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Martial Arts2010.09.05 20:54

전검련, 홈페이지통해 견해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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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검련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검도에 대한 견해

‘켄도(이하 검도)’로 불리는 일본검도는 일본인들의 정신함양과 밀접한 무도중 하나다. 이러한 검도에 대해 최근 일부 한국네티즌들이 전일본검도연맹(이하 전검련)을 자극한 모양이다. 최근 전검련은 인터넷상에서 검도의 기원이 한국이라는 주장에 대해 견해를 밝힌 글을 홈페이지에 게재해 눈길을 끈다.

이 글은 최근 인터넷상에서 검도의 종주국론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시작되면서 '검도에 관한 전검련의 견해'라는 제목으로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전검련은 “검도는 일본의 사무라이가 검(일본도)을 사용하여 전투를 통해 칼의 이법(理法)을 배우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검도는 검의 이법 뒤에는 사무라이정신을 배우는 것이며, 검의 조정법을 가혹한 수련을 통해 배우는 것으로 '인간형성의 길'로 정의하고 있다.

특히 검의 역사가 각 나라에서 발전해 왔지만 '劍道'라는 용어는 일본의 역사와 함께 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근거에 대해 전국시대부터 에도시대초기까지 수많은 유파의 검술이 생겨났으며, 에도중기에 장비가 개발되었고 격검검술이라는 명칭에서 다이쇼시대에 접어들어 '검도'라는 명칭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역사에서 사무라이와 일본도와 더불어 발전하고 수련하는 것이 검도라고 분명한 기원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전검련은 검도라는 죽도를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이아이도(居合道)와 나기나다(杖道)도 포함시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검도의 기원설이 분명한데도 일본검도에 대해 아직도 우리나라 검도인들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인 것처럼 강조하고 있다.


미군정하, '요경기'라는 이름으로 명맥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FUJIFILM | FinePix F401 | Normal program | 2002:01:08 17:35:28

요경기시대의 모습(출처:www.houryou.org)
일본인들의 검도에 대한 애착이 어느정도인지는 2차대전이후 미군정하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일본은 ‘검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했다. 무사도정신을 대표하는 검도에 대해 미군정의 압박이 있었기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검도인들은 지속적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새롭게 고안된 '요경기(撓競技)'라는 것을 만들어 보급했다.

기존 검도정신함양을 부여하지 못하도록 한데에 대해 서양의 펜싱 형식을 흉내 내 만들어 낸 것이다. 당시 호면은 ‘마스크’라고 하였고, ‘면금’의 점이 철망으로 되어 있었다. 또, 면포단은 두꺼운 천포제로 펜싱의 면과 흡사하게 만들었다. 갑은 ‘프로텍터’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펜싱식으로 서구사회에서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사용된 금속 옷감을 사용해 옷감에 철 또는 대나무 등을 소재를 첨가했다. 또, 호완의 경우는 ‘글러브’라고 해 검도의 호완과 비슷하게 만들어 사용했다(사진).

그들은 요 경기를 진흥하여 경기 애호자의 체력의 향상과 각 요경기연맹 서로의 친화와 스포츠 정신의 함양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이 경기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요 경기는 일본의 독자적인 고귀한 경험을 소재로, 새로운 의의를 담고 근대화 하고, 과학화하여, 평화 민주적인 순수 경기로서 새롭게 고안된 것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일본정신함양이라는 검도의 근본 이념을 유지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한국종주국주장 정당한가?

일본의 검도가 국내에 유입된 것은 개화기 고종 때인 1896년 경무청에서 치안의 필요성에 의해 경찰 교육의 한 과목으로 격검이 채택되면서 시작됐다. 우리식으로 시작됐다기 보다는 <고종실록>에 나온 것처럼 일본에서 격검장비를 319원에 들여와 시작한 것이다(巡檢擊劍諸具購入費三百十九元). 그후 1904년 육군연성학교에 격검을 교과목으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격검은 일제치하 일본인들에 의해 학교와 군, 경찰, 교도관들이 수련한 무도였다.

검도뿐만이 아니라 무술에 대한 종주국논쟁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과거에 연연하거나 지나친 역사관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지금 행해지는 모습이 어느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인가를 두고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 민족도 훌륭한 도검문화가 있었다. 어쩌면 일본보다 더 훌륭한 문화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까지 명맥이 유지된 검법과 검술은 거의 없다. 단지 <무비지>나 <무예도보통지>의 도검기(刀劍技)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행해지고 있거나, 외래의 검술을 재개편해 만들어 진 것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검도에 대한 한국종주국 주장은 한국검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사라져 가고 대신 일본검문화에 대한 열등감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일본검도를 '검도'가 아닌 '켄도'로 불러 주는 것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우리가 태권도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일본인들은 검도에 대한 애착이 많다. 일본검도에 대한 한국 종주국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특히 국제 무도계에서 과연 정당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종주국 논쟁보다는 우리 전통 검법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것에 힘을 모으는 것이 일본검도를 앞설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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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
Report/Martial Arts2010.07.20 22:54
중국의 모원의(茅元儀)가 쓴 <무비지(武備志)>는 중국 역대의 모든 병법서(兵法書)를 참고하여 명(明)나라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분량이 240권이나 되는 방대한 책이다.

