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무예

2010. 1. 4. 03:30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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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돌아가는 카메라를 보며 작품에 혼을 불어 넣는 권근욱 감독(42). 그는 2002년 <마리이야기>의 촬영감독으로 알려져 있고, 2006년 영상인류학 다큐멘터리(Anthropologic Documentary)를 맡은 젊은 감독이다. 평소 잃어버린 소중한 유산을 영상에 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CF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런 권 감독이 생각하는 무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무예사상 주체적 관점에서 반성할 필요 있다


권근욱 감독
권 감독은 태권도 검은 띠라는 자부심이 유학시절 생겼다고 한다. 어려서 부터 몸이 왜소한 편이라 태권도를 시작했다. 많은 또래들이 도장을 찾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 유학시절 우리나라 무예임과 동시에 국위선양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고 한다.

유럽인들은 대부분 무기를 사용하거나 펜싱과 같은 상류층의 검술이 주류를 이룬다. 이로 인해 유럽인들은 동양에서 전해져 온 태권도나 유도에 대해 상당한 매력을 가진 무술로 보았다. 이로 인해 태권도 블랙벨트를 소지한 권 감독은 유학시절 많은 부분에서 유럽인들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중국의 무협영화에 대한 인기는 폭발적이다. 동양의 이소룡, 성룡, 이연걸로 이어지는 무술스타들은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반면 태권도는 영화부문에서 큰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권 감독은 “서양의 사고는 외형에 치중하고 결과에 의존하며 흥미를 위주로 한다. 동양문화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권 감독은 자신이 하고 있는 분야에서 무예만큼 정신, 사상, 철학, 문화, 예술, 의료적인 요인 등을 갖춘 소중한 소재는 없다고 단언한다. 무예는 한 민족이 생사고락과 흥망성쇠를 같이 표현하는 ‘몸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무예는 서양화되어 가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순수한 전통을 바탕으로 한 무예의 변화가 아닌 외래 무술의 퇴적물이 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우리 문화는 우리 민족사적인 체험에 의해 이루어진 '도덕적 공리(公理)'라 생각합니다. 그 공리들은 대다수가 오로지 서로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절대적인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무예정신이 우리의 주체적인 사상인지, 아니면 외래 무술의 퇴적물인지를 주체적인 관점에서 다시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적 종속위험, 기성세대가 나서야


황국신민체조, 좌측은 맨손체조-우측은 여학생들의 목검체조(1938-1945)
권 감독은 반성에 앞서 문화적 종속에 대해 무예인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무예인들이 들으면 기분이 나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우리 무예인들은 대부분이 일본무사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예뿐만이 아닙니다. 문화적 종속은 정치나 경제적인 종속보다 자주의지에 대한 구속력이 강합니다. 지금 학계나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 등 각 분야의 지도층들은 일본식 교육이나 제도에서 자라온 세대들입니다. 이런 세대들에게 교육을 받고 자란 다음 세대는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일본 시스템에 젖어 있습니다. 물론 무예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잠시 잊고 사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일제말기인 1938년부터 해방이전까지 일본은 여학생들에게까지 목검을 들고 황국신민체조(사진)를 하게 했다. 이 체조는 집단체조의 성격으로 목검을 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생들에게까지 천황에 대한 숭배와 전쟁준비를 하게 했다. 황국신민체조는 해방이후에도 집단체조나 도수체조 형태로 지속되었다. 심지어 국민체조에 이르기까지 이 모습을 연장시켰다. 이것은 체조뿐만 아니라 교련, 그리고 각종 무도교육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우리같이 민족주의가 강한 사회에서는 문화적 종속에 대한 위험도가 높다고 한다. 우리 무예계에서 나타나는 역사왜곡은 과거에 대한 감상과 복고적인 행수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민족과 인종에 대한 집착한다면 민족의식 또는 무예정신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기성세대들의 책임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일본무사도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젖어 있는지는 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열사들이 자신의 몸을 던지며 개혁과 민주주의를 외쳐 우리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지만, 극단적인 수단으로 몸을 던진 희생은 일본 무사도 정신과 다를 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 물들여진 기성세대이 일본의 무사도정신으로 맞장구를 쳐야 이해가 되었던 시대적인 아픔입니다. 이것은 일제시대의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답습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의 방법들이었습니다. 결국 젊은 세대들의 희생이 있기 전에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예계에서도 젊은 세대들이 나서서 민족무예나 전통무예에 대한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통무예사상를 올바로 찾아주는 것은 기성세대가 해 주어야 할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이러한 권 감독의 이야기는 우리 무예계의 기성세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젊은 세대들도 무작정 기성세대에 대한 ‘뒤엎기식’ 논리보다, 기성세대를 이해하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공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무예단체들이 많은 고민하는 모습은 권력의 다툼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무예계뿐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에서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무예는 다양한 문화콘텐츠 소재로 충분


