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예방, 무술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2012. 1. 3. 11:12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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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교폭력문제로 우리 사회의 걱정이 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어른이다.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못한 교육계, 자식에 대한 관심이 학업성적에만 치중된 부모,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청소년들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정치권까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청소년의 환경은 변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현실에 어른 모두가 범죄행위의 방관자다. 잠깐 경험담을 이야기하면, 청소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국가는 어린 아이와 동반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 어린 아이의 가이드를 맡으며, 실무자가 그 어린아이를 동반한 어른과 업무를 진행한다.

또,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방문할 경우 반드시 자신의 자식을 동반해 자리를 함께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어떠한가. "어린 아이를 왜 데려왔어?"라며 의아해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 배려하는 그들의 자세는 한 가지다. 교육이다. 그리고 미래 이 어린 아이들이 방문했을 때, 좋은 감정으로 방문해 주시기를 바라는 넓은 의미에서 미래를 바라보다는 시각이다.

우리 청소년은 이미 부모들의 세상과 함께 하지 못한 채 동떨어진 그들만의 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들도 인간이고 그들만의 사회가 있기에 그들만의 집단과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를 두고 잠시 우리는 '설마'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방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해방이후 경제우선순위에 얽매여 살아온 우리는 청소년에 대한 배려가 충분하지 못했다. 단지 성적위주의 평가와 기성세대 삶을 강요하며 따라오기만을 바랬다. 심지어 스포츠계에서도 승리지상주의를 내세워 입상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운동부 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준 보상이라면, 상급학교 진학이 전부였다. 학력을 중시여긴 한국사회에 교묘히 운동부 성적을 통해 상급학교진학이라는 떡을 던져 준 것이다. 여기서 나타난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운동부였지만 그 세계로 진출하는 선수가 몇이나 되며, 부상 등의 이유로 중단한 선수들의 미래는 누가 보장해 주는가.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어떻게 운동만하는 벌레로 만들 수 있냐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가 있기까지에는 정부도 안일했다. 이렇다보니 운동은 곧 공부 못하는 이들의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 운동이나 스포츠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졸렬한 자들의 정책이 우리 한국사회에서 이상한 논리가 존재했다.

우리가 잘 아는 하버드대학교는 학생의 체력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심폐지구력 측정방법인 '하버드스텝'은 하버드대학에서 개발한 것이고, 순발력을 측정하는 '서전트점프'도 하버드대학의 서전트 교수가 개발한 것이다. 이러한 측정방법은 하버드생의 정기적인 체력측정을 위한 것으로 체력이 미달되면 유급되는 하버드의 철학이 담겨 있다해도 무관하다.

공부와 연구를 위해서는 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최근 일부 언론에서 거론된 하버드생들의 유일한 자신과의 대화는 아침 운동시간이라는 이야기처럼 운동은 그들의 유일한 휴식이자 어떻게 보면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교육 관계자들이 나서서 청소년들에게 제공한 프로그램들도 많다. 1901년에 베를린 교외에 있는 슈레그리츠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아무 목적 없이 산천을 방랑하며 캠핑한 것을 보고 교장이 나서서 '반더포오겔(철새) Wandervogel'이라는 이름으로 급속히 청소년들에게 퍼져 '자연에의 복귀'를 위주로 청소년들을 스스로 자주성에 따라 활동함으로써 도덕적 이상주의의 방향을 이끈 운동도 있었다. 또, 일본의 경우는 청소년들의 사이코패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학교 스포츠클럽뿐만 아니라 무도교육 강화라는 정책도 제시한바 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정규수업에서 체육수업을 축소해 입시위주의 교과목 수업을 강화한 적도 있고, 어렵사리 방과 후 학교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기는 했으나 형식에 불과한 프로그램으로 성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매번 문제가 되는 것에 대해 ‘땜방정책’으로 일관해 온 것이 지금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는 이미 예측된 일이다. 주변국가인 일본에서 ‘이지매’ 문제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관계자들이 고민하고 문제를 풀려는 노력들이 있었고, 여러 나라에서도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고민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일단 일이 터져야, 언론에서 집중타를 날려야 꾸물꾸물 뭔가 대처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관계자들은 이를 수습해 조용해지길 바라겠지만 수습이 능수는 아니다. 그렇다고 남핑계로 해결하려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학교폭력으로 초상집을 만든 언론들이 최근 일부 학교의 성공사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런 성공사례는 교육관계부처나 교육기관이 관심 있게 연구하고 정책을 제시했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많다.

무술계도 예를 배우고 극기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다. 대부분 설득력이 떨어진 말뿐인 경우가 많다. 무술은 단순히 외적인 강한 행위를 배우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착오다.

현대무술의 궁극적 목표는 '화(和)'이다. 상대를 죽이지도 상처를 입히지 않는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여기에는 실제 겨루는 상황에서의 기술적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더 중시하고 있다. 반드시 상대와 승부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스포츠의 결과중심보다는 수련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내용중심이다.

스스로 자신의 몸, 즉 신체와 마음을 만들어가는 것을 배우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배우는 것이 현대무술이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스스로 극복하는 것을 알게 되고, 상대에 대한 예를 습득하게 된다. 결국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스스로가 자주적인 태도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최근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청소년뿐만 아니라 사회적 병리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무술이 좋은 소재라고 제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네스코에서도 '무술'을 경쟁위주의 스포츠가 아닌 청소년들의 교육소재이며, 각국의 무술교류가 각국의 몸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여 무술활동에 대해 후원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전통무예진흥법과 태권도진흥법이 제정되어 있다. 그리고 씨름진흥법도 제정 마무리단계로 알려져 있다. 법을 제정한 이유가 단체나 도장을 육성하고 국가가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제정된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이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제역할을 해 주길 바라는데 있다. 말로만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라고 외치지 말자. 무술의 입장에서는 지금 청소년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 주어야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도 좋고, 전통무예의 유네스코 등재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무술들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어떤 프로그램으로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는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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