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학 대한유도학교 설립자 이제황선생

2019. 11. 26. 17:02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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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유도학교를 설립한 이제황선생(1910-1981)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1910년 서울 출생으로 1930년 9월 제2회 재동경조선유학생 주최 조선중등학교유도대회에 첫 출전했다. 그리고 1932년 유도의 본산이었던 YNCA유도부에 들어가 유도부 정기 승단전에서 초단을 받은후 1939년 5단에 승단하였고, 10단까지 올랐다. 그의 유도실력은 일본 강도관 조선지부 주최로 개최된 경기에서 일본을 꺾은 일화가 유명하다. 반일사상이 강하여 일제겅점기 항일민족활동에 적극 앞장섰고, 중국북경으로 가기전 여운형선생을 흠모하여 독립운동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북경에서 국내 항일단체와 중국에 있는 반일운동단체의 중간 연락책으로 활동했고, 중국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해방이후 여운형선생을 따라 잠시 정치계에 있었다. 여운형 선생이 암살되자 조선유도연맹(현, 대한유도회)의 운영에만 전념한다.

 1948년에 대한유도회 이사장, 유도연구원장이 되었고, 이상재선생의 뜻을 따라 유도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1953년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역임하며 한국유도의 기틀을 닦는데 온 정성을 쏟는다. 1954년에는 석진경선생과 함께 제1회 전국유도순회강습회를 개최하여 후학양성을 하면서 한국유도의 이론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1958년 동경에서 개최된 제3회 아시아 경기대회의 유도감독을 맡았고, 1957년 서울신문사제정 체육상 지도상을 수상하였으며, 1971년 4월에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그리고 1981년 12월 16일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신유도’, ‘유도정신’ 등이 있다. 그는 ‘신유도’에서 유도의 기원을 언급했다.

 “고구려 산상왕(197-226)년때의 왕도였던 한도성의 옛무덤 각저총 현실의 벽화가 보여 주즛 우리나라의 유도역사는 오래다. 고대 격투기가 유술로 발달한 것은 고려 중엽때부터이며, 이러한 유술이 일본으로 전해졌고, 여러 유도의 유술장점을 합쳐 일본은 근대유도를 엮어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라고 하여 유도의 기원과 전이설을 주장하며, 민족성을 강조했다.

생전 김현순여사와 함께
대한유도학교에서, 좌측사진은 당시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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