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Life/風流2010.11.0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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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허인욱의  저서 <옛그림속 양반의 한평생, 돌배개>이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한 11월 청소년 권장도서로 뽑혔다.

조선 사회의 주축이었던 양반은 어떻게 살았을까? 사극 드라마에서 보는 양반은 한량이거나 정쟁에 몰두하는 정치적 실세이거나 그 둘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거나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하게 살다 죽은 양반의 삶의 모습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학도인 저자 허인욱은 『옛 그림 속 양반의 한평생』을 통해 지배층이고 조선 사회를 유지했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평범한 양반의 일생을 진귀한 옛그림과 흥미로운 글로 흥미롭게 재구성했다.

무엇보다 조선의 양반에 대해 일반인들이 모르고 있는 것들을 소개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옛 풍속화를 통해 양반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모습을 순서대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 사학과 석사를 거쳐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역사학도로서 전통무예, 애니메이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저자는 이들 주제에 관해 다채롭고 흥미로운 역사서를 집필해 왔다.

저자는 평소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새롭게 풀어내고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옛 그림에서 만난 우리무예풍속사』『관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 형성사』『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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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06.15 09:00

최근 영상콘텐츠 소재로 무예를 선택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다양한 국가나 기업들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이 사업들은 앞으로 이를 시청한 우리 국민들이 무예에 대한 새로운 눈이 떠지길 기대해 본다.

하지만 몇가지 문제점이 많이 발견된다. 일부 제작업체들이 자문을 의뢰해 온 작품들을 보면 전문성이 결여된 허무맹랑한 무예사를 근거로 기획부터 잘못된 사례들이 발견된다.

일부 단체들이 주장하는 짜맞기 무예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가 보는 관점이 아닌 중국이나 일본이 보는 한국무예사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는 국내 무예사연구가 미흡한데도 있지만, 제작사들이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거나, 제작팀들의 연구노력이 부족한데 있다.

이러한 무예사의 오류는 지금의 일만은 아니다. 195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접했던 신문에서도 말도 안되는 왜곡된 역사를 기사화한적이 많다. 대부분 무예가 삼국시대의 신라를 운운하는 등 외부유입무술일지라도 우리것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기사들이 우리 국민들에게는 무예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장애요인이었다. 

이러한 잘못은 정책을 수반하는 관계자들이나 학교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반영되고 잇어 더욱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무예관련학과가 개설된 대학에서 무예와 관련된 인문학관련 교과목이 많이 개설되어 있음에도 그 강의의 내용이 의심스러울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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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고려대 허인욱, 한국학중앙연구원 곽낙현, 서울대 박금수선생


그러나 다행스러운것은 최근 일부 젊은 학자들이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한국무예사를 연구하고 있는 주변의 일부 연구자들의 연구물들은 우리 무예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들을 발견하고 해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연구자들은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 박사과정을 전공하고 있는 허인욱선생과 한국중앙연구원에서 한국사박사과정을 전공하고 있는 곽낙현선생, 그리고 서울대에서 체육사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박금수 선생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무예를 전공하거나 지속적으로 수련하고 있는 연구자들이다.

이들은 40을 바라보는 나이로 열정적으로 한국무예사에 대한 연구에 몰입되어 있다. 이들보다 몇년 앞선 필자로서는 이들의 훌륭한 논문들을 볼때면 그래도 한국무예사에 대한 연구영역이 살아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허인욱선생의 경우는 한국무예사에서 인물연구로 강한 입지를 만들어 가고 있고, 곽낙현선생은 조선시대의 도검기, 그리고 박금수 선생은 무예의 진법과 활용 등에 국내에서 서서히 부각되는 소장파 무예연구자들이라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현재 학위를 받고 활동하고 있는 일부 학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이미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활동이기에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어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이러한 젊은 연구자들이 있기에 앞으로 무예의 활발한 연구를 기대할 수 있다.

이들의 연구활동은 곧 빛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 무도관련학회들도 있지만, 이번달 유네스코 자문기구로 승인될 세계무술연맹은 산하에 세계무술아카데미와 세계무술포럼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다행스러운것은 이러한 젊은 학자들이 세계 무술학자들과 어깨를 겨루며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는데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어느 분야든 젊은 연구자들을 육성하는 것이 그 분야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된다. 무예역시 이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나오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한국무예의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조성은 정부정책도 있겠지만, 우리 무예계가 포용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앞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열띤 한국무예의 논의와 토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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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06.13 15:12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담헌서(湛軒書) 내집(內集) 4권 보유(補遺)편에는 유(柳) 아무개가 보령(保寧)에서 만난 기이한 소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야기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유 아무개란 사람은 천성이 순박하고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일찍이 어떤 일 때문에 충남 보령 땅에 가다가 날이 저물어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길을 찾아 얼마 동안 수십 리쯤 들어가게 되었는데, 푸른 절벽이 깎아지른 듯하고 골짜기는 깊숙하였으며, 산길은 풀이 우거져서 갈 곳을 모르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말에 내려서 방황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언덕 위에서 사람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는 덩굴을 잡고 올라갔다. 올라가자 두어 칸의 초가집이 있는데 소나무와 대가 우거져 있고, 그 중간에 한 소년이 누런 빛깔의 가는 대를 결어 만든 초립(草笠)에다 바지와 저고리 위에 입는 푸른색의 포(袍)차림으로 서 있는데 얼굴모습이 준수하였다.