인기가 있었던 <소림사 주방장>(1981)
영화사(史)에서 비춰진 무예에 대해서도 제작자 입장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우리 세대들이 아마 무협영화를 가장 많이 보고 자란 세대일겁니다. 무협지를 읽고 무협영화에 나오는 화려한 장면은 성장기에 상당히 흥미로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접한 무협영화들은 내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훌륭한 작품들도 있지만 무협영화의 인기로 우리나라에서 자체 제작한 조잡한 영화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액션영화라고 해서 화려한 액션 씬을 내세우며, 흥미위주로 이어지는 영상물이 많습니다. 7,80년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코미디와 같은 무협영화보다는 우리뿐만이 아닌 세계인들이 소장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로 구성된 의미있는 무예소재의 영화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 감독의 말처럼 실제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는 무협영화가 극장마다 개봉되었다. 이 당시의 영화들은 '권격(拳擊;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맨손 무예를 말함)영화'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누렸다. <소림사 주방장>이라는 영화가 히트를 치자, 국내 제작자들은 온통 <소림(少林)....>을 운운하며 마치 중국에서 제작한 것처럼 배우의 이름도 바꿔가며 제작해 사회적인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다.

다시 영화제작자 입장으로 화제를 바꿔 말을 이어갔다.

"무예를 다룬 이야기들은 다양한 콘텐츠 제작의 소재로 충분합니다. 3D 애니메이션, 동영상, 포토이미지로 개발된 동작과 같이 생생하게 이용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계적인 방법들도 많습니다. 동작의 정확성에 초점을 맞춘 방법도 있겠지만, 이를 포함해 정신을 강조한 콘텐츠 개발은 분명 서양의 작품들과는 차별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무예는 상당히 매력있는 소재입니다."

동양의 무예가 서양의 스포츠와 차별화 할 수 있는 콘텐츠 소재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 영화감독으로서 콘텐츠를 찾는 것이 직업인만큼 앞으로 무예와 관련된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심을 가져보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전통무예를 수련하면서 작품구상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그는 무예인들에게 한마디 남겼다.

"문화.산업계 일각에서는 무예를 소재로 한 콘텐츠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는 정부나 기업에서 그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반찬이 많으면 어떤 것이 맛있는지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일 겁니다. 젊은 제작자들이 좀 더 노력하면 해외시장에 좋은 콘텐츠들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제작자의 노력만 가지고는 힘든 일이고, 무예인들도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 권근욱 감독 약력

파리카톨릭대 사회심리전공
프랑스영화학교 졸업
경희대 영상대학원 졸업
현, 스카이엔터테인먼트 감독/이사
프로덕션 무허가 감독
영화 <마리이야기> 촬영감독/아트디렉터
영상인류학 다큐멘터리(<주마의 샹바라> , <영혼의 길>, <자연의 아들>) 감독

*무예를 만난 사람들은 격주 화요일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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