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한다고 자신하면 불통을 의미한다

2024. 4. 20. 07:37In Life/世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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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사람이 일치에 도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소통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통이 더 어울린다. 그런데 왜 소통을 이야기할까? 소통은 과정의 행위 현상이다. 그냥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이지, 목표지점에 도달해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소통한다.”고 자신하는 것은 문제다. 그 확신은 이미 불통을 의미한다. 소통에 있어 장애는 개인의 차이, 집단의 문제, 그리고 사회와 제도적 문제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불통’의 화신들로 유명하다. 민주주의를 잘 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이지, 소통을 강조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집단 편향과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 왜곡된 여론이 불통을 만들고 있다. 소통을 방해하는 것이다.
만장일치와 같은 집단 사고가 소통을 만들어낼까? 이것 역시 집단규범에 치우치면서 집단 극화 현상을 만든다. 학연, 지연, 혈연의 유유상종을 부추기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개방의 시대가 되면서 이종애적 유대가 필요한 사회가 되고 있다. 유유상종은 소통이 폐쇄적이고 부족적이라면, 이종애적 유대는 개방적이고 글로벌한 것이다. 이종애적 유대는 소통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계의 확대를 생각지 않는다면, 유유상종의 부족시대에 고립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결국은 내부에서의 동종애적 연결과 외부에서의 이종애적 연결이 중요하다.
소통을 위해서는 내,외부의 연결이 중요하다. 리더의 역할이며, 소통의 방법이다.

 

“불꽃(욕망) 속에서도 연꽃을 피워내야, 마침내 시들지 않는다( 화중생련, 火中生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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