인 현재 용인은 스포츠 중에서 '무도(武道)'가 강세다. 무도명문인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학교)가 1985년 용인으로 이전했고, 수많은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유도, 태권도를 비롯해 검도 등이 강세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최고의 무도명문대학이 이곳에 자리한 것이 이런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