여기에는 조선세법이라고 들어 있는데, 모원의가 말하기를 '근자에 호사자(好事者)가 조선에서 검법을 얻었는데 그 법이 구비되어 있다. 중국에서 잃은 것을 사예(四藝)에서 찾은 것이다'라고 했다. 중국의 역대 병법서 2천여 권을 뒤져보아도 제대로 갖추어진 검법이 없었는데 잃었던 중국의 검법을 찾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원의 스스로 검법의 이름을 <조선세법>이라 한 점에서 만약 조선의 검법이 활실하다면 우리 검술사에 좋은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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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
Reports2010.01.29 13:43

'조선세법(朝鮮勢法). 17세기 초 중국의 모원의(茅元儀), 1594∼1644)가 쓴 중국의 병법을 집대성한 <무비지(武備志)>에 나오는 검법이다. <무비지>란 중국 역대의 모든 병법서(兵法書)를 참고하여 명(明)나라 말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84권부터 92권까지가 교예편(敎藝篇)으로 여기에 유일하게 검법(劍法)이 있는데 이 검법의 이름이  ‘조선세법’이다.

모원의는 조선세법에 대해 '근자에 호사자(好事者)가 조선에서 검법을 얻었는데 그 법이 구비되어 있다. 중국에서 잃은 것을 사예(四藝)에서 찾은 것이다'라고 설명해 당시 검법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또 현대 일본검도인 'Kendo'의 정립과정에 조선세법도 영향력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무예도보통지>에 있는예도에도 영향력이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조선세법은 한, 중, 일의 검술에 영향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모원의(茅元儀)의《武備志》

조선세법의 세법구성은 거정세 점검세 좌익세 표두세 탄복세 과우세 요락세 어거세 전기세 간수세 은망세 찬격세 요격세 전시세 우익세 게격세 좌협세 과좌세 흔격세 역린자 염시세 우협세 봉두세 횡충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조선세법의 다양한 기술은 일본의 스포츠화된 검도인 'Kendo'의 유형과는 많은 부분 다르다. 직선적이 아닌전후좌우 변화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각 무예단체들은 전통 검법이라고 하여 제각기 해석하고 복원한 상태에서 보급하고 있다. 

조선세법의 국내 연구는 1999년에 한국체육학회지에 이종림에 의해 24세 중 8세만 해석해 발표되었고, 2000년에에는 수년간 조선세법에 대한 연구를 해 온 김재일에 의해 <조선세법>과 비디오 영상자료가 발표되었다. 그 후 일부 단체들의 개별 연구들이 있었다. 김재일의 경우는 조선세법 전반에 대해 사진과
함께 수록하고, 검과 도의 역사적 추적 등을 통해 검과 도의 구분 및 변천과정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조선세법에 대한 완전한 해부를 했을 정도로 이 세법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연구자는 일본검도를 수련한 대한검도회 소속으로 이종림의 경우는 일본식 해석이
강하다는 평가와 김재일의 경우에는 조선족인 허일봉과의 공동복원을 통한 것으로 중국식 해석에 가깝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사실 검의 원리가 중국식, 일본식은 뚜렷해도 한국식은 애매모호한 상태다. 

이러한 연구와 복원의 노력들은 아직은 진행과정이다. 미완성의 복원단계라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각 단체별로 해석의 차이가 있고, 특히 대한검도회내에서도 조선세법에 대해 두 연구자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한검도회에서는 이 세법에 대해 별도의 승단제도를 만들어 단증을 부여하고 있다. 일명 이종림식 방식을 채택하여 검도이외의 조선세법단증을 부여하고 있다.

대한검도회뿐이 아니다. 기타 무예단체들이 조선세법을 표방하며 제각기 다른 해석을 통해 전통무예라고 하고 있고 전통검법이라고 보급하고 있다. 본국검과 더불어 검도계에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해석과 복원의 차이때문에 수련생들은 혼란스러운 상태다.

각 단체별 해석은 검술의 특성과 운용법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검법의 해석과 재현이 어떤 방식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 논리가 미약하다.

조선세법은  <무비지> 게재 이전과 이후에도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 이르기까지 공유하고 있던 검법일 수 있다. 이런 조선세법검법의 복원 및 재현작업은 국내무예단체 관계자뿐만 아니라 각국의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국내 검도단체들부터라도 우선 복원 및 재현을 위한 공동연구를 통해 지속적인 검법 교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선행연구와 복원자를 비롯해 각 검도단체들의 협조로 풀어 간다면 복원된 조선세법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조선세법은 앞으로 검도의 한국화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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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ACI soma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