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졸업 퍼포먼스

2010. 2. 9. 11:48In Life/Worldly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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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졸업시즌이 되면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는 것이 있다. 한때는 꽃다발이나 선물주지말기 운동을 하며 학교앞 장사꾼들을 단속하기도 했고, 한때는 전교조졸업식이라고 졸업식의 순수성을 잃었다 하고, 이번엔 몇몇 학생들의 동영상문제로 몇일동안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이런 동영상이 무르익을 무렵,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는 감옥이다'라고 표현하며 졸업식장에서 두부를 먹는 퍼포먼스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조 선비를 양성하는 4개의 학교가 있었다. 한양 중앙과 동, 남, 서쪽에 세워진 이 학교의 이름은 중학, 동학, 남학, 서학으로 조선 태종때 개설돼 고종때까지 5백여년동안 졸업생을 배출한 국립학교였다. 이 학교들의 졸업식에도 파금(破襟)이라고 하여 당시 교복인 푸른 두루마기(靑襟)을 갈기갈기 찢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도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판대상이 되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최근 여학생들이 교복을 찢고 케찹을 뿌려대는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기성세대들은 안타까워 하고 있다. 또, 교복을 찢고 옷을 벗은채 바다로 뛰어드는 여학생들 사진을 보도하며, 이번 졸업식의 풍경은 다른해와 다르게 남학생이 아닌 여학생들에게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밀가루를 뒤집어 쓴 1979년 졸업식 장면-출처: 경향신문


1970년대에도 교복을 입던 시절 남학생들은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교복을 찢으며 달걀을 뒤집어 쓰는 모습들로 졸업식의 단면을 언론들은 장식했었다. 이들을 본 어른들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똑같은 말을 하며 신문한편에 어른들을 대변하고 있다. “학생들이 저럴 수 있느냐, 졸업식 때까지는 학생아니냐”라며 졸업식장의 이런 모습을 난폭하다고 표현해 왔다. 또, “요즘 애들은 왜이러느냐” 하며 마치 이번 졸업생들이 옛날 졸업생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며 어설픈 비교와 비판이 이어진다. 이런 일은 수십년전에도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단지 과거에는 남학생들이 주가 되었는데, 요즘엔 여학생들도 나서니 언론에서는 대서특필소재가 될만하다. 그러나 여학생들이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처럼 몰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카메라니, 영상장비들이 대중화되다 보니 과거에도 있을법 했던 일들이 노출될 가능성이 많아졌다.

졸업식장의 겉모습만 보고 졸업생들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왜 이런 모습들이 나오는지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교복은 그들의 통제의 수단이었고, 학교는 입시를 위한 그들의 갇힌 공간이었다. 이들의 행동은 대부분 “해방”이라는 두 글자에 함축되어 있다. 또, 단체생활을 해 온 동아리의 경우 선배로서 과거 후배들한테 한 못된 짓(?)이며, 힘들었던 일을 한번에 풀어버린다는 그들만의 해법들도 있다.

교복을 찢을 만큼 힘들었고, 밀가루를 뒤집어 쓸 만큼 구속받았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졸업이라는 시간을 통해 그 마음을 푸는 방법이다. 단지 지금은 밀가루에서 케찹으로 바뀌었고, 이런 행동들이 누구나 들고 있는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이 쉬운 환경이다. 그리고 요즘같이 빠른 세상에 인터넷에 급속하게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말 그대로 입방아를 좋아하는 뉴스거리가 된 것이다.

일단, 보기 싫은 행동을 하고 도가 지나친 졸업생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이 풀 수 있는 방법이 이 것밖에 없게 만든 기성세대들의 교육관이 더 큰 문제라 생각한다. 과연 우리 청소년들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힘든 일을 이겨내는 방법을 지도한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이들은 졸업을 통해 그동안의 규율과 제약으로부터 해방감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 버리려는 것이다.  그들의 퍼포먼스다.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졸업은 모든게 끝난 것처럼 해석하는 부모들도 잘못이다. 졸업은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때문이다. 이제 시작을 위해 부모들은 이를 잘 격려하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부모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자신도 해방감에 젖어 비명을 지른다. 혹시 부모들은 해방감에 노래방가서 실컷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는지. 부부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여행을 떠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어른들이 푸는 방식이 있다면, 어린 학생들이 풀 수 있는 여건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방법을 배우지 못해 보기에도 안타까운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식에서의 거슬리는 행동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무조건 애들 탓, 무조건 나 아닌 남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졸업식은 이제 상급학교나 사회생활로 접어 들 졸업생들에게 축하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스트레스를 준 기성세대들은 "옛날엔 안그랬어” 하며 어설픈 해석만 하지 말고, 왜 그럴까, 어떻게 하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까에 충실한 고민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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