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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04 최초의 가라테유입은 1937년 야마구치
  2. 2010.02.01 최배달도 인정한 장씨의 차력
Report/Martial Arts2010.05.0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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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공식적으로 일본의 가라테가 선보인 사료다. 동아일보 1937년 8월 13일자 1면에는 종로에 있던 YMCA(중앙기독청년회) 유도부 도장에서 13일 오후 8시반 일본 동경에 소재한 임명관대학(리츠메이칸대학)의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1909-1989)을 초청해 가라테의 대의급(大意及) 실제시범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당시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가 시범보인 가라테 유형은 고주류(剛柔流) 가라테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주류는 1860 년대 후반  히가온나 칸조(東恩納寛量)가 오키나와에서 중국 복건성으로 가 남파 소림권에서 14년동안 중국무술을 수행한 후 그것을 오키나와로 전했다고 한다.  히가온나는 오키나와로 전했다 무술은 후에 "那覇手"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수제자였던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에게 전승하고 다시 과학적이고 보편적인 합리성을 추가하여 체계화 한 것이라고 한다.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은 1930년(소화5년) 중국 복건성의 소림권백학문의 전서인 <무비지(武備志)>에 있는 권법 8구인 '法剛柔呑吐'를 인용해 자신의 무술을 '고주류(剛柔流)'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고주류의 특징은 느리면서 호흡을 강조하는 중국 남파권법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유파의 가라테는 최배달(최영의)도 수련했다는 기록도 있다.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 수련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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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
Report/Good Writing2010.02.01 16:54

최배달로 알려진 최영의의 저서에 차력고수가 등장한다. 무카스미디어 전문위원인 허인욱선생이 기고한 글에는 차력의 또다른 세계를 말해 주고 있다. 일본원전으로 발간된 '백만인의 가라테'에 나오는 장씨의 이야기는 당시 일본을 자극할만하다.

최영의(1923~1994)의 '백만인의 가라테'에는 차력의 고수인 ‘장’씨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장은 성으로 보이는데, 이름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최영의는 차력은 글자 그대로 힘을 빌리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자기의 힘에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힘을 얻는 것을 말하며, 한국에서 초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비술을 종합한 것이라고 했다.

차력가 장씨와 관련된 이야기는 한국의 어떤 시골,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분지의 마을에서 일어난 것이다. 당시 신문화의 물결이 이 산 깊은 분지로 밀어닥쳐서 사람들 사이에 머리를 단발하는 일이 유행하기 시작했지만, 이 마을은 지금도 옛날처럼 상투를 틀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매년 이 분지 마을은 농작물이 풍부하게 영글었고 가을이 되면 마을 사람이 타작을 위해 모두 나서는 바쁜 시기가 된다. 그럴 때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슬며시 한 중년의 상투를 튼 사나이가 나타나는데 장 씨라는 남자였다. 막벌이로 나섰다고 보면 된다. 장 씨는 일꾼들 틈에 섞여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는 말도 없이 어느 새 마을에서 사라졌다. 마을 사람은 그가 제때에 나타나지 않으면 “올해는 녀석이 오지 않는 것인가!” 라는 이야기를 했다.


조선권법 그림
배운 것도 없고 욕심도 없고 즐거움이 있는지 없는지 특별한 문구의 말도 없이 묵묵히 일하고는 때때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저 사람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제 아무리 본인이 말이 없이 묵묵히 있어도 서로 상대하는 중에는 무엇이건 알게 되는 것이어서 그가 차력을 수련한 남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차력은 아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며 어른들에게도 신비롭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온화하고 점잖았다. 마을의 일꾼들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끔 장 씨에게 차력을 보여 달라고 조르기도 했지만, 장 씨는 웃으면서 그저 듣기만하고 말을 흘렸다. 차력의 차자 소리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가을 들어 수확이 끝나자, 마을에선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서 축제가 개최됐다. 이해의 풍작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이 축제엔 인근 사방에서 힘이 센 장사들이 모여들어서 마을의 마당에서 씨름을 하고 힘을 겨뤘다. 그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성대한 씨름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장 씨는 아무리 권해도 이 씨름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이것만은 몇 번 권해도 응하지 않았다. 보기로는 보통 일꾼과 다름이 없는 골격, 근육이어서 힘 자랑하는 젊은이와 씨름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장 씨의 태도가 너무 무기력해 보였다. 마을에선 ‘차력을 수련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거짓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는 이야기까지 나돌게 되었다.

그런데 그해의 씨름 경기에서 끝까지 싸워서 승리해 장사가 된 남자와 장씨가 사소한 일로 말썽을 일으키게 되었다. 100명이나 되는 상대를 이긴 골격이 억센 거구의 장사가 상품인 소를 마당에 매어놓고 여러 사람의 축하를 받으면서 막걸리로 술잔치를 벌리고 떠들어댔다. 과연 씨름 장사답게 많은 씨름꾼에 둘러싸인 중에서 한결 돋보였고 술기운을 잔뜩 띤 수염이 가득한 얼굴은 장사다웠다. 한참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무렵 여러 사이에 섞여서 조용히 앉아 있는 장씨를 본 장사는 취기에 털 많은 팔뚝을 걷어올렸다. 장사는 “이봐, 장 씨, 차력가는 술을 통째로 단숨에 마신다고 하는데 여기 나와서 한번 마셔봐. 자 여기로 오라니까”라며 명령조로 말을 했다. 그런데 장 씨는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이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때가 막 잔치가 끝나려고 할 때였는데, 장 씨가 바로 그때, ‘아 아’ 하며 크게 하품을 하였다. 이것을 본 장사는 “이놈 봐라” 하면서 노려보았다.

