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구에 대한 세종의 생각

2018. 8. 23. 19:59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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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최근거리 보좌관 김자의 격구 폐지주장에 세종은 뭐라했을까?

1425년(세종7)에 세종은 무과 과거시험에 격구(擊毬) 과목을 추가했다. 격구는 말을 타거나 뛰면서 공채로 공을 쳐서 구문(毬門) 즉 골에 집어넣는 놀이로서 고려시대에 특히 성행했다. 격구는 놀이를 통해 무예를 익힌다는 명분으로 장려되었으며 축국(蹴鞠)과 비슷하다고 실록에 기록되었다. 축국은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차는 놀이”로 정의되니, 오늘날의 축구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격구는 공채를 사용하는 것이니, 축구보다는 오히려 하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김자는 “고려 말기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격구를 봄으로 인해 음란한 풍습이 있었습니다”라 하며 격구 폐지론에 동참했다. 세종은 “이 시대에 격구가 없다고 해서 음란한 여자가 없어지겠는가”라며 이를 윤허하지 않았다. 실록에는 태조가 직접 격구에 참여했으며 “격구하는 것을 사흘 동안 보았다”는 기록도 있다. 정종, 태종, 세종도 격구를 좋아하여 직접 참여했다. 김자는 격구를 놀이로 보고 폐지를 청했고 세종은 이를 무예로 생각하며 옹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예 아닌 놀이로서 축구의 인기가 높고 월드컵 경기가 세계경제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현대사회를 본다면 김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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