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은 몸과 마음의 의지력을 다스린다

2010. 3. 26. 12:36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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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70년대 한국유도원에서 모한훈련중 낙법을 하는 장면이다. 추운겨울 그들은 유도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의 의지력을 배워간다. 그러나 이런 모한훈련은 요즘 보기 힘들다.


두서없는 글이다.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써 본다.

무술이 요즘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술중에도 중국의 태극권에 대해 지식층들 사이에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부 스포츠교육을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도 그 방법론을 무술의 수련방법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어제 이런 몇몇 선생님들이 자연스러운 미팅속에서 이야기들이 오갔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스포츠를 만들 수 있을까다. 스포츠행복론에 항상 고민하는 한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이런 이야기속에서 무술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것의 정답은 몸과 마음의 의지력을 다스리는 무술의 특성을 잘 접목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마치 신비스러움으로 포장되어 있기도 하고, 뭔가 극치를 꿈꾸는 것 같이 과장된 것이 무술이기도 하다. 이런 무술은 동북아를 중심으로 유럽, 아프리카까지 보급되어 있다. 동양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동양문화속에서 발전해 온 지금 무술의 모습은 어디서 출발하는가.  여기서는 화약발명이후 무술이 급변하고 변용되었으며, 정립되어간 시기인 19세기를 기점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국이 무술을 정립해 가는 시기는 19세기부터다. 달마를 운운하지만 중국의 근대무술은 이 시기가 적절하다. 수많은 무술이 존재했고, 그 무술의 형태가 변용을 가져오고 정리되는 시기다. 이 때 민간무술의 발달은 무술을 양생의 수단으로 변화시켰고 서구문화의 유입에 대한 대항적 개념으로 무술이 그 역할을 했다.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무술인 '태극권'은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처럼 그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무술로 꼽는다. 그들은 "최강의 무술은 없고, 최강의 무술인이 되기위한 사람은 많다"고 주장한다. 이 말처럼 그들은 무술 하나하나가 오랜 수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립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무도역시 19세기부터 시작된다. 서구적인 스포츠의 영향력도 있고, 서양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노력이 사무라이세계를 다시 부활시킨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유도의 창시자 가노지고로다. 그는 외국어학교와 동경제국대학 출신으로 공리주의와 실리주의적 사고로 일본의 고대유술을 현대유도(강도관 유도)로 새로이 정립한 사람이다. 가노 지고로의 이러한 노력은 유럽에 일본무도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18세기는 일본과 중국의 무술을 탐구해 온 시대다. 정조때 완성된 <무예도보통지>는 일본과 중국의 기술들을 재정립해 놓은 것이다. 일부의 검법들은 우리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우리의 19세기 무술은 국궁과 씨름, 택견뿐이다. 그 명맥이 활터와 서민들에 의해 이어져 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중국처럼 민간에 의해 민간무술이 전승된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스포츠처럼 변용된 것도 아니다. 유희로서 놀이로서 무술이 여기저기 존재해 온 시대였다. 어찌보면 무술에 대해서도 틀에 박히거나 통제받는 몸짓을 거부하는 우리들의 사고때문에 중국이나 일본같이 정립되거나 경기와 같은 변용에 접근하지 않았을 수 도 있다. 쉽게 말하면 그렇게 안해도 씨름 장사들이 있었고 싸움꾼들이 많았다.

이러한 한, 중, 일 무술은 20세기를 맞이해 서구문화의 유입과정에서 어떻게 변용했느냐에 의해 지금의 스포츠로, 무도로서 그 특성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 특성들 중에 한, 중, 일의 공통점은 서양의 스포츠와 구분지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승부가 아닌 몸과 마음의 의지력을 다스리는 것이 무술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다. 이런 과정때문에 지속적으로 수련하고 연구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중국에서는 Kung Pu(功夫)로 표현하기도 한다.
 
무술인들이나 이를 연구하는 관계자들중에는 한, 중, 일을 구분짓거나 억지로 특성차이를 강조하려 한다. 그러나 한, 중, 일의 무술은 동북아의 문화교류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변용되고 지역의 특성에 의해 발전해 왔다. 이런 점에서 무술을 구지 한, 중, 일로 구분지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특히 조선시대에도 궁안에 동남아출신들의 무사들이 존재했다는 사료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더라도 우린 고립되거나 통제된 문화속에서 무술이 존재해 온 것일 수 있다.  

무술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특성이 있다. 최고의 무술은 없지만 최고의 무술인이 되기 위한 사람들의 지속적인 노력하기 때문이다. <무예도보통지>를 발간한 정조때 무사들이 지금의 도장관장님들 보다 무술을 잘했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의 의지력을 다스리는 것 역시 과거보다 현재 더욱 많은 방법론이 존재하고 있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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