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도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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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깨기
간혹 중국영화를 보면 스승의 복수를 위해 남의 도장에 가 대련하는 모습이 나온다. 심지어 도장 간판을 떼어 가져오는 일도 있다. 또 영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최배달이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겨루는 모습이 나온다. 이런 것들을 일명 '도장깨기'라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해방이후 도장이 생기면서 역시 누가 강하냐를 놓고 도장깨기를 하러 다녔다고 한다. 1960년보다 1970년대가 유독 많았다고 당시 도장을 다닌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해외로 진출한 사범들 역시 도장깨기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기득권 무술로 10여년 빨리 정착되어 있던 가라테나 쿵푸도장들 속에 코리안 가라테나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도장을 열면 당연 겨루기신청이 들어올 수 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인사범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도장..
2010.11.21 -
최초의 영화무술도장은 화랑중앙도장?
1969년 4월 5일자 5면 경향신문에는 국내 최초의 영화무술전문도장으로 보이는 도장소개가 보도됐다.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중국검객영화의 흥행으로 국내 영화사들이 검객물을 다루면서 전문도장이 생겨났는데, 이 도장의 이름은 '한국고유무예선양단 화랑중앙도장'이다. 이도장은 1969년 4월 1일 개관했다고 이 신문은 알리고 있다. 이 도장에서는 삼국시대에 전해왔다는 검술, 봉술, 창술, 검법을 지도했는데, 이 당시 검술은 동국검, 쌍수도, 단검, 월도, 청릉도법, 청롱쌍도 등 20여가지로 알려졌다. 당시 영화에 출연했던 박병호(탈런트) 등 40여명이 수강신청을 해 안시법, 자세법, 참법, 타법, 척법, 방법 등을 익히고 있다고 알렸다. 이 시기에 각 영화사들이 검객물을 계획했던 것은 '어사와 흑두건'(장일호..
2010.05.30 -
일제시대 도장은?
일제통치하에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스포츠종목이 유입되었다. 선교사들에 의해 서구스포츠가 유입되었으며, 일본인들에 의해 학교체육 및 일본무도의 유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금 체육사나 무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자료를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신문기사나 일부연구자들의 연구물을 참고하는 수준에서 정리되고 있다. 필자는 얼마전 일제당시 조선총독부나 민간인들에 의해 시설을 갖추고 있던 무도도장 현황에 대해 1934년에 일본문부성에서 보고된 자료를 발견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검도도장뿐만이 아니라, 유도, 궁도, 스모 등 일본 무도와 더불어 육상, 정구, 야구, 축구 등을 할 수 있는 시설까지 모두 조사되어 있었다. 그 내용중 검도, 유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기준으로 ..
2010.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