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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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원장선거, 온라인 직선제 가능할까?
국기원 원장선거의 직선제 요구가 시작되었다. 태권도바로세우기 사범회가 '국기원장 선거의 혁명'으로 모발일 직선제 선거를 제안했다. 국기원심사 ID 취득도장 국내 1만여개와 해외 3천여개, 그리고 해외정파사범 40여명으로 비대면 온라인 직선제 선거를 제안한 것이다. 선거에서 직선제를 선택한 이유는 회원이 직접 원장을 뽑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 비용을 논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유권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조직이 크고 재정적인 역량이 된다는 이야기다. 온라인 직선제는 실제 생각보다 비용 소모가 적고 짧은 시간안에 많은 사람이 투표하고 신속하게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선거가 중요한 것은 투표참여자가 얼마나 많냐가 중요한 것이다. 직선제는 간접선거에 비해 당선자는 신뢰를 더욱 얻어 직..
2020.09.22 -
YMCA사옥에 호텔이 있다.
종로가 썰렁하다. 그곳에 YMCA가 눈에 들어온다. 종로통에서 근대 이후 가장 오래된 것중 하나다. 태능국가대표선수촌이 생기기 이전에는 이곳이 대표선수촌(투기종목은 을지로 한국체육관)으로 활용되었다. 1903년 10월 28일 황성기독교청년회(서울YMCA의 전신)로 창설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2·8독립선언의 산실로써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유도, 야구, 농구 등 현대스포츠의 유입과 강습이 이루어졌다. 일부 지도자들중에는 밀정도 나왔다. 해방이후 해외스포츠지도자 진출 경로도 되었다. 사진은 1961년 새로 지은 건물이다. 수영장이 있다보니 인명구조 자격연수도 하고, 숙박시설 YMCA호텔도 있다. 건물 뒷편으로는 서울YMCA 별관이 있다. 이 곳은 전부 서울YMCA의 업무 공간으로만 쓰인다. 체육관 ..
2020.09.21 -
축소된 활쏘기문화재
활쏘기문화를 축소시켜 버린 국가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이런 나라도 없을 것이다. 자칫 일제강점기때보다 더 왜곡했다고 비난받을수도 있다. 인왕산 하산길에 황학정을 둘러 본 날이 대한궁도협회에서 무형문화재가 된 활쏘기(보사)에 대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운운하는 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그러나 황학정에서 필운동을 내려다 보며, 최근 활쏘기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되살아 났다. 어느순간 뚝딱뚝딱 지정되었으니 알수가 없었다. 여론을 최소화하기 위해 뚝딱뚝딱하기도 한다. 활쏘기는 당연히 지정되어야 마땅한데, 서두른감이 많다 보니 엉터리 등재라는 비난에도 자유로울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활쏘기를 하는 이들은 모르는 이도 많고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리랑과 씨름때와 다른 느낌이다. 택견..
2020.09.20 -
무예정책의 모순(矛盾)
전통무예진흥에 관한 법률 입안은 2004년 8월 24일 당시 국회 이시종 의원이 대표 발의하기 위해 ‘전통무술지원에 관한 법률’ 입안의뢰서를 국회 법제실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0일 국회문화관광산업연구회 주최가 되어 ‘전통무술의 보존 현황과 육성발전을 위한 정책과제’라는 주제로한 조찬세미나를 계기로 국회의 관심을 유도했고, 같은 해 9월21일부터 법률안 공동발의 서명을 시작해 의원 45명이 10월 7일 법률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 법률안은 1년 뒤 10월 11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철회됐고, 다음날 12일 ‘전통무예진흥법’으로 변경되어 재발의되었다. 1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시 문광부(현 문체부)의 법안 검토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년 동안 주무 부처인 문광부는..
2020.09.19 -
동유럽에 간 북한 아이들
동유럽 이주역사는 내게도 관심사다. 해외 출장중 Lee, Kim, Hur 등의 고려인들을 많이 만났다. 동유럽은 우리보다 NK문화에 친숙한 이들이 더 많다. 근대이전과 이후에 이전한 이들도 있다. 어쩌다 만나 고려인이라 하면 그렇구나 하고 말았지만, 김영덕 감독의. 다큐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전쟁은 10만명의 전쟁고아를 만들었다. 남한은 아이들을 미국, 서유럽 등에 입양 보냈고, 북한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 위탁 교육을 보냈다. 1950년대 초반 당시 19살이던 제오르제타 미르초유는 루마니아로 온 북한 아이들 담당 교사였다. 미르초유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북한 교사이자 교장이었던 조정호씨와 사랑에 빠졌다. 온갖 어려움을 뚫고 57년 결혼해 딸까지 낳았지만..
2020.09.19 -
50년전후 한국무예, 최용술을 공부하라
최용술 합기도 도주다. 한국전쟁 전후에도 주변 무예인들과 갈등이 있었다. 갈등이라기보다는 당시 정황으로 일본인들이 남겨놓은 경찰서 무도관의 유도와 검도, 씨름꾼, 그리고 일본에서 배운 야와라사범이다. 50년 전후 한국무예를 이해하는데는 최용술 도주를 중심으로 한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 당시 씨름장사 나윤출과 대구 서문시장에서의 결투, 최용술과 그의 도장을 음해한 야와라 사범과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 등은 또다른 공부를 하게 만든다. 사진들을 근거로 옛도장을 복원할수도 있겠다. 그리고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우리 무예는 혼탁해진다. 여기에는 중국무술류와 일본무도류가 뒤섞여 혼탁하게 나타난다. 그 속에서 한국합기도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최용술도주가 대구가 아닌 서울에서 정착했다면 어떠했을까?
2020.09.17