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무도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11.09 강낙원, 철혈남아를 양성하자
  2. 2011.10.03 일제시대에도 이도류검도가 있었다. (1)
  3. 2010.12.07 한국인 최초의 유도저서
Report/Martial Arts2011.11.09 17:43
1924년 2월 2일 휘문고등보통학교 뒤에 있었던 조선무도관에서 오후 5시반에 모한연습이 있었다. 검도와 유도를 수련하는 자리. 여기서 조선무도관이었던 강낙원 사범이 '철혈남아를 양성하자'는 강연이 있었다.


 

강낙원사범. 1930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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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1.10.03 16:22

1932년 10월 6일. 동아일보기사다. 조선무도관에서 관원을 모집하는 내용을 다룬 기사인데, 흥미로운 것은 펜싱이 최초로 유입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이도류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고의 내용으로 보면, 일본의 검도, 이도류, 펜싱이 같은 활동을 했음을 말해 준다. 같은 시간대에 수련하는 시간을 안내하고 있다. 오후반의 경우 검도, 이도류, 서양검도(페싱)이 4시반에서 6시, 권투가 6시부터 7시반, 유도와 씨름이 8시에서 10시까지로 되어 있다.

이도류(二刀流)라는 말을 들어 보통 미야모토 무사시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이도류의 창시자로 미야모토 무사시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廣辭苑》에서는 "이도류와 이천일류는 동일하며, 이천일류는 미야모토무사시가 창시한 검도의 일파(一派)"(新村出編, 1959)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圖說日本武道辭典》에서는 "이도류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천일류를 학습하는 것으로 에도시대 중순이 되어 주창한 유파의 의식"(笹間良彦, 1982)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도류가 미야모토 무사시가 창시한 이천일류로부터 생겨난 일파의 무술이기는 하나, 현대검도에서 이도류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유파의 의식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현대검도에서 사용되는 이도류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창시자라고 보기는 힘들며, 양손에 칼을 가져 싸우는 검법의 총칭으로서 이도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반적으로 "두개의 칼을 갖고 싸우는 것"(全日本劍道聯盟, 平成3年)을 이도류를 나타내며, 특수한 경우에 대해 구체적인 유파명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二刀流'와 '二刀'와 구별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二刀는 칼과 호신용 단도의 것을 가르키는 것이고, 이것을 이용하는 유파를 二刀流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二刀流라는 말은 그리 사용하지 않고, 二刀, 즉 "두 개의 칼(二本の刀)을 가져 싸우는 것"을 의미하여 二刀라고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兩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양도도 대도와 소도, 즉 칼과 호신용단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二刀라는 의미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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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Martial Arts2010.12.0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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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大正16年) 조선무도관편집으로 동양서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무도관유도대의(朝鮮武道館柔道大義)》는 국내에서 한글로 된 최초로 발간된 유도 서적이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유도 저서이기도 하다. 주 집필자는 유창호(柳昌浩)이다.  

이 책이 나오고, 1927년 유창호 사범은 한국인 사범으로는 최초로 인천에 인천무도관을 창설해 유도를 지도했다.

당시 유도사범들의 대부분은 1901년 이미 일본육사에 유학하던 국내인들이 강도관에 입문하고, 육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한국군관학교 교관을 역임하면서 군인을 대상으로 유도를 지도하다가, 1907년 옛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유도를 지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점에서 유창호 사범이 옛 한말 군관학교출신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군관학교시절 유도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1933년 조선유도연맹이 당시 조선무도관 강낙원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을때에도 유창호 사범은 당시 조직단계에서 부터 함께 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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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관극장은 1895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극장이다. 명칭은 1925년 개칭되었다.


재미있는 기록으로 유창수사범은 1927년 인천무도관을 애관극장옆 고주철씨 병원부근에 설립하고 정기적으로 산수정(현, 동구 송현동) 공회당에서 성악가를 초청해 음악공연을 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도관에서 가장형편이 어려운 초등생 80여명을 지도했는데,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공연을 개최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 보통학교 1, 2, 3학년과정을 개설한 부설 인무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유창호사범은 강낙원의 수제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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