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유도 어제와 오늘

2012. 1. 29. 20:48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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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일본과 가장 가까운 도시다.
일본의 유도가 일본에 상륙한 것은 어느지역보다 먼저일거라는게 통상적인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 유도가 들어와 가장 먼저 정착한 곳은 서울 종로 명동(우찌다 도장)이다.

부산은 부산경찰청에서 일제시대로 추정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보급은 1940년대부터라 할 수 있다. 부산유도의 보급중심은 1930년과 40년대 일본경찰이었던 황영규사범이 유력하다. 그는 이미 이 당시에 부산경찰에서 경비과장등을 지냈다. 그는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유도를 배워 부산에 유도를 보급한 인물로, 부산유도의 정신적 지주이며, 부산경찰과 시민들에게 유도를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이후에는 일본 강도관에서 6단을 딴 석진경사범이 당시 부산경찰청에 근무했던 류상렬사범과 함께 부산유도발전에 노력한다. 석진경사범은 70세무렵 부산에서는 최초로 유도공인 10단을 지냈고, 류상렬사범은 각종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부산유도를알린 인물이다. 

부산유도의 대표적인 대학인 동아대학교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는 대한유도학교(용인대학교)가 1953년에 개교했지만, 이미 1952년 동아대학교에 유도부가 창단되었다. 창단계기는 선진경사범이 일본에서 같이 유학한 동아대 설립자인 고 정재환박사와 의견을 같이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알려져 있다. 

부산유도인들이 해외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다. 정학균사범은 1960년대 프랑스유도국가대표감독을 지냈고, 부산시유도회장을 맡으며 부산유도발전에 힘썼다. 그리고 1960년대후반에는 정삼현사범(현, 동아대 명예교수)이 1968년 동경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첫 은메달을 따내며 부산유도를 해외대회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재기사범(동아대 교수)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1984년에는 하형주사범(현, 동아대교수)이 LA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해 부산유도의 전성기를 유지해 갔다. 부산체고출신이었던 하형주사범에게 항상 제1인자를 물려주고 2인자가 되었던 이형근사범과 제호송사범도 부산출신으로 부산해동고등학교출신이다. 이를 계기로 당시 부산에서는 해동고와 부산체고가 부산유도의 쌍두마차로 불리었다.

하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접어들어 영남상고(현, 부산정보고)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부산체고와 함께 부산유도를 장악하고 있다. 1990년대 부산체고출신의 김진홍사범이 국제대회정상을 차지하고, 영남상고 출신의 김종만 사범은 1990년 북경아신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영남상고 출신인 황인수가 국가대표로, 후반에는 부산체고를 졸업한 유성연이 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부산 유도의 맥을 이어갔다.

방송보기
-부산유도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황영규사범의 사진자료를 구하기 힘들다.
  하지만 1954년 서울 종로구 소공동의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 중앙도장에서 열린
  경찰무도대회에서 유도의 기본형을 보여주는 박정준 7단과 황영규 6단의 메치기 모습에서 당시의 운동모습을 짧게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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