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와 체육학의 대부, 김대식 박사

2012. 2. 17. 14:03Report/Martial Arts

728x90
반응형


김대식박사. 국내 최초의 체육학박사로 알려져 있다. 학부때 기억으로는 이분의 '체육철학'(나남) 교재가 전부다. 하지만 유도를 했고, 대학 선배였다는 점 등때문에 알고 있다. 그 외 김박사님에 대한 이야기는 대학에서 박사를 마치고 한국유도원을 갔을때 받은 노란색 표지의 '무도론'으로 기억되는 책이 있었다. 무도에 대한 이론을 개론으로 정리해 둔 것이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문득 사진을 찾았고, 이 사진을 통해 다시 김박사님을 찾았지만, 2007년 2월 10일자 중앙일보(미주발행)에 박사님이 돌아가신 뒤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내용을 옮겨보았다.


지난 2일 영면한 김대식(72) 전 텍사스대 교수는 호신술과 무도의 정신을 미국에 알리는 데 앞장서 온 '진정한 무도인'이었다. 전미무술협회 미 호신술협회 회장을 지낸 그는 텍사스대 운동생리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무술에 관한 25권의 저서를 펴낸 미 무술계의 유명인사다. 텍사스대에 근무하던 지난 1997년 신장이식을 받고 이듬해 조기은퇴해 세리토스에 정착한 그는 지난 달 말 위에 생긴 조그마한 물혹 제거 수술을 받고 퇴원을 준비하던 중 응혈이 동맥을 막아 별세했다.

7일 한국장의사에서 장례를 마친 부인 김문구(70)씨는 수술이 잘 돼 이틀 후면 퇴원할 수 있다고 해 기다리던 중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며 의식을 잃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한국 유도대(현 용인대)를 졸업한 고 김 교수는 1960년 조지아주 사우스웨스턴 칼리지를 거쳐 조지아 주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 학교 체육과에서 유도를 가르치며 에모리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그는 조지아대에서 체육교육학 박사가 됐다. 부인 김씨는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체육학 박사가 된 최초의 인물이라고 전했다. 뉴욕시립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1971년 한국으로 가 연세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학과장을 지냈다. 3년간 한국에 머물며 대학태권도연맹 대학유도연맹 창립을 도운 그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유도회 이사를 역임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1977년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시카고에서 개최한 세계 태권도선수권대회 사무국장을 맡았으며 팬암 태권도연합 수석부회장을 역임했다. 또 최영의씨가 일본 도쿄에서 연 1 2 3회 세계 오픈 가라테 챔피언십대회 개최를 도왔다.

태권도 9단 유도 8단 합기도 등 여타 무술에서도 사범 자격을 가질 정도로 다양한 무술의 달인이었던 고 김 교수는 태권도와 유도 합기도의 요소들을 합쳐 만든 '호신술'을 미국에 전파했다. 그는 미국에 유도를 전파한 최초의 한인 사범 3명 중 1명이며 태권도의 경우도 1세대 사범 5명 중 1명으로 꼽힌다.

고 김 교수는 태권도 관련 저서 8권을 포함 모두 25권의 무술 관련 책을 출간하며 무도의 기술적인 면 뿐 아니라 정신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는 무술 소식지 마샬아트 스포츠의 편집인 유도 타임스의 부편집인을 지냈고 국제무도교육위원회 수석 디렉터로도 활동했으며 은퇴 후 세리토스에 온 뒤로 격월간지 '유도 통신'을 만들며 무도에의 열정을 불태웠다.

조지아주와 텍사스주에서 각각 공로장을 받기도 한 그는 1999년 세계에 무도를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미국 호신술의 대부이며 평생을 무도인으로 보낸 고 김 교수는 김문구씨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었으며 장녀 수잔은 한국체대 체육경영학 교수로 차녀 엘리노어는 텍사스 주정부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