그는 문에 기대어 서서 무언가 생각하듯 허공을 응시하다가 손님이 오는 것을 보고 바삐 마루에 내려와 영접하는데 범절이 매우 공손하였다. 유 아무개는 마음으로 이상하게 여겨 말을 거니 그 말솜씨가 유창할 뿐 아니라, 풍채와 태도도 보통보다 뛰어났다. 조금 후에 저녁 식사를 내왔는데 물과 뭍의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였다. 유 아무개는 “산중에서 이런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얻었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소년은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유 아무개는 그런 모습에 더욱 놀래면서도 이상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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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소년 이야기가 수록된 저서




밤이 깊어졌는데,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차츰 가깝게 들렸다. 소년은 “손님은 조금 기다려 주시오. 내가 어떤 사람과 약속이 있으니, 잠깐 만나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소매를 떨치고 나는 듯이 가버렸다. 유 아무개가 창틈으로 엿보았다. 소년을 부르던 사람 또한 소년이었다. 두 사람은 옷과 갓이 같아서 구별이 어려웠다. 서로 손을 끌고 가는데 높은 언덕과 험한 벌판을 평지처럼 달려가는 것이었다.

유 아무개는 어떻게 놀랬는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갑자기 벽장문을 보니 자물쇠가 잠겨져 있지 않았다. 벽장문을 열어 보니 뒤 시렁에 묵은 서책들이 있는데 모두 병법(兵法)에 대한 것이었다. 또 기러기 털이 두어 상자 있었고 벽 위에는 흑장의(黑長衣)가 걸려있을 뿐, 다른 것은 없었다. 유 아무개는 소년을 더욱 의심하고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얼마 후에 소년이 돌아왔다. 그런데 소년은 얼굴빛이 변하면서, “내가 처음에 그대를 좋은 사람으로 여겼는데, 어찌해서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남의 서책을 훔쳐보았습니까? 그대가 나를 속일 셈입니까?”라고 말을 하였다. 유 아무개는 속일 수 없음을 알고 곧 사과하였다. 그 다음에 “그대는 반드시 세상을 피하는 이인(異人)인 것 같소. 병서는 그대가 읽는다 할지라도 검은 옷과 기러기 털은 장차 무엇에 쓰려는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소년은 “나는 이미 그대가 말이 헤픈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조금 시범을 보일 터이니 구경하십시오”라고 대답을 하였다. 소년은 기러기 털을 꺼내서 방안에 흐트러뜨린 다음, 검은 옷을 입고 몇 바퀴를 질주하며 돌았다. 하지만 기러기털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년은 달리기를 이렇게 익히는 듯하였다.

유 아무개는 크게 기이하게 여기고 이어서 그가 다른 소년과 함께 갔던 것에 대해 물어 보았다. 소년은 “아까 왔던 소년의 원수가 경상도 고성(固城) 지방에 있는데 그 사람됨이 사나울 뿐더러 또 있는 곳을 몰랐다가 오늘밤에야 마침 집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까닭에 함께 가서 죽였다”고 말을 하였다. 유 아무개는 속으로 ‘보령에서 고성까지는 거의 1,000리가 되는데 잠깐 동안에 갔다 오다니 나는 새도 그만큼 빠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탄복을 하였다.

유 아무개는 소년과 더불어 다음날 아침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작별을 했는데, 소년은 “그대가 만약 나에 관한 말을 세상에 퍼뜨린다면 나는 반드시 그대의 일족을 다 없애버릴 것이니, 그대는 말을 조심하시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유 아무개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길가에 풀을 맺어 그곳을 찾아갈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두었다. 그 후 한 달쯤 뒤에 다시 찾아갔으나 끝내 소년이 있던 곳을 찾지 못했다.

유 아무개는 소년에 관한 일을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평생토록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죽음에 임해서야 그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죽는데, 이인에 관한 일이 세상에 끝내 전해지지 않는다면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유 아무개가 죽고 그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졌는데, 이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이 글에 보이는 보령에 숨어사는 소년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홍대용도 담헌서에서 보령에 숨어사는 소년은 깊은 산 속에 숨어사는 이인으로 때를 만나지 못한 인물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홍대용의 서술태도로 보아서, 그가 꾸며낸 이야기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마 홍대용도 주위에 흘러 다니는 이야기를 채록해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보령 소년이 기러기털을 이용한 달리기 연습이 실제 무인들의 수련 방법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옛 무인들의 수련 방법을 살필 수 있는 조그만 실마리일 지도 모르겠다. - 글. 허인욱(무카스무술전문위원) -

원문보기 http://www.mookas.com/media_view.asp?news_no=1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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