장 씨는 황망히 손을 입에서 떼고 목을 움츠리고 그 자리를 모면하려고 했지만 장사는 성큼 일어섰다. “이놈 버릇없는 놈. 앞으로 나와”하면서 무섭게 소리쳤다. 이제까지 떠들썩했던 술자리는 일순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사태의 진전을 지켜보았다. 장은 붙잡히면 큰일이라고 사람들 뒤로 다람쥐처럼 숨어서 곤란함을 피하려고 했다.



백만인의 가라테에 실려있는 차력사 장의 이야기

“더는 참을 수 없다. 한마디 사과도 않고 도망치는 터무니없는 놈이다.”라고 하고는 씨름 장사는 달려나가서 장 씨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술자리 한가운데로 끌어냈다. 그러면서 우람한 주먹으로 장의 콧등을 마음껏 치면서 동시에 박치기를 먹였다. 쿵하는 예리한 소리가 나면서 장 씨는 숨을 죽인 사람들 앞에서 뒤로 크게 쓰러졌다. 그런데 곧 “푸푸푸…”하는 낮은 웃음소리가 함께 의식을 잃고 기절했으리라고 생각한 장 씨가 성큼 일어나더니, 흐르는 코피를 닦았다. 그 장 씨의 한쪽 손엔 비틀어 잘린 상투가 피가 흥건히 묻은 채 손에 들려 있었다. 어느 사이에 비틀어 잘렸는지 누구의 눈에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일어난 것이었다.

이 때 ‘헉’하는 소리가 났다. 머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장사가 고통을 견디다 못해 비명을 지른 것이다. 금시 몸이 큰 남자의 얼굴은 머리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들고 말았다. 큰일이었다. 술자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쩔 줄 몰랐다. 그래도 노인들의 지시로 술을 머리에 붓고 세척한 다음 지혈을 위해 된장을 바르고 응급조치를 취하는 한편, 의원을 불러오게 했다. 그러는 동안에 군중 사이에서는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것은 소문대로 차력술의 위력을 눈앞에서 똑똑히 보게 된 데 대한 놀라움의 탄성과 찬탄의 소리였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 장 씨는 찬탄의 대상이 된 사람이 자신아니라느 듯이 여러 사람과 함께 쓰러진 사나이의 머리를 치료하는 일을 거들어주고 있었다. 인연이란 이상한 것이어서 거구의 장사와 그 후 이 둘은 형제처럼 사이가 좋아져, 친한 친구가 되었다.

또 어느 때 이 지방 일대에 폭풍우를 만나게 되었는데, 격렬하게 내린 비 때문에 홍수가 나서, 탁류가 마을을 삼켰다. 어느 마을 산의 급경사면의 가운데에, 어른 넷이 껴안아도 안을 수 없을 정도의 바위가 묻혀 있었는데 탁류로 바위 주위의 흙이 씻겨나가자 비탈을 미끄러져 굴러 내리기 시작했다. 마침 그 때 여기를 돌보려고 온 장 씨가 이것을 보자 진흙탕 경사면을 마치 나르듯이 달려가서 바위를 따라가 손으로 받아 막았다. 바위가 미끄러지는 것을 보자 사람들은 이 바위아래에 있는 농가와 그 안의 사람을 다치게 될 것으로 절망했지만, 장 씨의 초인적인 활약으로 집도 부서지지 않았고 사람도 구했다. 장씨는 이 때 바위를 손으로 막는 바람에 몸의 절반이 진흙 속에 빠져들었다. 뒤에 장 씨가 받았던 바위를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데 10인 이상의 도움이 필요했다. 후에 이 바위를 옮길 때 장정 네다섯이 달려들어서 겨우 움직였다고 한다. 어째든 그가 바위를 쫓아갔을 때의 모습은 그 빠르기가 천마와 같았으며 바위를 막아섰을 때의 그 힘은 범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의 과장이 아닌 마음으로부터의 소감이었다.

가을이 되어 추수할 때가 되었다. 마을이 타작으로 바빠지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장은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났으며 타작이 끝나자 역시 홀연히 사라졌다. 어느 때 차력에 대해서 끈덕지게 질문하는 마을 사람에게 장 씨는 한마디만 나직하게 말했다. “힘이란 쓸수록 강해지는 것입니다. 수련만 제대로 한다면 반드시 신의 힘이 체내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도중에 차력을 그만둔 의지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시 최영의는 장 아무개 이야기를 50년 전의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책이 1969년(소화 44)에 발간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차력가 장 씨는 3․1운동이 벌어졌던 1919년경을 전후한 시기에 살았던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더 이상의 이야기는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을 준다.

최영의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집이 부유해서 일하는 사람을 20여 명 정도 두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일꾼 중의 한 사람이 덕수였는데, 그로부터 어떤 무술을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배운 무술이 어떤 종류였는지 명확하지 않다. 중국 ‘남권’이라고도 하고 ‘택견’이라고도 하며, ‘차비’ 혹은 ‘잽이’라고도 한다. '백만인의 가라테'의 저자 소개를 보면, 그는 9세 경에 권법을 배워 중학 2년에 초단이 되었다고 하고 있어 권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무예를 소개하는 내용에는 조선의 무예를 서술하면서 그 특징으로 박치기와 머리카락(댕기머리?) 치기, 어깨치기 등의 특이한 기법이 있었다고 하며 발을 사용하는 소년과 선비의 대결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조선권법’이라고 기재하고 있어, 권법이 특정 무예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여하튼, 이 때 무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덕수로부터 들었거나, 당시 동네에 널리 알려져 있던 차력사 이야기를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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